일상을 여행으로 만드는 그림
예술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요? 일상을 여행하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고 하지만 상대방을 이해시키기 어렵습니다. 잘 모르지만 예술을 전문적으로 공부한다면 교과서에서 그 이유를 발견할지도 모릅니다. 얼마 전 예술이 왜 필요한지 알 수 있는 현장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자주 가는 산책 코스에 큰 나무가 하나 서있습니다. 이번 겨울을 지나고 봄이 와도 예전 같은 풍성한 잎들을 볼 수 없더군요. 그 나무 아래서 햇빛을 피하고 잔디밭이 보이는 풍경을 그리곤 했었습니다. 그날도 그렇게 그림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그림을 다 그리고 그제야 나무를 돌아보며 상태를 살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나무는 수액을 맞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종이 한 장이 나무에 붙어있었습니다.
그 종이에는 "수리 중"이라고 적혀있었습니다.
예술이 왜 필요할까요? 아이의 웃는 얼굴을 그려봤다면, 아름다운 풍경을 그려봤다면, 이 세상을 그려봤다면.. 아픈 나무를 "치료 중"이라고 말하지 수리 중이라고 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치료 중인 나무에 수리 중이란 표지판을 붙인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기존의 수리 표지판을 잠시 재활용한 별것 아닌 실수로 볼 수 있습니다. 어쩌면 법에서는 나무를 공공 소유물인 물건으로 분류했을 수도 있습니다. 법에서 공원의 나무를 물건으로 정의했다고 해도, 수리 중이라고 쓰인 표지판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해도.. 우리의 감정은 나무에게 수리대신 "치료"를 해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저는 과학 신봉자입니다. 그 어떤 것 보다 과학을 신뢰합니다. 냉철한 과학이 세상을 발전시키고 있죠. 과학은 감정이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진짜 과학은 예술과 맞닿아있습니다. 냉철하면서 따뜻할 수 있습니다.
그림은 과학이자 예술입니다. 저 같은 초보 그림쟁이조차 예술의 의미를 조금씩 깨닫고 있습니다. 전에는 예술이 사라져도 별 문제없을 것 같았습니다. 지금은 예술이 없는 세상을 상상하기 힘듭니다. 그러나 점점 주위에서 예술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위의 그림은 위에서 말한 아픈 나무를 등지고 보이는 풍경입니다. 햇빛이 따가운 날에는 그 나무가 시원한 그늘을 제공해 주죠. 어서 나아서 풍성한 잎으로 우리를 반겨주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