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식사가 끝났으니 청소 대열로 모여주세요!"
남편과 아들의 뒤통수에 대고 이렇게 외쳤다. 이 남자들, 식사 후 나른해지는 틈을 타 침대나 소파에 몸을 의지하려고 달아나던 중이다. 졸음이 쏟아지는 주말 오후에 달콤한 낮잠을 금지시키는 나는 자동으로 나쁜 아내, 엄마가 된다. 잠만 못 자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 시간에 집안일을 시킨다. 나쁜 여자가 되더라도 어쩔 수 없다. 가족 중 특히 헤비급 멤버를 위해서라도 식후 곧바로 자게 내버려 둘 수 없다. 무엇보다, 다 같이 생활하고 공유하는 공간을 다 같이 치우고 정리하는 일은 당연하지 않은가. 주말에라도 청소 좀 해보자고.
코로나로 인한 집콕 생활이 길어지면서 그만큼 집안일도 늘었다. 학교와 회사에 가야 할 사람까지 세 명이 모두 집에만 있으니 화장실 청소도 더 자주해야 하고 어디서든 흘리고 다니는 남자들 때문에 행주와 걸레질도 더 자주해야 한다. 끼니도 매번 챙겨야 한다.
다행히 우리 가족은 코로나 이전부터 집안일 분담이 어느 정도 체계가 잡혀 있었다. 그런데 이 체계가 쉽게 정착된 건 아니다. 초등학생 아들과 40대 초반의 부부로 시작해 아들이 고등학생 나이가 된 지금까지, 집안일 분담을 위해 내가 한 노력이다.
이 무슨 엉뚱한 소리인가. 집안일에 수세미와 걸레, 청소기 정도만 있으면 되지 무슨 장비가 더 필요한가. 하지만 우리 집 남자들에게 안 먹혔다. 남편은 늘 폼생폼사다. 아들은 그게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아빠가 하는 일이면 뭐든 '옳소!'하고 나선다. 폼이 안 나는 일은 안 하겠다고 버티는 두 남자들을 설득시키려니 이들의 요구사항을 어느 정도 들어줄 필요가 있었다.
그래, 아예 멍석을 깔아주자.
상점에 데려가 남편과 아들에게 필요한 걸 직접 고르라고 했다. 이 남자들이 청소 도구에 그토록 관심을 가질지 몰랐다. 수레를 끌고 진열대 구석구석을 휘젓고 다니며 신세계라도 만난 듯 신기하게 여겼다. 그러다가 이 남자들의 눈에 꽂힌 건 오렌지색이다. 창문닦이와 먼지떨이, 물걸레까지 모두 오렌지 계열로 골라왔다. 소꿉놀이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기가 막혀서, '집안일을 할 생각은 있나?'라고 내가 물었더니 진지하게 그렇다고 한다. 이날 할인점 쇼핑치고는 과소비를 했다.
거금을 투자했으니 열심히 활용하라는 내 엄포 때문인지, 아니면 장비빨에 힘이 나서인지, 이 남자들은 오렌지색 장비가 쓰이는 곳이면 어디든 구석구석 잘 닦고 털어낸다.
코로나와 무관한 2017년도 사진이다. 장비빨 따지는 남자들을 위해 오렌지색 청소 도구에 이어, 산업용 마스크까지 챙겨줬다. 먼지 털기와 창문 닦기가 이 남자들의 주종목이다.
고수는 연장을 탓하지 않는다. 우리 집 남자들은 고수 흉내는 내지만 고수가 아니다. 이런 무늬만 고수들이 사달라는 대로 다 사주고, 하겠다는 대로 내버려 두면 안 된다. 정원용 가위가 필요하다고 해서 사줬더니...
집 앞에서 멀쩡히 잘 자라던 목련 나무를 거의 다 해체해버렸다. 이 남자들은 이걸 가지치기라고 불렀다. 개화시기가 한 달도 안 남았을 무렵이다. 바닥에 떨어진 가지마다 꽃망울이 맺혀 있다. 잘려나간 가지만큼이나 내 마음도 아팠다. 꽃이 다 지고 난 뒤 늦가을이나 겨울에 할 일임에도, 꽃나무에 대한 상식이 없던 이 남자들은 초봄에 가위질을 해서 싹둑 잘라버렸다.
