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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카 BeanCa Nov 13. 2024

스무 살 대학생의 혼자 유럽 여행 35일 차

Day 6 in Italy, Assisi. 평화롭고 아름다운 동네

 좌충우돌 우왕좌왕한 하루이다. 로마에서 아씨씨로 넘어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기차를 타고 가야 해서 동행분을 만나기로 했는데, 언니는 화장품 브랜드 맥 앞에 있고 나는 맥도날드 앞에 있어서 만남이 꼬였다. 플랫폼도 늦게 고지가 되었는데, 운이 나쁘게도 가장 먼 플랫폼이 당첨되어 열심히 뛰어갔는데 결국 놓쳤다. 다행히 언니가 긍정적인 성격이라 기다리는 동안 이런저런 계획도 세우고 있었다. 중간에 foligno라는 역에서 한 번 갈아타야 했는데, 풍경이 이탈리아 같지 않고 스위스나 일본의 소도시 같아서 예뻤다. 사실 기차를 오래 기다려야 해서 죄송하기도 하고 지친 마음도 있었는데 밖에 풍경이 아름다워서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게 달리고 달려 아씨씨 역에 도착했다. 우리는 수녀원에서 자기로 했는데, 아씨씨 역에서 버스를 타고 또 13분을 걸어야 했다. 버스를 타는 과정까지는 괜찮았는데, 버스에서 내려서 걸어가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다. 언덕에 계단에 돌길에 캐리어 끌기 힘든 모든 조건이 가는 길에 있었다. 낑낑대며 캐리어를 끌고 올라가는데, 중간중간 보이는 풍경이 너무 아름다웠다. 힘들 때마다 고개를 돌려 옆이나 뒤에 풍경을 바라보면 행복해졌다. 힘들게 수녀원에 도착해 짐을 내려놓는데, 수녀님들도 친절하시고 방도 깔끔하고 좋았다. 사람이 많던 민박집에서 벗어나 이런 2인실에 있는다는 게 편하고 힐링되는 시간이었다.

 짐을 내려놓고는 본격적인 마을 구경에 나섰다. 성 프란테스코 성당에 가서 구경도 하고, 마을 이곳저곳의 기념품도 구경하고 골목길도 돌아다녔다. 같이 있던 언니의 말을 빌리자면, ‘보석’ 같은 풍경이 여기저기 있는 ‘동화’ 같은 마을이라는 표현이 딱 맞는 말이었다. 골목 사이로 들어가면 새로운 풍경이 나오고, 계단을 올라가면 아름다운 길이 나타나서 보기만 해도 걷기만 해도 행복해졌다. 중간에 걸어가다가 저녁에 마실 와인과 곁들일 살라미도 골랐다.

 그렇게 여기저기 구경을 하다가 향한 곳은 식당이다. 수녀원 저녁을 신청하긴 했지만,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아 간단하게 먹기로 했다. 그런데 여기 식당은 모두 7시 반부터 영업을 시작해 유일하게 열려있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가서 라비올리랑 와인 플래터 하나를 주문해서 먹었다. 플래터는 프로슈토와 치즈, 빵이 나왔고 라비올리는 트러플 크림소스 같았다. 실패할 수 없는 조합이지만 플래터는 빵이 버석하고 질겼고, 라비올리는 한국적인 맛이었다. 시판 크림 트러플 소스 같은 맛이었고, 라비올리도 마트에서 팔 것만 같은 라비올리였다. 나중에 보니 구글 평점이 1.5점인 충격적인 식당이던데,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래도 배고파서 만족스럽게 먹고 수녀원으로 걸어왔다.

 수녀원에서 잠깐 쉬다가 저녁을 먹으러 갔다. 저녁은 수녀원 지하에서 먹을 수 있었는데, 앉자마자 빵이 나왔다. 아직 배가 덜 고파 빵은 패스하고, 잠시 뒤에 파스타가 나왔다. 투박한 토마토 파스타였는데, 그냥 먹어도 맛있고 취향대로 치즈나 페퍼론치노 가루를 추가해 먹어도 맛있었다. 가장 맛있는 조합은 페퍼론치노 가루와 치즈 가루를 모두 뿌린 것인데, 한국인이 사랑하는 매콤함과 알싸함, 그리고 치즈의 짭짤함이 어우러져 맛있었다. 다음으로는 샐러드와 닭고기 구기, 그리고 구운 감자가 나왔다. 이탈리아에 와서 샐러드를 먹을 일이 없어 신선한 게 먹고 싶었는데, 딱 채소에 올리브 오일과 화이트 와인 식초를 뿌려 먹으니 상큼하게 맛있었다. 닭고기구이는 닭다리가 2개씩 나왔는데, 허브 때문에 느끼하지 않고 담백해서 전기구이 통닭을 먹는 것 같은 반가운 맛이었다. 감자도 포슬포슬하게 맛있어서 잘 먹었다. 내가 딱 먹어보고 싶었던 이탈리아 가정식의 느낌이라 행복하게 먹었다.

 이제 씻고 언니랑 와인도 마시고 잠에 들려고 한다. 아씨씨는 평화롭고,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동네인 것 같다. 일주일 정도 살면서 힐링하고 싶을 정도이다. 오기 전까지 고민을 하다가, 어릴 때의 행복한 기억을 떠올리며 오기로 정했는데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기대를 크게 하지 않아서 그런지 뜻밖의 행운을 만난 기분이라 더 좋다. 내일은 피렌체로 넘어가는 날이다. 아씨씨에서의 평안한 하루가 이렇게 마무리된다.      

<오늘의 지출>

기차 16유로

햄, 와인 9유로

저녁 20유로

우피치 미술관 29유로

더몰 셔틀 15유로

야경투어 2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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