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에서 보낸 하루
오늘도 이동에 하루를 거의 다 썼다. 어젯밤에 술을 마셔서인지 뻗었는데, 핸드폰 충전을 깜빡하고 잠에 들어서 알람이 울리지 않았다. 9시 20분에 나가려는 계획이었는데, 기적적으로 눈이 8시 반에 떠져서 호다닥 준비를 하고 체크아웃을 했다.
드레스덴 역으로 걸어가 5분을 남기고 탈 수 있었다. 2시간 반 정도를 달려갔는데, 첫 기차에서는 졸려서 거의 잠을 잤다. 중간중간 일어나 유튜브도 보고 책도 읽었다. 다행히 5분 정도만 연착이 되어 다음 기차도 무사히 탔다. 다음 기차는 3시간 반을 가야 했는데, 아까ᆞ 읽던 책도 마저 읽고 잠도 잠깐 자고 멍도 때렸다. 창 밖 풍경이 예뻐서 노래를 들으며 멍하니 바라봤다. 유럽 생활이 끝나간다는 게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이 기차도 얼마 안 남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새삼 그동안 정말 행복한 생활이었다는 생각이 들어 울컥했다.
두 번째 열차도 무사히 타서 4시 반쯤 뮌헨에 다시 도착했다. 레베에 들러 장을 보러 가려다가 역 지하에서 전부터 먹어보고 싶었던 음식이 보여 홀린 듯이 들어가 사 먹었다. 역을 지나갈 때마다 독일 사람들이 많이 사 먹고 있었고, 독일 여기저기서 많이 보여서 먹어보고 싶었다. 이제 얼마 안 남았다는 생각 때문인지 하고 싶었던 거, 먹어보고 싶었던 거를 다 도전해 보게 된다. 정육점 같은 곳에서 파는 햄이 들어간 빵이었다. 독일식 빵에 햄과 소스만 들어가는데, 주문하니 바로 커다란 햄 덩어리에서 한 조각을 잘라 빵 사이에 넣어주셨다. 집에 가서 먹을까 하다가 뜨끈뜨끈하길래 먹고 왔다. 맛은 보이는 그대로의 맛이었는데, 햄이 많이 짜지 않고 육즙도 가득해서 맛있었고, 빵도 적당히 딱딱해서 바삭하고 고소했다. 그리고 머스터드가 와사비처럼 알싸해서 느끼하지 않았다. 핫도그와 비슷한 맛이었는데, 소세지의 나라답게 맛있었다. 독일 와서 느끼는 건데, 밖에서 사 먹는 소세지가 정말 맛있는 것 같다. 왜 집에서 먹으면 그 맛이 안 나는지 모르겠지만, 밖에서 커리부어스트나 핫도그를 사 먹으면 다 맛있는 것 같다.
배부르게 먹고 레베로 향했다. 전에 산 맛있었던 치즈를 사려다가 새로운 치즈가 있길래 한 번 사봤다. 오늘도 방울토마토도 사고, 샐러드용 채소도 샀다. 트러플 버터가 유명하다고 해서 사고 싶었는데 안 보여서 못 샀다. 그래도 만족스러운 쇼핑을 마치고 귀가했다.
짐도 정리하고 씻고 나왔더니 8시 가까이 되었다. 배가 불러서 먹을지 말지 고민하다가 새로 산 치즈도 먹어보고 싶고 와인도 마시고 싶어 방울토마토와 치즈, 그리고 귤로 안주를 간단하게 만들었다. 치즈는 고소하고 부드럽고 진했는데, 치즈 특유의 꼬릿한 냄새가 조금 났다. 꿀을 뿌려서 토마토랑 귤이랑 먹으니 잘 어울렸다. 와인도 맛있었는데, 모든 방면에서 적당히 맛있는 와인 같았다. 향도 적당하고 맛도 적당했다.
와인을 마셔서인지 갑자기 너무 졸려서 한 시간 정도 자고 일어났다. 일어나 양치도 마저 하고 글도 쓰고 있다. 1시에 한국에서 할 게 있어서 그때까지 다음으로 읽을 책을 고르려고 한다.
오늘 읽은 책은 ‘홍학의 자리’라는 추리 소설이다. 원래 추리소설을 좋아하는데, 한국 작가의 유명한 추리소설인 것 같아서 전부터 읽어보고 싶었다. 유명한 건 이유가 있었다. 몰입도도 엄청나고 읽는 내내 범인에 대한 생각이 계속 바뀌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데 결말이 가장 반전이었다. 기차에서부터 읽었는데, 흥미진진해서 덕분에 시간이 금방 갔다. 다음 책은 뭐를 읽을지 고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