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빈카 BeanCa Nov 17. 2024

스무 살 대학생의 혼자 유럽 여행 39일 차

Day 10 in Italy, Florence. 소도시와 함께한 마지막

 피렌체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이다. 오늘은 투어를 신청해 근교 도시를 돌아다닐 예정이다. 시에나와 와이너리를 가고 싶어서 알아본 투어인데, 한국인 투어는 찍고 찍고 찍는 느낌이 강하다고 해서 외국 투어를 신청했다. 아침 7시에 일어나 후다닥 준비를 마치고 투어 장소로 향했다. 피렌체 동행 언니와 가기로 했는데 어젯밤에 같은 방 언니랑 얘기하다가 언니도 온다고 해서 셋이 가게 되었다. 미팅 포인트는 중앙역에서 20분 정도 떨어진 곳이라 여유롭게 출발했다. 트램을 타고 미팅 포인트로 가서 간단한 안내를 듣고 버스에 탑승했다. 원래도 잠이 많은데 아침에도 일찍 일어나서 버스에 타자마자 기절했다. 자다가 잠깐 눈을 떴는데 보이는 풍경이 아름다운 평원이라 보기만 해도 마음이 평온해졌다.

 한 시간 정도를 달려 도착한 곳은 시에나이다. 피렌체, 로마 등 다양한 이탈리아의 도시 중에서 시에나가 가장 중세의 모습이 잘 보존된 도시인 것 같다. 건물들도 분위기가 약간 다른데, 벽돌 건물이 많아 antique 한 느낌이 강했다. 자유 시간은 2시간 정도 주셔서 중심에 있는 캄포 광장부터 향했다. 앞에 있는 시청 건물이 웅장했고, 광장이 넓어서 사람들이 누워있기도 하고, 학생들이 여행을 와 설명을 듣고 있기도 했다. 처음에는 ‘광장이 왜 유명하지?’ 싶었는데 넓은 광장에 앉아있으면 마음에 편안해졌다.

 시에나에서 보고 싶었던 게 많아 발걸음을 재촉해 대성당으로 향했다. 피렌체 두오모를 보고 와서 감흥이 있을까 했는데 또 다른 웅장 함이었다. 시에나 자체가 조금 차분하고 무거운 분위기가 있는데 이 분위기에 웅장한 성당이 있으니 멋있기도 하고 압도되는 느낌도 있었다. 전에 이탈리아 여행에 왔을 때 엄마가 시에나를 가장 좋아하셔서 대성당을 보여드릴 겸 영상통화도 하고 다시 걸어가기 시작했다. 구체적인 목적지를 정해놓지 않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시작했는데, 우연히 들어간 골목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만났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풍경이었는데, 보자마자 반해서 십 분 정도를 멍하니 보고 있었다. 그러고 이동하면서 갈 장소를 찾아봤는데, 성녀 카테리나 집과 산 도메니카 성당이 있어서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성녀 카테리나의 집은 걸어서 5분 정도 되는 거리에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풍경이 아름다운 수녀원 같았다. 꽃도 조화롭게 있고, 차분하면서도 밝은 분위기라서 홀린 듯이 들어갔다. 들어가서 구경을 하다가 성당 같은 공간에 들어갔는데, 분위기가 신비로웠다. 내가 가 본 성당 중에서 가장 압도되는 것 같았다. 이탈리아에서 큰 성당도 가고, 유명하다는 성당도 다 갔지만 이렇게 분위기와 신성함에 압도되는 성당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무교지만 잠깐 앉아서 기도하고 나왔다. 옆에 기념품 가게가 있어 가족 선물도 사고 길을 나섰다.

 산 도메니코 성당으로 향했는데, 밖에서 봤을 때 크지만 투박한 건물 같았다. 안에 들어가 보니 그림이 군데군데 있는 투박한 건물이긴 했지만 한쪽 편에 있는 커다란 모자이크 창문 7개가 인상 깊었다. 일반적인 교회, 모자이크와는 달리 강렬한 색감의 모자이크라서 조금은 무섭기도 했지만 멋있었다. 모임 시간이 다가와한 바퀴만 둘러보고 나왔다.

 가는 길에 찾아본 조각 피자집이 있어 간식으로 먹으려고 갔다. 이탈리아에 먹으러 와서 그런지 먹어도 먹어도 마지막 날이라는 생각에 아쉬움이 계속 들었던 것 같다. 조각 피자를 먹은 적이 없어서 마르게리따 한 조각을 사봤다. 2유로였는데, 커다란 피자 조각을 데워주셨다. 한 입 먹어보니 비주얼대로 간단하지만 그래서 맛있는 맛이었다. 얇고 바삭한 도우와 새콤한 토마토소스, 짭짤하고 고소한 치즈까지 정석적인 맛이라 걸어가면서 맛있게 먹었다. 다음으로 또 먹으러 갔는데, Grom이라는 젤라또 집이 있는데 로마에서도 본 체인점이라 한 번 가보고 싶어 방문했다. 바티칸 가이드님께서 추천해 주셔서 피스타치오와 망고 맛을 먹었는데, 유명한 프랜차이즈 젤라또 집에서 먹을 것 같은 깔끔하고 달달한 젤라또 맛이었다. 나는 프랜차이즈보다는 작은 가게의 젤라또를 좋아해 감동적인 맛은 아니었다. 그렇게 젤라또를 먹으며 주변 구경도 하다가 미팅 포인트로 향했다.

