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세계
오늘은 옥토버페스트에 가는 날이다. 어제 만난 언니가 간다고 그래서 같이 가도 되는지를 물어봤는데, 다행히 좋다고 해줘서 가기로 했다. 사실 언니랑 둘이 가는 건 아니고, 언니가 교환학생이라 같은 한국의 대학교에서 오신 분들이랑 같이 가기로 했다. 오전에 일어나서는 밀린 할 일을 처리했다. 어제 피곤해서 쓰다 만 여행 일기도 쓰고, rent fee 송금에 약간의 문제가 생겨 이것저것 알아보고 국내 요금제 변경도 신청했다. 이것저것 준비하다 보니 시간이 어느새 10시 반이다. 사실 점심으로 야무진 요리를 해 먹을까, 나가서 목도리를 사 올까 고민도 했지만 갑자기 피곤해서 침대에 누웠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를 누워있다 보니 일어나기가 싫어졌고, 나가기가 귀찮아졌다. 벌떡 일어나서 준비를 하고 나갔는데, 그러면서 느낀 것은 늘어질수록 나가기 귀찮고, 그래서 귀찮을수록 빨리 움직여야 되고 귀찮을 틈이 없이 움직여야 뭐를 많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 열심히, 알차게 살고 싶어졌다.
준비를 마치고는 지하철을 타고 옥토버페스트가 열리는 광장으로 향했다. 입구에서 사람들을 만나서 안으로 향했다. 구글지도에서 봤을 때는 작은 광장처럼 보였는데 들어가 보니 생각보다 거대해서 놀랐다. 아이들도 많고, 어른들 그리고 우리와 같은 외국인들도 많았다. 길거리 곳곳에 츄러스, 크레페와 같은 디저트 그리고 소세지와 같은 간식거리를 파는 가판이 즐비했다. 그리고 놀이기구도 정말 많았다. 약간 시시한 놀이기구를 상상했는데, 오히려 우리나라의 놀이동산보다도 더 스케일이 크고 스릴 넘치는 놀이기구가 많았다.
구경을 잠깐 하고 주변에 커 보이는 대형 텐트로 들어갔다. 자리가 없을까 봐 걱정했는데, 걱정이 현실이 되었다. 거대한 비어홀 내부가 사람으로 가득했다. 독일의 전통 의상을 입은 사람들도 많았고, 치킨 모자를 쓴 사람이나 전통 모자를 쓴 사람도 많았다. 한 바퀴를 거의 다 돌아서 출구까지 갔는데 자리가 없어서 나가려던 찰나, 운이 좋게도 테이블 하나가 거의 비어있어서 앉을 수 있었다. 앉자마자 종업원 분이 오셔서 인당 맥주 한 잔을 주문했다. 사실 맥주는 사실상 선택권이 알코올 / 논알코올밖에 없었다. 골라서 말씀을 드리면 바로 1리터짜리 맥주를 주신다. 무거울 정도로 크기도 크고 양도 많아서 축제에 온 기분이 물씬 풍겼다. 맥주를 마시면서 주변의 언니오빠들과 얘기하면서 친해졌다. 맥주를 마시는 내내 중앙의 밴드가 노래를 불렀다. 옥토버페스트의 주제가라고 하는 노래나 we are the champion과 같은 대중적인 노래, 그리고 뜬금없지만 생일 노래도 자주 나왔다. 다들 따라 부르기도 하고, 몸도 흔들면서 즐겼다. 맥주의 2/3을 마셔갈 때쯤 갑자기 뒤에 앉아있던 남자분이 말을 거셨다. 약간 취하신 상태로 말을 거셨는데 캘리포니아에서 온 35세 남자분이었다. 우리에게 어디서 왔는지, 나이는 어떻게 되는지를 물어보셨다. 그러고는 35살이라고 하시길래 예의상,, 25살 같다고 해드렸다. 그리고 한국인 친구가 있으시다고 “너 예뻐”, “너 귀여워”,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를 자랑하셨다. 어떤 친구를 만났길래 플러팅부터 알려줬는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또 무슨 얘기를 하다가 자기가 흥민손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나도 중학교 때부터 축구를, 그리고 토트넘을 좋아했기 때문에 나도 축구, 그중에서도 흥민손의 토트넘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갑자기 자기는 토트넘을 좋아할 수 없는 아스널 팬이라고,, 했다. 그래서 토트넘 vs 아스널로 장난을 치다가 짠도 하고 그랬다.
여기서 약간의 충격적인 내용이 나오는데, 사실 남자분의 테이블인 우리 뒷 테이블은 유난히 텐션이 높은 테이블이었다. 그리고 그 테이블을 마주 보고 앉은 언니들의 말로는 무슨 가루를 흡입한다고 했다. 그래서 약간은 경계하고 대화를 했는데, 대화 중에 갑자기 다른 일행이 남자분한테 가루가 든 통을 줬다. 그 남자분도 자연스럽게 손등에 가루를 털어서 한쪽 코를 막고 훅 들이마시고 코를 막아서 가루를 더 안으로 밀어 넣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 뭔지를 물어봤는데, 처음에는 코카인? 토바코?라고 말하다가 나중에는 그냥 good feel이라고 말했다. 우리한테도 권유했는데 우리가 너무 단호하게 거절해서 다행히 순순히 물러나셨다.
안에서의 시끄러운 분위기와 높은 텐션에 기가 약간 빠진 우리는 밖으로 나와서 구경을 했다. 쌀쌀한 날씨에 구경하다가 따뜻한 크레페도 사 먹고, 또 돌아다니다 롤러코스터도 탔다. 롤러코스터는 처음에는 시시해 보여서 긴장을 풀고 옥토버페스트의 전경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훅훅 내려가서 재밌었다. 빅텐트에서 술도 마시고 길거리에서 간식도 사 먹고 다른 사람이랑 얘기도 해보고 놀이기구도 다 타서 버킷리스트를 모두 달성한 옥토버페스트 방문기였다.
지친 상태로 집에 도착했는데, 배가 고팠다. 그리고 맥주를 1리터 가까이 마셔서 그런지 해장이 하고 싶었다. 그래서 누룽지를 끓여서 밥처럼 만들고(아시안 마트에 햇반이 없어.. 사지 못했다...) 버섯 해장국 블록을 끓여서 김이랑 같이 먹었다. 소소한 밥상이지만 유럽 와서 처음 해먹은 밥이고, 처음 먹은 한식이라서 특별하게 느껴졌다. 혼자 있으니까 확실히 대충 먹게 되는 것 같은데 앞으로는 파스타도 많이 해 먹고 한식도 만들고 고기도 구워 먹어야겠다.
지금까지는 내일의 일정에 대한 약간의 계획은 있었는데, 내일은 정말 비어있는 날이다. 일단 아침에 빨래를 하는 것 이외에는 일정이 없어서 옥토버페스트에 다시 가볼지, 짧은 뮌헨 여행을 떠날지, 집에서 쉬면서 맛있는 밥을 만들어 먹고 스위스와 영국의 여행계획을 짤지 고민 중이다. 내일도 행복한 하루를 보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