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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대학생의 유럽 여행 112일 차

좋다 파리

by 빈카 BeanCa

오늘도 바쁜 하루를 보내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났다. 일어나서 바게트에 버터를 발라 먹고, 크로와상도 먹었다. 그러고는 호다닥 준비하고 출발했다. 오늘의 첫 코스는 오르세! 어제 간 루브르는 사실 파리의 필수 코스라서 간 느낌이 강한데, 오늘 가는 오르세는 기대를 조금 더 하고 갔다. 미리 예약을 하는 데는 실패해서 가서 기다렸는데, 30분 정도 기다리니 들어갈 수 있었다. 오르세는 5층에 유명한 회화 작품들이 많다고 해서 들어가자마자 5층으로 향했다. 이번 오르세 구경도 오디오 가이드와 함께했는데, 중간중간 미술사조에 대한 얘기도 같이 해주셔서 재밌게 들었다. 5층으로 올라가 유명한 시계 먼저 구경하고 작품을 보러 갔다. 오르세 역시 인상주의 작품이 많았는데, 모네 그림이 특히 많았고 르누이르나 마네, 반 고흐의 그림도 많았다. 인상주의는 사진의 발달에 따라 그때그때 변하는 빛을 포착하는 게 중요한 괴제였다고 하는데, 오르세의 작품들에서 많이 느낄 수 있었다. 빛을 표현하느라 어떤 부분은 어둡고, 어떤 부분은 윤기가 나게 표현한 게 신기했다. 대부분의 인상주의 작품에서 느낀 따스함과 평온함을 다시 느낄 수 있어서 행복하고 여유롭게 구경할 수 있었다. 비슷한 듯 다른 그림들도 많아 보는 재미가 있었는데, 모네와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나 르누아르의 도시의 춤, 시골의 춤과 같이 비슷한 주제를 가졌으면서 다르게 표현한 작품들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특히 모네의 양산을 쓰고 오른쪽으로 몸을 돌린 여인, 왼쪽으로 몸을 돌린 여인이 인상 깊었는데, 바람과 빛의 방향에 따라 한쪽은 드레스를 푸른빛으로, 한쪽은 붉은빛으로 표현한 부분에서 인상주의가 크게 와닿았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그림은 르누아르의 피아노 치는 소녀들이라는 그림인데, 두 소녀가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색깔이 파스텔톤으로 화사하고, 두 소녀도 행복해 보여서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졌다. 이 그림은 르누아르의 류머티즘 관절염이 심해져 붓도 잡지 못할 때라서 손가락 사이에 붓을 고정시켜 놓고 그림을 그릴 때라고 해서 더 그림을 향한 애정과 열정이 더 와닿았던 것 같다. 르누아르는 왜 이렇게까지 힘들게 그림을 그리냐는 친구의 말에 “고통은 지나가지만 아름다움은 계속 남기 때문이다 “라고 답변했는데, 정말 아름다움을 중시하는 그의 생각이 잘 느껴지는 그림 같았다. 이외에도 청록색이 메인 컬러인 반 고흐의 자화상을 봤는데, 오디오가이드에서 무엇이 느껴지냐는 물음을 던저주셨다. 그 말을 닫고 홀린 듯에 생각을 해봤는데, 나는 공허함과 외로움 그리고 그런 감정들을 숨기려고 덮는 얇은 벽이 느껴졌다. 2층 전시관으로 가 점묘화도 실컷 보고, 0층으로 내려가 비너스의 탄생이나 피리 부는 소년과 같은 그림도 봤다. 다 보고 나니 3시간 정도 걸렸다. 중간에 별로 쉬지도 않았는데 계속 그림을 보면서 3시간이나 지났다는 게 신기했다. 물론 오디오 가이드로 설명을 들으면서 봐서 3시간이었지만, 어제 루브르보다도 재밌는 박물관 투어였다.

