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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agle Oct 20. 2022

06. 우리 집에 팬트리가 있었다니


 우리 부부의 공동 생활비는 관리비, 가스비, 인터넷 등을 제외하고 50만 원으로 잡았다. 이 돈으로 식료품도 사고 세제, 샴푸 생활용품도 사고, 가끔 외식도 해야 하는데 둘이 쓰는 생활비지만 항상 부족해서 매월 말에 비상금으로 빼논 돈에서 야금야금 충전해서 사용하고 있다.


 식비야 먹고살아야 하니 당연히 적당히 써야 하는 부분이지만 생활용품은 세제, 섬유유연제, 폼클렌징, 바디워시, 샴푸 등등 야금야금 쓸데가 너무 많다. 하루는 남편이 포스트잇에 리스트업을 하더니 이게 필요하다며 갖다 줬다. 목록을 보니 지난주부터 며칠 동안 안방 화장실에 떨어져 간다고 계속 나에게 말해줬던 것들이다. 당장 내가 쓰는 게 아니라 안 사 왔더니 마지막 한 방울도 안 남았나 보다.


  - 폼클렌징

  - 바디워시

  - 화장실 청소 세제

  - 로션

  - 선크림


 며칠 전부터 말한 건데 왜 안 사주냐고 재촉하지 않고, 조심히 한 자 한 자 적은 포스트잇을 전해주는 남편을 보니 고맙고도 미안하다. 왜 항상 화장품은 올리브영 세일이 다 끝나면 떨어질까? 다음 올리브영 세일 때 폼클렌징 사줘야 하지, 다음 쓱 닷컴 배송에 화장실 청소 세제 사둬야지 하던 게 이렇게 쌓이고 쌓였나 보다.

 이젠 사줘야지 하고 쓱닷컴을 열어보는데, 생각해보니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거실에 있는 화장실에 가보니 내가 쓰는 폼클렌징이 3개다! 그중 두 개는 1차 세안용, 나머지 하나는 2차 세안용이다. 남편은 화장을 안 하니 1차 세안용 하나를 남편이 주로 쓰는 안방 화장실로 주면 되겠다! 일단 폼클렌징이 해결됐다.  

 다음으론 바디워시도 설마 있을까 했는데, 친구가 선물해준 비싼 바디워시가 쇼핑백 채로 담겨 있었다. 비싼 거라서 아껴두고 있었는데, 급한 대로 남편이 쓸 수 있도록 또 갖다 두었다. 아끼다 똥 된다!


 점점 집이 보물창고처럼 느껴진다. 화장실 청소 세제도 설마 있을까? 화장실 거울 안 벽장을 열어보는데 1개가 있다. 이걸 두 방에 왔다 갔다 쓸 수야 있겠지만  혹시나 해서 세탁세제 있는 곳을 가본다. 어머 화장실 청소제 잘못해서 쓱배송으로 2개를 담았던 게 나머지 1개가 떡하니 있고, 1+1으로 샀었던 세탁세제와 있는 줄 모르고 또 샀던 섬유유연제들 까지.. 우리 집에 세제 펜드리가 있었다! 적어도 6개월은 걱정 없이 쓸 수 있을 정도였다. 세탁실 선반에 있어 눈에 안 보이다 보니, 보지도 않고 떨어졌다 싶으면 어플로 바로 구매하는 습관은 꼭 고쳐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로션과 선크림, 화장품이야  화장대에 가득하다.  쓰기도 전에 인스타그램에  화장품을 보며 이걸 사서 바르면 얼굴이  달라질까 싶어서 사고, 막상 발라보면 피부에  맞아 거의  거로 있는 기초 화장품이 가득하다.  같은 선크림인데도 피부 표현과 얼굴 색감이 달라진다. 액체형, 고체형, 세럼형 종류별로 선크림을  쓰지도 않았는데 사놨다. 색조화장품은  하다. 도대체 섀도와 립스틱은 바닥까지 써본 사람이 있나 싶다. 이렇게 마지막 남편이 적어준 SOS구매리스트는 로션과 선크림까지 우리  안에 있던 걸로 소비 제로로 마무리되었다.  


 물론 남편이 나에게 이 제품들을 챙겨달라고 해서 집안에 쓰던 물건들로 대체가 된 걸 수 있다.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로션, 스킨은 피부에 맞을지 안 맞을지를 이유로 무언가를 사려고 찾아봤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이미 집 안에는 세제 펜트리, 선크림 펜트리, 로션 펜트리, 새도우 팬트리, 립스틱 팬트리들이 있었다. 퇴근길 올리브영 세일에 발걸음을 뺏기거나, sns에서 본 신제품 화장품을 또 도전적으로 시도해보지 않고도 우리 집 안에 풍부한 물자가 있음을 기억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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