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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카 BeanCa Oct 16. 2024

스무 살 대학생의 혼자 유럽 여행 7일 차

오늘도 생각하고 발전한다(그렇.. 겠지..?)

 오늘은 독일에서 맞이하는 제대로 된 첫 일요일! 뮌헨의 미술관들 중에 일요일에 1유로로 입장할 수 있는 곳이 많아서 일요일은 미술관 투어로 생각했다. 뮌헨의 미술관 중에서 가장 유명하다고 들은 게 3개의 피나코테크였다. 시대 순으로 14-18세기의 작품을 모아놓은 알테 피나코테크, 18-19세기의 노이에 피나코테크 그리고 현대 미술관인 피나코테크 데어 모데르네가 있다. 안타깝게도 노이에 피나코테크는 29년까지 휴관이라서 오늘은 2개의 피나코테크만 가기로 했다. 약간은 배부르고 가벼운 상태로 가고 싶어서 어제 미리 사놓은 빵을 1/3개만 먹고 출발했다. 일요일에는 마트도 문을 안 연다고 해서 겁을 먹고 빵도 미리 사놨던 것인데 가는 길에 빵집들이 다 문을 열어서 혼자 머쓱해졌다... 가는 길은 오랜만에 날씨가 화창해서 기분이 좋았다. 요 며칠 기분이 약간 gloomy 했던 게 날씨 때문인가 싶기도 했다. 가는 길에는 예쁜 카페도 많고, 맛있어 보이는 식당도 많아서 이 거리가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방앗간 거리가 될 것 같다!

 첫 코스는 피나코테크 데어 모데르네이다! 현대 미술을 좋아하기도 하고, 세 미술관 중에 가장 인기가 많다고 하길래 첫 순서로 정했다. 1유로를 내고 티켓을 받아서 구경을 시작했다. 멋모르고 1층과 지하부터 시작했는데, 지하가 가장 재밌었다. 자동차의 나라답게 지하의 시작은 화려한 자동차와 바이크, 오토바이가 있었다. 이어진 길을 따라 한층 더 지하로 내려가니 아이디어 제품?이 모여 있었다. 예쁜 물병, 열 가지 디자인의 주전자, 수십 개의 서로 다른 디자인을 가진 의자들처럼 실생활에서 사용할만한 제품들이 다양한 디자인으로 전시되어 있었다. 오랜만에 창의적인 것을 보니까 설레기도, 신나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의자를 좋아하는 것 같다. 전시되어 있는 수십 개의 의자를 보니까 편해 보이거나 예쁜 의자들은 사서 집에 하나씩 놓고 싶어졌다. 신기해 보이는 작품들의 설명을 하나씩 읽는 것도 재밌었다.

 다음으로는 “Heading Outside”라는 이름의 전시가 있었다. Outdoor에서 사용할만한 의자나 식기를 전시해 놨는데, 마지막에 관람객 참여형으로 ‘What does “Heading Outdoors” mean to you’라는 질문이 있었다. 안 그래도 나도 최근에 밖에 나가는 것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해외에 왔다고 해서 매일 나가야 되는 것일까? 해외에 최소 4달은 있을 것 같은데 4달 내내 밖에 나가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은데, 집에 있어야 되는 건가? 해외에 와서 집에 있으면 해외에 온 의미가 없지 않을까? 등등 다양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사실 집에 아직 먹을게 거의 없고, 매일매일 사야 먹을 수 있어서 밖에 나가야 되는 것은 맞지만, 매일 나가면 돈도 체력도 많이 소모되니까 쉽지는 않다. 그런 와중에 저 질문을 보고, 영어로 된 글을 하나씩 읽었다. 가장 마음에 드는 글은 ‘ENJOY MY TIME’이라는 내용의 글이었다. 보고 약간의 깨달음을 얻은 것 같다. 밖에 나가는 것 또한 나의 시간을 즐기기 위해서인데 왜 나가는 것에 대해 강박을 받고 있었던 것인가 싶었다. 앞으로는 집에 있는 시간도, 밖에 있는 시간도 찬찬히 즐기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내일은 가볍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해볼까 한다. 마음에 드는 동네의 카페에 가서 시간을 보내고, 아시안마트 가서 장도 보고, 물과 같은 식량도 구비해놓으려고 한다.

 잠깐 다른 길로 빠졌는데, 지하층은 사진과 낙서처럼 보이는 드로잉을 벽면과 바닥으로 꾸며놓은 전시관도 있고, 고대 동굴 같은 방으로 들어가 일상적인 소소한 작품들의 미적인 전시를 봤다. 보면서 물건이 존재하는 위치가 물건을 결정짓는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집에 있으면 이사할 때 버릴만한 물건들도 괜히 미술관에 아름답게 배치되어 있으니까 작품처럼 느껴지고, 의미 있어지는 것 같다. 사실 여기서 더 나아가서 엄청난 의미를 떠올리고 싶지만, 뼈까지 이과인 나는 여기가 한계인 것 같다.

 지하층을 관람하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동선이다. 이왕 들어간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작품을 모두 관람하고 싶은 것이 내 욕심이지만, 그러기 위해서 항상 동선을 열심히 고려하는 편이다. 피나코테크 데어 모데르네 지하층의 동선은 물 흐르듯 매끄러웠다. 하나를 관람하면 이어지는 내용의 다음 동선이 기다리고 있고, 한 바퀴를 쭉 돌아서 모든 전시관을 관람할 수 있어서 좋았다. 위층은 미로처럼 빙빙 돌면서 구경했지만.. 지하층은 구경을 하고 마지막에 미지의 문으로 퇴장해서 위층으로 올라가는 것까지가 이 신비로운 관람의 완성 같았다. 위층은 아래층에 비해 임팩트가 크게는 없었지만... 피카소를 비롯한 다양한 작품이 있어서 돌아다니면서 구경하기 좋았다.