오르세에서 나와 다음으로 향한 곳은 식당이다. 프랑스 가정식 느낌으로 먹으려고 갔는데, 몽마르트르 언덕이 다음 코스라 근처에 있는 식당으로 찾아 미리 예약했다. 지하철을 타고 갔는데, 몽마르트르가 고지대라서 그런지 지하철역에서 출구로 나가는 계단이 무슨 전망대처럼 높고 많았다. 다행히 계단만 올라가면 금방이라 식당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아침에 빵도 먹고 중간중간 간식도 먹어 배가 그렇게 고프지 않았던 우리는 어니언 수프와 오리 스테이크, 그리고 크림 브륄레를 주문했다. 어니언 수프부터 나왔는데, 진하고 깊은 양파 맛 국물이 뜨끈해서 쌀쌀한 파리 날씨에 딱이었고 올라간 치즈가 풍미 가득해서 안에 든 빵이랑 잘 어울렸다. 다음으로 나온 오리 스테이크는 처음 먹어보는 음식이었는데, 미디엄 정도의 스테이크에 허니소스가 올라가 있었다. 한국에서 먹는 오리고기와는 꽤 달랐는데, 처음에는 살짝 피 맛이 나는 건가 싶었지만 먹다 보니 허니 소스랑도 잘 어울리고 부드럽고 촉촉해서 맛있었다. 마지막으로는 크림 브륄레를 먹었다. 부드러우면서 탱글한 크림 위에 얇은 설탕 코팅이 올라가 있었는데, 이렇게 얇은 설탕 코팅이 가능한가 싶을 정도로 파삭하고 얇은 설탕층이라 너무 달지 않아 맛있었다. 안에 있는 크림은 더 맛있었는데, 역시 적당히 달달하면서 부드러워서 계속 들어가는 맛이었다.

한바탕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고는 몽마르트르 언덕으로 향했다. 파리에 가기 전에는 몽마르트르 언덕이 피크닉 하는 푸른 언덕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고 다양한 명소가 있는 언덕이라 신기했다. 우리는 오디오 가이드를 따라 들으면서 이동했는데, 전 세계의 사랑해 가 적혀있는 사랑해 벽부터 유명 화가들이 살았던 바또 라부아, 국민 가수 달리다 동상 등을 거쳐 떼르트르 광장까지 갔다.

떼르트르 광장에 도달해서는 다양한 화가 분들을 볼 수 있었는데, 하나의 작은 야외 미술관에 와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초상화를 그리시는 화가들도 많았고, 작품을 판매하시는 분들도 많았는데 예술성이 느껴져 신기했다. 몽마르트르의 마지막은 사크레쾨르 성당이었는데, 운이 좋게도 미사가 열리는 시간에 가 같이 들어볼 수 있었다.

그렇게 즐거운 구경을 마치고, 푸니쿨라를 타고 내려와 근처 빵집으로 향했다. 에끌레어로 유명한 집이라 우리는 바닐라 에끌레어를 주문했다. 밖에 나와서 한 입 먹어보는데, 빵은 퐁신하고 안에 크림이 살짝 얼어서 사르르 녹는 게 아이스크림 같아 맛있었다.

다음 코스는 대망의 에펠탑! 노을이 질 시간이라 에펠탑이 잘 보이는 건너편 사요궁으로 가기로 했다. 파리에 와서 제대로 처음 보는 에펠탑이었는데, 사진이나 영상, 혹은 키링으로만 보던 에펠탑이 진짜 눈앞에 있는 게 비현실적이었다. 계속 믿어지지 않아 한참을 꿈 같이 있었다. 에펠탑을 보고 실망했다는 여러 후기를 듣고 기대를 안 해서인지, 살짝 어두운 하늘에 금색으로 빛나는 에펠탑이 너무 예뻤다. 사진도 찍고 예뻐서 파리랑 어울리는 노래랑 한참을 구경하다가 나가려는 순간, 반짝반짝하는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아름다워서 또 한참을 바라보다 발걸음을 옮겨 개선문으로 향했다.

개선문 역시 기대를 안 했는데, 내가 지금껏 본 개선문 중 가장 크고 웅장한 느낌이 있어 멋있었다. 개선문부터 샹젤리제 거리까지 쭉 걸어가다가 그래도 프랑스까지 왔는데 마카롱은 먹어보고 싶어 유명한 마카롱 집으로 향했다. 마리 앙투아네트 맛으로 주문해 먹어봤는데, 꼬끄는 쫀득함과 부드러움, 바삭함이 조화로운 맛이었고 안에 필링이 얇았는데 잘 어울렸다. 전체적으로 은은한 차향이 느껴져 맛있었다. 맛있게 먹고 르봉 마리아쥬 백화점까지 걸어가 구경을 했는데 딱히 사고 싶은 건 없어 패스하고 마트에서 간단한 간식거리와 한국으로 가져갈 먹거리 조금만 사서 귀가했다.

돌아와 라면 1개 끓이고 사 간 간식으로 와인도 마시고 씻고 잠에 들었다. 알차고 야무지고 행복한 파리에서의 마지막 하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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