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 in Czechia, 체코의 영어 이름이 Czechia라니
동유럽 여행이 시작되는 날이다. 45일 만에 엄마를 만나는 날이기도 하다. 분명 작년에 기숙사에 살면서 한 달 정도 집에 가지 않은 적도 있었는데, 그때와 기분이 사뭇 다르다. 물리적 거리 때문일까?
아침부터 일어나 준비를 시작했다. 어제 이것저것 알아본다고 새벽 4시에 자서 피곤했지만, 버스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8시 20분쯤 일어났다. 준비를 착착하고 짐도 마저 싸고 나니까 어느덧 출발 시간이 5분 남았었다. 준비가 예정시간보다 일찍 끝나 기분이 좋았다. 마지막으로 쓰레기를 버리고 출발하려고 뒤를 돈 순간, 빈 맥주병을 건드려 병이 깨지고 말았다. 당황했지만 큰 유리조각을 집어 먼저 버리고 파편들을 물티슈로 닦기 시작했다. 분명 물티슈를 접어 두껍게 만들었지만, 유리 파편이 날카로운 탓인지 손가락에 살짝 찔렸다. 어제 과도에 이어 오늘 유리조각까지 이틀 연속으로 피를 보니까 기분이 이상했지만 들떠서 그런가 보다 생각이 들어 차분하게 마저 정리를 했다. 그렇게 정리를 마치고 집을 나서니 예정 시간보다 5분 정도가 늦어졌다.
뮌헨에서 버스는 처음 타보는데, 악명 높은 플릭스버스를 타보기로 했다. 가격도 저렴하고, 중간에 정차 없이 쭉 가는 노선이라 캐리어 도난도 없을 것 같아 선택했다. 중앙역에서 도보 15분 정도 떨어진 곳이었는데, 나는 캐리어가 있어 Sban을 타고 갔다. Sban을 타러 갔는데, 분명 구글 지도에는 플랫폼 1이라고 나와있는데 플랫폼 1에 있는 Sban들은 내가 보고 있는 목적지로 가는 기차들이 아니었다. ‘뭐지? Sban은 원래 이렇게 한 라인 안에서도 노선이 다양한가?’ 싶어서 잠깐 기다렸는데 알고 보니 내가 가여되는 방향의 Sban은 반대 플랫폼인 2번 플랫폼에 있었다. 무사히 Sban을 타고 버스역에 도착해 샌드위치도 사고 캐리어도 넣어놓고 버스에 탑승했다. 친구가 보내준 플릭스버스 후기에서 젊으면 타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평이 안 좋아서 걱정을 했는데, 생각보다 좋았다. 자리마다 충전기도 3개씩 있고, 레그룸 공간도 나쁘지 않아서 안심하고 편하게 갔다.
4시간 50분이 걸리는 긴 여정이었는데, 어제 잠을 조금밖에 못 자서 기절해서 자면서 왔다. 딱 중간 지점인 독일과 체코의 국경 부분에서 한 번 멈춰 화장실에 갈 시간을 주셨다. 그때까지 괜찮아서 가만히 앉아있었다. 그러고 다시 출발해서 가는데, 한 시간 정도 남았을 때쯤, 그러니까 4시간을 가만히 앉아있으니 찌뿌둥하기 시작했다. 아까 잠깐이라도 일어날걸 생각하며 마지막 한 시간은 이것저것 알아보면서 왔다.
프라하 메인역에 도착해 에어비앤비까지는 10분 정도 걸어야 했다. 돌길이라서 힘들었지만, 앉아있다가 오랜만에 움직이니 기분이 좋아서 열심히 걸어갔다. 도착한 에어비앤비가 깔끔하고 좋아서 가족들한테 자랑도 하고 잠깐 쉬다가 집을 나왔다. 한국에서부터 기다리던 체코의 말렌카 케이크를 먹으러 근처 카페로 갔다. 내가 딱 좋아하는 분위기와 감성이라서 들어간 순간부터 미소가 스멀스멀 나타나고 행복해지기 시작했다. 노란 벽지에 테이블마다 있는 아기자기한 꽃과 인테리어, 그리고 직접 만든 듯한 케이크와 아담한 가게 크기까지 모든 게 내 취향이었다. 말렌카 하나와 라떼 한 잔을 주문해서 마시니 천국이었다. 커피를 좋아해 혼자만의 (세상 비공식적이고 주관적인) 커피 기준이 있는데 쓴 맛이 없고 거품이 따로 놀지 않고 우유와 커피가 조화로운 라떼 맛집이었다. 쌀쌀한 날이라서 따뜻한 커피로 몸을 녹이니까 두 배로 행복했다. 그렇게 케이크에 대한 기대감을 안고 한 입 먹어보니 내가 예상한 식감이랑 약간은 달랐다. 나는 쫀득한 식감을 예상했는데, 위와 아래는 약간 퍼석하고 가운데로 가면 쫀득했다. 딱 적당히 달달하고, 식감도 다양하고 마냥 달지 않고 중간에 상큼함도 있으면서 견과류의 고소함도 느껴져서 정말 맛있었다. 옆에 있는 크림이 진짜 킥이었는데, 살면서 먹어본 크림 중에 세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맛있었다. 유럽에 와서 먹어본 크림들(특히 이탈리아 젤라또 위에 있던 크림)은 무겁고 느끼한 맛이 강했다면 여기의 크림은 크림 같지 않게 가볍고 산뜻했다. 평소에 크림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데도 너무 맛있어서 더 먹고 싶을 정도였다. 퍼석한 부분이랑 같이 먹으니 잘 어울려서 행복하게 먹었다.
그러고는 나와서 여기저기 구경을 시작했다. 하벨 시장도 구경하고, 현금이 조금은 필요할 것 같아 유로로 환전도 하고, 옷가게도 구경했다. 신기하게도 여기 옷이 독일보다 비쌌다. 체코가 동유럽 중에서 물가가 저렴한 편이라던데 의외였다. 그렇게 여기저기 들어가서 구경하고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마트이다. 엄마가 밤늦게 와서, 미리 물이랑 내일 아침에 먹을 요구르트를 사러 갔다. 다른 건 엄마랑 같이 구경하고 살려고 참고 물 두 병이랑 요거트 두 개만 사서 귀가했다.
공항으로 마중을 나가기로 했는데, 시간이 2시간 반 정도가 떠서 내일 계획도 알아보고 글도 조금 썼다. 확실히 누구랑 같이 여행을 하니까, 그리고 같이 여행하는 사람이 엄마라서 그런지 혼자 여행할 때에 비해 정말 10배는 꼼꼼해지는 것 같다. 무계획으로 떠난 슬로베니아에 비해서는 한 15배..? 많이 준비해서 그런지, 오랜만에 엄마를 봐서인지, 엄마랑 둘이 하는 여행이 처음이라 그런지 설레기도 떨리기도 한다.
엄마가 밤늦게 도착해서 도착하자마자 짐만 정리하고 바로 잠에 들 것 같다. 그래서 샤워도 이런저런 준비도 미리 해놓고 나가려고 한다. 내일은 프라하 시내를 전체적으로 구경하는 날이라 기대가 된다. 이번 여행 정말 행복할 것 같다.
<오늘의 지출>
샌드위치 4.4유로
카페 185 코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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