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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agle Oct 30. 2022

10. 사고 나면 관심 없어지는 것, 사고도 기분 좋은

 과거의 나의 친구들 사이에서 소비 요정으로, 온갖 세일 정보를 공유해주고 골라주고 또 같이 구매하는 소비를 부추기는 사람이었다. 패션 유통업계에 들어온 이후로 분수에 맞지 않는 옷이나 신발 소비를 했고, 카드를 긁는 게 좋았다. 항공사 마일리지 카드를 긁으면 나는 돈을 쓰고 있지만 멍청하게도 마일리지가 쌓이고 있다고 생각하며 카드를 긁어 댔다. 결과는 계속 신용카드에 신용카드를 쓰는 굴레였다.  


 신기했던 점은 내가 정말 갖고 싶어 발을 동동 구르며 결제한 건데, 막상 집에 오면 관심도 안 갔고, 돈을 허투루 써버린 것에 대한 허탈함이 더 컸었던 적들이 많았다. 특히 사치품일 경우가 이런 경우가 많았다. 친구들이 세일을 한다고 해서 급하게 온라인 주문을 했는데, 집에 도착한 택배를 일주일이 지날 동안 뜯지 않은 적들도 있었다.


 투자도 다르지 않았다. 코로나 때의 엄청난 상승장에서 나는 소위 ‘불타기’ 전략을 했고 수백만 원을 넣어서 100% 수익을 보았던 나는 마이너스 통장을 끌어서 수천의 빚투를 한 끝에 현재 -70% 수준의 마이너스 수익률과 갚아야 할 빚만 남게 되었다.  


 경험을 통해서 성장할 수 있다는 말로 위안을 삼겠지만, 내가 만들어온 소비와 투자(투기) 습관은 새로고침이 반드시 필요했던 시점이었던 것 같다. 결혼을 하면서 남편과 가계부를 체크하고 서로의 용돈 배분을 하고, 너무 높아져버린 이자율을 보면서 나는 탈 소비 요정이 되기로 마음먹었고, 몇 개월 째 순조롭게 항행하고 있다.  


과거에 ‘더 해빙’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모든 구절들이 공감이 된 것은 아니었으나 ‘돈을 쓰는 순간 내가 가지고 있음(The having)을 충만함을 느끼는 것. 그리고 현재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하고 충만함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게 핵심 포인트였다.  


 온라인 광고들과 마케팅 문자들에 마음이 혹할 때도 너무 많지만, 시간을 두고 고민한다. 내가 이걸 사고 나서 어떤 마음이 들것이고, 어떤 기분일지. 그 기분이 더 좋고 만족스럽고 시간을 갖고 나서도 계속 그 마음이라면 사겠지만, 대부분의 케이스가 아니기에 쇼핑은 거의 하지 않고 있다.


 최근에 생일을 맞았었는데, 내가 친구들이 무슨 선물 갖고 싶냐 고 물어봐서, 그동안 갖고 싶던 아이템들을 이야기했다. 귀여운 핸드폰 케이스, 머리 집게, 꼭 갖고 싶던 얼룩덜룩 법랑 식기, 내 광고에 계속 노출되던 룰루레몬 티셔츠.. 친구들은 내가 필요하고 갖고 싶은 선물을 해줘서 기뻐했고, 나 또한 내가 오래도록 갖고 싶지만 내 돈으로 사지 못&안 했던 물건들을 받아서 행복했다. 정말 친한 친구들은 내 용돈 생활을 알고 있어 ‘용돈에 보태 써라!’라는 멘트와 함께 현금 선물을 주기도 했다.    


 소비를 줄이니 소비를 할 때의 마음이 허탈하거나 후회되지 않고, 행복하고 기쁘다. 매일 미쉐린 레스토랑을 간다고 기쁜 게 아니라, 특별한 날 가는 근사한 공간이 행복으로 다가오듯 나는 일상에 무분별한 소비를 벗어나, 카드를 긁고 나서도 행복한 소비자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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