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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한장이야기 Jul 15. 2024

일상을 여행하는 영화들

영화 "퍼펙트 데이즈"

(영화 "퍼펙트 데이즈", "패터슨"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개봉 영화관에서 찾아보기 힘들지만 "일상을 여행하는 영화"들이 가끔 개봉 영화관에 걸리기도 합니다. 얼마 전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 "퍼펙트 데이즈"를 관람했습니다. 극장에 가지 않게 된 저의 이야기를 글로도 썼을 만큼 (영화덕후가 떠난 자리) 정말 오랜만의 영화관 관람이었습니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

일상을 여행하는 영화들


"일상을 여행하는 영화"라고 소개했지만 다른 말로 말하면 별다른 사건이 나오지 않는 심심하고 지루한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재미없는 영화 분류에 담기는 영화들입니다. 요즘은 "예술영화"라고 통칭해서 부르나 봅니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를 예술 영화 전용관에서 상영하고 있더군요.


글을 쓰는 시점에서 (2024년 7월 14일) 영화 "퍼펙트 데이즈"가 비교적 최신 개봉작품인 만큼 다시 한번 스포일러 알림을 하겠습니다. 이후 글에서는 영화 "퍼펙트 데이즈"의 치명적인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의 한 장면

영화 "퍼펙트 데이즈"는 한 사람의 일상을 보여주는데, 하루 이틀 계속 진행이 되고 그렇게 평범한 주인공의 일상이 영화의 전부입니다. 주인공 히라야마는 일본 도쿄의 공공 화장실 청소부입니다. 아침 길가를 쓰는 빗자루 소리에 잠을 깨고 일과가 시작됩니다. 식물들 물을 주고 항상 똑같은 복장과 소지품을 챙겨 집을 나옵니다. 집 앞의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고 작은 청소차에 몸을 싣고 출발합니다. 그 누구보다 깨끗이 화장실들을 청소하죠. 간단한 점심을 먹으며 필름 카메라에 풍경을 담습니다. 퇴근을 합니다. 목욕을 하고 간단히 한잔을 합니다. 잠들기 전 책을 읽고 일과를 마무리하죠. 휴일에는 필름 인화를 맡기고 단골 선술집에서 시간을 보냅니다. 그렇게 히라야마의 일상은 돌아갑니다. 


타임 루프에 걸린 듯이 주인공은 지루하고 심심한 일상을 반복합니다. 그런데 매일 즐거운 듯이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의 루틴을 어김없이 완수해 나갑니다. 주인공의 동료가 화장실 청소를 대충 하고 지루한 일상에 대해 불만이 많은 것과 비교되는 상황이죠. 순간 저는 영화의 주인공이 너무 반가웠습니다. 그는 일상을 여행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림으로 일상을 여행하는 (일상을 여행으로 만드는 그림) 저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아줄 것 같았습니다. 


일상을 여행하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자신만의 루틴이 있습니다. 결과보다 과정에 집중합니다. 과정에 집중할 수 있는 이유는 좋아하는 일을 하기 때문이죠. 남들의 시선에서 자유롭습니다. 일상의 작은 변화에 민감하고 그 속에서 행복을 찾습니다. 그렇다고 아무 걱정이 없이 탄탄대로만 걸어온 것은 아니죠. 남들은 모르는 아픔을 겪고 이겨낸 비밀이 있습니다. 주인공 히라야마 역시 사연이 있어 보입니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는 조금 불친절한 영화입니다. 주인공이 어떤 사연으로 지금 같은 삶을 살게 되었는지 속 시원하게 알려주지 않습니다. 현재 일상에 집중하는 주인공처럼 영화도 과거에 매몰되지 않고 현재를 달려갑니다. "다음은 다음이고, 지금은 지금!"

영화 "퍼펙트 데이즈"의 한 장면

일상을 여행하는 데에 디지털보다 아날로그가 더 효과적인 것일까요? 영화 속 주인공은 아날로그 인간 그 자체입니다.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자동차에서는 카세트테이프로 옛날 음악을 듣습니다. 헌 책방에서 책을 사서 자기 전에 읽죠. 저도 디지털 드로잉도 하지만 "일상을 여행으로 만드는 그림"은 아날로그인 펜과 종이를 이용합니다. 아마도 일상을 여행하기 위해서는 빠름보다 천천히가 더 중요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의 한 장면

영화의 마지막에 이런 자막이 올라옵니다. "코모레비: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일렁이는 햇살을 뜻하는 일본어이다." 코모레비를 디지털에 담는 것보다 아날로그에 담아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코모레비"같은 영화가 또 한편 있었죠. 

영화 "패터슨"의 한 장면

영화 "패터슨"입니다. 시내버스 기사인 주인공이 시를 쓰는 영화입니다. 퍼펙트 데이즈를 보면서 패터슨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일상을 여행하는 영화들이 참 귀합니다. 일상의 아름다움을 만들기도, 알아보기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예술 영화들만 엔딩 크레디트를 볼 수 있는 것인가요? 일반 영화들도 엔딩 크레디트의 여운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을 주세요. 


https://youtu.be/5e5KLrXZbbQ?si=8zZyYpIgzbRjTsQN

https://youtu.be/d76IkneZL3Q?si=rAktxQVPhsr7h-6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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