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정리

해체와 재구성

by 히치하이커

오래전 얘기다.


A와 C의 아버지는 나의 어머니가 자동차 사고로 받은 보험금, 정확히는 아버지의 사망으로 받은 보상금을 빌렸고 이후 갚지 않았다. 돈이 없어서이기도 했지만 돈이 있을 때도 갚지 않았다.

덕분에 우리 집은 더욱 가난해졌다.


C의 아버지는 30년 전 자신의 아들을 우리 집에 맡겨놓았다. 근 15년 정도 우리 집에 맡겨놓았다. A도 자신의 아이를 우리 집에 맡겨놓은 적이 있다. 덕분에 우리 집에 입은 늘었고 돈은 줄었다.


A에게는 B라는 동생이 있는데 B는 십 년 전 사고가 났다며 내게 수십만 원을 빌렸다가 갚지 않았고 오 년 전 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 다시 마주쳤을 때는 내가 조의금으로 받은 현금을 급하게 필요하다 하여 빌려줬더니 이후 갚지 않았다. 수차례 갚으라고 독촉했지만 갚지 않았다.


C도 나에게 몇 년 전 급하게 돈을 빌렸고 갚지 않았다. 최근에는 무슨 합의금이 필요하다며 돈을 빌려달라고 하여 거절했다.


나는 A와 종종 통화를 했고 B와 C의 얘기가 나오면 장난반 진담반으로 내 돈을 갚지 않은 유이한 인간들이라고 했다.


말은 웃으며 했지만 속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왜 악연은 대를 물고 이어지는 건지, 과거의 은원을 극복하지 못하면 어떤 일이 반복되는 건지, 나는 이러저러한 생각에 마음이 어지러울 때가 많았다.


특히 뒤늦게 깨달은 것은 부모로서 가져야 할 양육이라는 부분의 엄청난 책임이다.

내 부모세대들의 돈 관계까진 모르겠고 나도 현재 아이를 키우면서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으로서 (어쩌면 영원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20년 전 30년 전 나도 어린 시절이었는데 자신들이 책임지지 못한 아이들을 우리 집에 맡겨놓았던 사람들이 도대체 무슨 일을 저지른 건지 어른이 된 내가 깨달아버린 것이다. 버려진 아이와 합쳐진 아이는 행복한 것도 있었겠지만 불행도 늘어났기 때문이다. 특히나 궁핍했던 시절을 보낸 나로서는 상처가 컸다. 경제적인 쪼들림은 말할 것도 없다.

이번 명절에 A와 만나 술을 한잔하다 말다툼이 있었다. 내가 나이 들어가며 깨닫는 부분을 얘기하다 A와 C의 아버지가 돈을 빌렸던 얘기, A와 C의 아버지가 우리 집에 아이를 맡겼던 일, 그 자식들까지 내 돈을 갚지 않았던 일이 나에게 어떤 감정을 갖게 하였는지를 얘기했더니 갑자기 A가 나에게 화를 냈다.


A는 내가 과거에 살고 있고 전혀 바뀌는 구석 없는 가식적인 인간이라고 나를 비난했다.

너는 왜 나한테 그들 욕을 하느냐. 그래서 왜 내 속을 긁느냐. 좋게 생각하라고 해도 앞으로도 그들 욕만 하고 살 거라며 말이다.


어쩌면 내 마음속 깊은 곳에는 비난의 말을 간접적으로 A에게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그간 아이를 키우면서 잊고 지냈던 일, 오래되어 기억하지 않고 그래서 말하지 않았던 일이 나를 얼마나 힘들게 했는지를 말하고 싶었던 이유가 커서 말한 것뿐인데 다툼이 되어 당혹스러웠다.


명절이 지나고 돌이켜보니 내 말이 문제라면 문제이기도 했지만 더 큰 문제는 내가 A와의 관계 상성을 무시했던 이유도 크다. 어울리지 않는 상성의 관계를 그저 추억으로 유지하다 보니 이런 일이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A와 어려운 시절을 견뎌낸 추억, 함께 시간을 보냈던 과거말이다.


혈연이든 지인이든 서로에게 긍정적이지 못한 영향력을 주는 관계란 언제든 파국으로 갈 수 있다.

끝이 보이는 관계다. 그래서 관계란 맺는 것보다 끊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인간의 가장 큰 어리석음은 망각이라는 것이다. 한 번 상처 주는 건 어렵지만 두 번, 세 번은 너무나 쉽다. A는 과거 나에게 분명 상처를 줬던 사람이었다. 내가 잊고 있었던 것뿐이다. 왜 이리 나는 이다지도 어리석은지. 기억하면 잊지 않았다면 명절에 같이 간 처자식들을 놀라게 할 이유도 없었을 텐데.


명절이 잔인한 이유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폭력이 벌어지는지를 확인하기 때문일지도. 나 또한 기성세대로서 가해자가 될 때가 있으니 조심하고 또 조심할 일이다.


가족은 중요하지만 그럼에도 가족 또한 얼마든지 해체되고 재구성될 수 있는 것 같다. 나에게는 관계의 정리라는 의미로 그래서 다시 가득하고 풍요로워질 앞으로를 위한 꼭 필요한 이벤트로 이번 명절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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