 버스를 타고 30분 정도를 달려 와인 테이스팅 장소로 갔다. 점심 식사와 함께 9가지를 테이스팅 하는 곳이었는데 와인 4 종류, 발사믹 2 종류 그리고 오일 3 종류를 먹어봤다. 와인은 화이트 와인 한 종류, 레드 와인 두 종류 그리고 로제 와인 한 종류였다. 화이트 와인부터 마셔봤는데 시원하고 탄산이 센 와인이었는데 깔끔해서 먹어본 화이트 와인 중에 가장 맛있었다. 프루티 하면서도 달지 않고 가벼워서 식전주로 딱이었다. 가이드님이 설명해 주시는 순서대로 테이스팅이 진행되었는데, 화이트 와인 다음은 올리브 오일이었다. 빵에 뿌려져 있어 올리브 오일도 음미하고 빵에 살라미와 프로슈토도 올려서 먹어봤다. 올리브의 향이 진해 맛있었다. 다음으로는 스푼에 올려진 20년 된 발사믹도 먹어봤다. 꿀처럼 점성이 큰 발사믹이었는데 먹어보니 역시 살면서 먹어 본 발사믹 중에 가장 맛있었다. 이 표현이 계속 나와 신뢰도가 낮아질 것 같지만 이 발사믹이 마지막이다. 상큼하고 톡 쏘는데 달달하고 부담스럽지 않아 맛있었다. 발사믹보다 올리브오일을 좋아해 발사믹에 큰 감흥이 없을 줄 알았는데 60유로나 하는 발사믹이라 그런지 확실히 달랐다. 혀에 닿자마자 눈이 번쩍 뜨이는 맛이었다. 서랍에 쟁여놓고 샐러드, 치즈, 과일, 그리고 아이스크림까지 뿌려먹고 싶었다. 다음으로는 조금 더 라이트 한 발사믹을 먹어봤다. 점성이 거의 없는 흐르는 식초 느낌의 발사믹이었는데 역시 깔끔했다. 중간중간에 프로슈토와 살라미도 먹고, 트러플 오일이 뿌려진 빵도 먹었다. 그러고 두 번째 와인인 레드 와인을 시음했다. 프루티 한 향이 있고 가벼운 레드 와인이었는데 같이 간 언니들이 감탄했지만 와알못인 나에게는 그저 맛있는 와인 같았다. 그러고는 점심 식사가 나왔다. 점심은 라구 파스타였는데 면이 펜네 면이라 맛있었다. 파스타와 함께 세 번째 와인의 시음이 시작되었다. 세 번째 와인은 고기류와 잘 어울리는 드라이하고 묵직한 바디감의 와인이었는데, 두 번째 마신 가볍고 프루티한 레드 와인과 비교하니 같은 레드 와인인데도 맛이 확연하게 달라서 신기했다. 레드 와인을 동시에 두 종류 마셔보기는 처음인데 가벼움과 묵직함, 프루티함과 우디향, 라이트한 마무리와 드라이한 마무리 이렇게 비교하면서 음미하니 재밌었다. 중간에 파스타에 페퍼오일도 뿌려주셔서 맛있게 먹어볼 수 있었다. 마지막 시음은 로제 와인이었다. 시원하게 주셨는데, 디저트 와인의 맛이 잘 느껴져서 맛있었다. 비스코티 쿠키와 함께 먹으니 잘 어울리고, 파티에 잘 어울리는 맛이었다. 테이스팅의 피날레로 완벽했다. 그렇게 배부른 테이스팅을 마치고 제품 구경도 했다. 와인이 40유로부터 60유로, 발사믹도 60유로 이렇게 비쌌는데 언니들은 두 세병씩 사고, 나는 들고 갈 자신도 없고 돈도 없어서.. 사지 못하고 귀가했다.

 다음으로 간 코스는 몬테리지아노이다. 언덕 위에 있는 작은 마을이라 자유시간을 50분 정도 주셨는데 충분했다. 한 바퀴를 둘러보는데 20분이면 충분한 작은 마을이고, 언덕 위에 있어서 주변이 나무로 가득해서인지 동화 속에 나오는 비밀 마을 같았다. 언니들이랑 가위바위보로 생 올리브 먹기도 했는데, 내가 걸려서 먹어봤다. 그린 올리브와 블랙 올리브가 있어 물로 가볍게 씻어 먹어봤는데 올리브의 향긋한 향은 나지만 굉장히 떫었다. 그린은 딱딱하고 블랙은 조금 더 말랑한데 블랙이 더 떫었다. 너무 떫어서 물을 마셔도 없어지지 떫은맛이 않았지만 덕분에 입 안이 깔끔해진 느낌이었다. 올리브라는 이탈리아의 특산품을 먹어볼 수 있고, 하나의 특별한 추억도 생길 수 있어서 좋았다. 아기자기한 산속 마을 같았던 몬테리지아노를 짧게나마 즐기고 버스로 향했다.