 피나코테크 데어 모데르네의 관람을 마치고는 언니가 추천해 준 젤라또집으로 향했다. 원래도 아이스크림을 사랑하는데, 구글 리뷰도 너무 좋아서 꼭 가고 싶었다. 미술관 관람 중간에 앉아서 쉬다가도 리뷰를 보면서 메뉴를 고민했다. 고민 끝에 정한 메뉴는 초코랑 피스타치오!! 리조가 없는 젤라또집에서 초코가 근본이라,, 초코를 넣었고 리뷰를 통해서 피스타치오가 정말 맛있다는 것을 알고 이 두 가지 맛을 골랐다. 맛보기 맛도 하나 주셔서 망고패션프루츠로 골랐다. 근처 벤치로 걸어가면서 먹어본 첫 입은 감동적이었다..! 한국에서도 여름에 젤라또 맛집을 찾아 여기저기 다녔는데 여기가,, 찐이었다,, 여기도 이 동네 올 때마다 와서 맛을 도장 깨기 할 것 같다!!! 쌀쌀한 날씨에 밖에서 젤라또를 먹었더니 쌀쌀해져서... 다음 미술관에 가기에는 힘이 없었다.

그래서 또 다른 언니의 추천 카페에 가서 따뜻한 카푸치노 한 잔을 주문했다. 일요일이라서 어디에 가도 사람이 많았지만, 이 카페에도 사람이 많아서 기대가 되었다. 디저트도 너무 맛있어 보였는데 젤라또를 먹으며 아침에 먹은 빵의 1/3을 먹었더니 배가 또 불러서 눈물을 머금고 카푸치노만 주문했다. 잠깐의 기다림 끝에 받은 카푸치노는 정말 감동 그 자체..! 부드럽고 따뜻하고 포근하고 커피 맛도 조화로워서 행복하게 몸을 녹이면서 잘 마셨다. 책도 조금 읽고 쉬다가 다음 미술관으로 향했다.

 다음 미술관은 알테 피나코테크!! 14-18세기의 그림들이 모여있는 박물관이다. 여기도 마찬가지로 2개의 층으로 구성괴어 있다. 마네, 모네, 반 고흐 등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알테 피나코테크는 크게 일자형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끝에서 시작해서 쭉 돌아보기 좋았다. 가장 마음에 든 제품은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인데, 이런 색감과 풍경과 질감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미술 작품이 마음에 드는 이유는 크게 없고, 그냥 그때그때 보고 가장 마음에 드는 게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미술관답게 전시도 예쁘게 잘 되어 있었다. 전시관마다 강렬한 색감의 벽이 있는데, 그 벽과 잘 어울리는 작품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어서 보는 재미가 있었다. 피나코테크 데어 모데르네에 비해 쓸 말이 적은 것은.. 감흥이 조금 떨어진 탓일까... 그리고 위층에는 전체적으로 종교적인 색채가 느껴지는 성경의 작품이 많이 보였다. 크기가 큰 작품들도 많아서 후루룩 보고 온 것 같다. 1유로의 행복..!!

 카페에 갈까 집에 갈까 하다가 가고 싶은 카페의 마감시간까지 1시간밖에 남지 않아.. 가도 30분만 앉아있을 수 있어서 집으로 향했다. 원래의 계획은 아라비아따 파스타와 함께 소세지를 하나 구워 먹는 것이었다. 파스타를 삶으면서 소세지를 까서 구우려는데, 소세지가 왠지 모르게 흐물.. 했다.. 특이한 소세지인가 싶어서 굽고 있는데 소세지가 점점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파스타를 이미 삶아버려서 돌이킬 수 없게 되어서.. 녹아버린 소세지를 약간 으깨서 소스랑 섞어서 파스타를 만들었다. 맛은.. 대성공!! 사실 소세지의 맛+아라비아따 소스라서 실패할 수 없는 조합이긴 했다. 알고 보니 내가 산 소세지를 빵에 발라먹는 TeeWurst?라는 종류라고 한다. 다음에는 이런 소세지 피해서 사야겠다... 그러고는 집을 조금 치우고 물을 항상 무겁게 들고 오는 게 힘들어서 물이 배송이 되는지를 한참 찾아보다가..! 잠에 들었다.

너무 맛없어 보이지만.. 맛있었다

 오늘 하루를 생각해 보면, 나 자신에게 조금은 느슨해진 하루인 것 같다. 굳이 모든 하루를 알차게 살아갈 필요도 없고, 매일 나가서 뭔가를 보고 경험할 필요는 없다. 내가 즐겁기 위해서 나가면 되는 것이다. 아직도 매일 부지런하게 알아보고 나가야 된다는 강박이 남아있지만 차차 내가 즐거운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사실 지금도 매일이 행복하고, 이 강박에 대해서 느끼는 스트레스? 이런 건 전혀 없다. 그저 작은 생각일 뿐이다. 그래도 하루하루 생각도 많이 하고 발전하고 싶다.     

<오늘의 지출>

박물관 입장권 2유로

식비 8.5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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