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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s Kim Feb 11. 2020

9. 질투는 나의 힘

   어려서부터 나는 욕심도 많고 그만큼 질투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이미 언급한 바 있는 둘째 딸로서의 피해의식 탓도 있었겠지만 원체 승부욕이 강했다.


   나와 비슷했던 친구가 내가 잘하고 싶은 일을 나보다 잘 해내면 그게 그렇게도 질투가 나고 속상했다. 학교 다닐 때 성적 발표 날이 되면 경쟁자인 친구가 나보다 점수가 높게 나온 날에는 집에 와서 분한 마음에 울 정도였다. 다른 사람은 몰라준다고 하더라도 스스로는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잘 알고 있었으니까. 속상한 마음은 다음번 시험에서 심기일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고 그때 나는 ‘질투는 나의 힘’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질투가 매사에 해결책이 될 수는 없었다. 노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타고난 능력이나 운의 영역이 있다는 걸 인정하는 나이가 되면서부터는 질투는 다시 도전할 힘을 준다기보다는 스스로의 못난 모습을 인지하게 만드는, 자괴감을 주는 감정이 되어버렸다.


   회사원이 되어서도 질투라는 감정은 쉽게 사라지지는 않았다. 비슷한 시기에 입사한 동기들과 선후배들은 모두 경쟁자였고 누구보다 애를 써도 운이나 인맥이 더 극적으로 드러나는 회사에서 나는 비슷한 연차의 직원들과 나의 위치와 승진 같은 보상 따위를 비교하며 자주 자괴감을 느껴야 했다.


   사실 어려서부터 누구보다 잘하고 싶어서 타인에게 질투를 느꼈던 일은 따로 있었다.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나는 오래전부터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을 좋아했었다.

끝이 없을 것 같이 거대하면서도 몸을 노곤하게 녹일 것만 같은 따뜻한 힘을 가진 이야기를 나도 언젠가는 꼭 써보고 싶었다. 흰 종이를 글자로 채워가는 모든 순간이 두근대서 잠을 못 이루던 날도 많았다. 나는 글을 더 잘 쓰고 싶어서 책을 많이 읽었고, 책을 읽을수록 쓰는 글의 수준도 나아지는 게 느껴져 설레던 날도 있었다.


   물론 글을 쓰는 일에도 노력으로는 따라잡을 수 없는 재능이 있다는 사실이 나를 우울하게 만들긴 했다. 각종 교내외 대회에서 글짓기로 상을 받았던 중고등학교 때를 지나 대학교에 입학 후에는 주전공이었던 국문학 수업에서 소위 글 좀 쓴다는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 유명한 작가였던 교수님의 창작 수업에서는 각자가 쓴 소설을 읽고 평가하는 시간도 가졌다. 내가 쓴 자전적 소설은 문장의 섬세함에서 나름대로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었지만, 유독 눈에 띄는 남다른 필력의 전공생은 한 두 명이 아니었고 한 때 글 좀 쓴다고 으스대던 나는 어느새 평범해져 있었다.


  작가가 되고 싶다던 어린 시절의 꿈은 무의식 저 편으로 미뤄놓고 직장인으로 치열하게 살아가고는 있지만 여전히 주기적으로 서점의 베스트셀러 앞을 서성이는 나는 젊은 작가들의 재능이 여전히 부럽다. 나도 직장인이 되지 않고 글을 쓰는 데 전념했다면 저 작가처럼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허무맹랑한 상상과 함께 나보다 나이 어린 작가들한테까지도 질투를 느낀다. 쉽게 읽히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은 생각 거리를 주는 작가의 능력은 웬만한 노력으로는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말이다.    


   돌이켜보면 내가 쓴 글로 책을 내고 싶다는 생각은 스무 해를 넘긴 나의 아주 오래된 꿈이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 느끼는 질투의 감정을 아주 오래전 실컷 울고 난 뒤에 다가오는 다른 시험을 준비하던 어린 내가 그랬듯이, 다음 발걸음을 위한 힘으로 삼고 싶다. 책을 내고 싶다는 질투의 감정을 이룰 수 없기 때문에 느끼게 될 자괴감이 아니라 이룰 수 있다는 긍정적인 힘으로 삼아 소중한 꿈을 멀지 않은 날에는 꼭 이루어보고 싶다. 화려하거나 멋지지는 않더라도 보편적인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따뜻한 글을 쓰는 작가가 되는 나를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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