 그렇게 버스에서 또 달려 마지막 도시인 산 지미냐노에 도착했다. 사실 오늘의 네 번째 도시라 그런지 도착했을 때는 약간 지쳐 있었다. 아침부터 일어나고 술도 마셔서인지 피곤하기도 했고, 네 번째 도시다 보니 감흥도 조금 떨어진 것 같다. 그러나 산 지미냐노의 풍경과 분위기는 우리의 피곤함도 날려주었다. 몬테리지아노보다 큰 도시고 관광 산업이 조금 더 발달되어 있지만 조용한 분위기는 비슷했다. 들어가자마자 발사믹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식당에 들어갔는데, 주인 분께서 온갖 종류의 발사믹을 주셨다. 가장 맛있었던 오리지널 발사믹부터 베리, 화이트 발사믹, 패션후르츠 발사믹까지 다 맛있었다. 가장 특이했던 건 트러플 꿀이었는데, 예상치 못한 조합이었지만 오묘하고 신비한 맛이었다. 세상 어떤 종류의 치즈와도 잘 어울릴 것만 같은 맛이었다. 꿀을 좋아하는 지인에게 선물할까도 싶었지만 하나 둘 사다 보면 끝이 없을 것 같아 포기하고 돌아다녔다. 셋 다 걸어 다니는 것을 좋아해서 골목골목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어떤 전망대에도 갔는데, 우연히 프로포즈하는 커플을 봐서 찡했다. 남자분도 여자분도 행복 가득한 표정과 웃음이라서 옆에 있던 우리도 행복해지는 기분이었다.

 산 지미냐뇨의 또 다른 행복은 젤라또였다. 세계 1등을 한 젤라또 집이 있다고 해서 가봤다. 전에 먹어보지 못한 맛을 먹고 싶어서 레몬과 에스프레소를 주문했다. 레몬은 상큼하게 맛있었고, 에스프레소는 달달해서 믹스커피 맛이었다. 둘 다 쫀득하고 부드러워서 맛있게 먹었다.

 맛있게 먹고는 버스로 돌아와야 했다. 자유시간이 2시간 넘게 있는데 마을을 다 둘러보기도 했고 다들 피곤해서 40분 정도 일찍 길을 나섰다. 하지만 반대쪽 문으로 나와 성벽을 둘러싼 길을 20분 정도 걸었다. 안에 마을은 다 구경한 것 같아 외곽의 자연을 보면서 걷기로 했는데, 시간이 5시인데도 어두워서 밤 산책을 하는 것 같은 기분도 들어서 좋았다. 그렇게 도란도란 얘기를 하면서 산책을 했다. 마지막 미팅 포인트로 돌아와 버스에 탑승해 마지막 한 시간을 달려 피렌체로 돌아왔다.

 피곤했지만 이렇게 피렌체에서의 마지막 하루를 마무리하기는 아쉬워서 젤라또를 먹으러 갔다. 피렌체에서 가장 맛있었던, 이탈리아에서 가장 내 취향이었던 젤라또 집을 다시 방문해 이번에는 세 가지 맛으로 맛있게 먹었다. 여기는 손수 젤라또를 만드시는지 며칠 전에 갔을 때와 메뉴가 바뀌어 있었다. 치즈+배, 감 그리고 다크 초콜릿을 먹고 마트로 향했다. 마트에서 엄마가 부탁한 햇 올리브오일도 사고 발사믹도 사서 저녁 먹을 식당으로 향했다.

 같은 민박집에 있던 언니랑 저녁을 먹기로 해서 자자로 향했다. 안심 스테이크와 감베리를 주문했는데, 이탈리아 여행의 마지막 끼니로 완벽했다. 전에는 소스가 있는 스테이크를 먹었다면 오늘은 소스가 없는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소스 있는 스테이크가 조금 더 맛있었지만 역시 자자는 맛있었다. 그렇게 행복하게 먹고 돌아와 언니랑 와인에 자몽, 과자를 먹으며 도란도란 얘기를 하고 잠에 들었다.

 오늘은 신기하게 외국 투어를 한 날이다. 덕분에 알차고 후회 없는 이탈리아에서의 마지막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내일이면 돌아가는데 집이 그립기도, 이탈리아를 떠나는 게 아쉽기도 하다. 이렇게 행복한 기억만 가득 안고 이탈리아 여행이 끝이 났다.      

<오늘의 지출>

교통 3.4유로

식사 45유로

선물 27유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