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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vresavie Dec 06. 2016

역사는 끝나지 않았다 『한 명』

한 명 / 김숨




혼자만 살아 돌아온 게 죄가 되나? 살아 돌아온 곳이 지옥이어도?





모든 걸 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기억했으면 오늘날까지 살지 못했으리라.
: P 151 <길원옥 할머니>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모두 238명이었다. 평균연령 90세에 달하는 피해자 할머니들 중 올해만 여섯 분이 돌아가셨고, 현재는 마흔 분만이 생존해 계시다고 한다. 그 와중에 한국과 일본 양 정부가 '사실 인정과 진정한 사과'라는 절차를 무시하고 '2015년 일본군 위안부 합의'를 발표한지 일 년이 다 되어간다. 1992년부터 세계 최장기간 동안 이어진 '수요집회'는 이번 주 수요일 1260회째를 맞이하게 된다. 언제 끝이 날지, 제대로 끝나기는 할지 알 수 없는 이 혼돈의 시기에 내가 이 책을 집어 든 것은 나름의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여전히 진행 중인,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는 참혹한 현실 앞에서 더 분노하게 될 것이 뻔했고, 이 책을 읽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스스로 못 미더웠음이 사실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올바르고 정당한 방법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냄으로써 현실에 저항하며 새로운 역사를 써가고 있는 요즘, 지난 25년간 한결같이 자신들의 존재를 증명해오신 위안부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염치없지만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피해자요. 그리고 또 뭐라고 써야 하나? 막막해하던 그녀는, 자신이 아무것도 잊지 않았다는 걸 절실히 깨닫는다. 한 시간 전에 뭘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70년도 더 전 일은 기억이 난다. 위안소 방 천장에 매달린 알전구가 깜박깜박하던 것까지. : P 150 <이옥선 할머니>


                              


책은 피해 할머니들의 증언록을 기반으로 재구성되었다. 자신이 위안부임을 끝내 밝히지 않고 숨어 사는 한 분이 티브이를 통해 위안부 할머니가 세상에 한 분밖에 남지 않았다는 소식을 접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책을 읽다 보면 일본이 자국민을 비롯해 한국, 중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20만 명 이상을 '위안부'로 강제동원하여 벌였던 만행은, 인류 역사상 가장 잔혹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생각에 몸서리치게 된다. 상상이라 해도 믿기 어려울 만큼 잔인하고 참혹하여 읽는 것만으로도 힘이 들었다. 수도 없이 눈을 질끈 감아야 했고, 몇 번이나 책을 덮고 싶은 마음에 괴로웠다. 이 모든 게 그저 소설을 쓰기 위해 만들어진 허구라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 고통스러웠다. 그렇지만 내가 얼만큼 괴롭든 한 평생 역사의 피해를 온몸으로 감내해온, 그리고 여전히 맞서 싸우고 있는 할머니들의 상처를 헤아리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안다. 





위안소에 있을 때 그녀는 몸뚱이가 하나인 것이 가장 원망스러웠다. 하나인 몸뚱이를 두고 스무 명이, 서른 명이 진딧물처럼 달려들었다. 하나인 몸뚱이도 그녀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자신의 것이 아니던 몸뚱이를 부려 그녀는 이제껏 살아왔다. : P 40 <김순악 할머니>




                                                                                                          

국민을 개나 돼지만도 못하게 여기는 건 어제오늘 일만이 아닌가 보다. 그러니까 피해 할머니들의 정당하고 간절한 목소리를 쏙 뺀 '합의' 따위를 체결한 것이겠지. 이 정부가 할머니들의 고통에 진심으로 귀 기울이고, 그들의 삶의 존귀함을 조금이나마 회복시켜 드리고 싶다면 이럴 수는 없는 것이다. 이래서는 안되는 것이다. 피해 할머니들이 이 추운 겨울에도 계속해서 수요 집회에 나와 목소리를 내시는 한, 겨울만 되면 소녀상이  추울까 염려하여 손수 짠 목도리를 메주는 시민들이 존재하는 한, 위안부 역사는 결코 끝나서도, 잊혀서도 안된다. 아흔을 넘기신 할머니들을 여전히 거리로 나서게 만드는 이 정부를 보면 한숨이 나오고 화가 치밀어 오르지만, 모질고 끔찍한 세월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한 평생 인간으로서 위엄과 용기를 잃지 않고 살아가시는 할머니들을 통해 인간의 존귀함을 본다. 그리고 부끄러워진다. 





"개성 애들 셋을 데리고 왔는데, 서로 똘똘 뭉쳐서 부려먹기가 어려워."

"얼마씩 주고 데려왔습니다?"

"하나는 200원, 하나는 100원, 하나는 150원."
: P 116 <이순옥 할머니>



그녀는 더는 말을 잇지 못한다. 어떤 말로도 자신의 고통을 설명할 수 없다.
<정윤홍 할머니>
혼수상태가 와 스무 날 넘게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는 그이가 띄엄띄엄 사력을 다해 말한다.

"죽을 수가 없어. 내가 죽으면 말할 사람이 없다는 생각을 하면······." 
: P 237 <박차순 할머니>





눈물이 차오르고 가슴이 먹먹하다. 그저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한 번쯤 읽어봤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부족한 이 글을 쓴다.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면 진정으로 정의는 이루어질까? 슬픔과 분노와 고통으로 얼룩진 역사를 뒤로하고 진심과 진실로 이루어낸 진정성 있는 역사가 새로 쓰일 수 있을까? 
그리하여, 세월이 흘러 생존해 계시는 위안부 피해자가 단 한 분뿐인 그 어느 날, 그분이 눈 감게 되는 그 어느 날, 그래도 잘 싸웠노라고, 많이 늦었지만 그래도 다행이라고, 편안히 보내드릴 수 있게 될까? 

역사의 산증인인 모든 위안부 할머니들을 온 마음 다해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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