옆집에서 부러워할 정도로 고혹적인 색상을 자랑하던 목련꽃을 그 해 봄에는 윗동이 반 이상 잘려나간 가지에 드문드문 핀 것만 봐야 했다.
이때부터 집안일을 하기 전에 무엇을 어떻게 할지 서로 합의를 거쳤다. 그리고 요구한다고 장비를 무조건 사주지도 않는다. 이 남자들은 뭐든 잘라내는 걸 좋아한다. 지금도 틈새 잔디를 자를 수 있는 트리머를 사달라고 조르지만 매주 정원 관리에만 시간을 쏟을 생각이 아니라면 불필요한 장비다. 잘라내는 것 말고도 정원에는 뽑고, 파고, 심고 할 것들이 무수히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집안일을 좋아서 하는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여러 일 중 더 재미있어하는 일은 분명 있다. 다양한 집안일을 몸소 해보면 누구나 신이 나서 더 잘하는 일을 발견한다. 내가 아는 이들 중에도 설거지가 재미있다고 하는 사람, 요리가 재미있다고 하는 사람, 청소가 재미있다고 하는 사람 등 다양하다.
우리 집 남자들이 비교적 좋아하는 일이다.
나는 도통 이해할 수 없지만, 아들이 좋아하는 일이다. 내가 한다고 나설까 말릴 정도다. 물론 아빠가 하니까 더 신나서 같이 한다. 아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나는 따뜻한 차 안에서 조용히 기다려준다.
일기예보 때마다 비, 구름, 돌풍이라는 단어가 거의 매일 빠지지 않던 시기다. 영국의 봄, 가을 평균 날씨이기도 하다. 모처럼 해가 나왔다고 부산을 떨며 남자들을 마당으로 급파시켰더니 이들도 오랜만에 맞이하는 해가 좋은지 신이 나서 이불을 턴다.
코로나와 함께 집콕 생활을 하는 동안 남편과 아들이 식재료를 다듬고 내가 요리하는 식으로 지냈다. 한편, 김치와 손님상, 가족 특식 등 특별한 날 요리는 남자들이 거의 주도적으로 한다. 교과 과정에 포함된 요리 수업 덕택에 아들이 요리에 관심을 가진다.
한국의 많은 남자들이 그렇듯 남편도 군대에서 다림질을 배웠다. 그런 아빠에게서 기술을 전수받은 아들은 교복을 스스로 다림질해 입는다. 다른 집안일에 비해 아들의 나이와 능력이 성숙해진 후 가능해진 일이다.
아들은 초등학생 때부터 잔디를 깎았다. 기기 작동은 단순하지만 제법 시간이 걸리는 일이라 남편과 아들이 번갈아 가며 한다. 그런데 앞서 말한 것처럼 잘라내는 걸 좋아하는 남자들이다. 강낭콩 싹도 잡초라고 뽑아렸다. 남자들이 아무거나 잘라버리지 않나 혹은 뽑아내지 않나 수시로 감시할 필요는 있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나는 엄두도 못 낼 일을 간식만 챙겨주면 남자들이 해낸다. 아들이 성장해 감에 따라 조립할 가구의 종류와 크기가 달라져 매번 새로운 도전이다. 그래서 생각보다 긴 작업 시간에 갑갑하지만, 내가 못하는 걸 시도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히 여긴다.
우리 가족은 주말 오후에 집 청소와 정원 관리를 한다. 내가 매주 통보하는 '이번 주 계획'에 따라, 지난주 마룻바닥 청소를 했다면 이번 주는 창문 청소, 다음 주는 잔디 깎기 식이다. 무엇보다 최대 1시간만 쓴다. 주말에 한 시간 동안 일을 한다고 하니 남자들도 거부하기 힘든 조건이다. 남편과 아들이 짝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맡기면 서로 대화도 나누고 경쟁하듯 해낸다.
어린 시절 아들에게는 쓰레기통 비우는 일부터 시켰다. 영국의 분리수거 방식이 까다롭지 않은 데다, 다른 집안일에 비해 단순하고 안전하기 때문이다. 조금 크고 나니 아빠와 호흡을 맞춰 다른 집안일도 해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