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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숙진 Oct 13. 2021

6.35kg 빼는 게 소원인 영국인

"어, 체중계가 이상하네"


잘 쓰고 있던 체중계에서 어느 날 갑자기 이상한 숫자가 떴다. 건전지가 닳았나 싶어 새 것으로 교체해봤지만 그대로다. 몸무게가 크게 변동한 것도 아닌데 익숙한 내 몸무게 숫자가 아닌, 시간 형태의 숫자가 나온다. 혹시나 해서 남편더러 저울에 올라서 보라고 했더니 12시 13분을 가리킨다. 내가 올라갔을 때는 9시를 갓 넘기더니, 체중계로도 시계로도 쓸모가 없군.

시계가 아니라 체중계다 (사진: minimins.com)


고장이다 싶어, 다음 날 집을 나서는 남편에게 부탁해 체중계를 구매했던 상점에 들러보라고 했다. 교환이든 환불이든 해야 할 테니까. 그런데 그날 저녁 귀가한 남편은 이 '고장 난' 체중계를 그대로 들고 왔다.

직원 - 어떻게 오셨나요?
남편 - 저울에서 체중이 아닌 시간이 찍혀 나오는데요.
직원 - (직접 체중계에 올라가 보더니) 아무 문제없는데요. 이거 제 몸무게 맞거든요.
남편보다 덩치가 큰 직원이 올라서자 14시 2분이 뜬다. 


영국에도 미터법은 통용되지만 여전히 야드와 피트, 파운드, 스톤, 파인트 등 옛 단위도 존재한다. 시장과 마트, 술집, 골프장, 헬스장, 요리책, 도로 표지판까지 곳곳에 이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 사람들도 기존의 단위에 익숙한 것이 현실이다. 한국의 부동산 정보에 제곱미터 단위로 표기하면서 여전히 평수를 일상에서 쓰는 것처럼 말이다.


스톤 (Stone)은 체중을 나타내는 단위로 1스톤은 약 6.35kg이다. 영국인들에게 익숙한 단위이기 때문에 체중계 눈금도 두 가지로 표기된다.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의 한 장면 (출처: bustle.com)


위 장면에서 체중계 바늘이 60kg을 조금 넘으면서 10이라는 숫자에도 가까워 보인다. 10스톤이 채 안 되는 무게이다. 이처럼 아날로그 저울은 눈금이 두 종류로 표시되고, 전자저울은 버튼을 눌러 단위를 변환할 수 있다. 살짝 스치기만 해도 버튼이 눌러지므로, 나도 모르게 단위가 변경된 것도 모르고 체중을 재다가 이상한 숫자를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이 숫자를 나는 시계라 착각했다. 영국에 온 지 얼마 안 될 무렵의 일이다.


당시 82.2kg이던 남편의 몸무게를 스톤 단위로 환산하면 12:13이 된다. 12시 13분이 아니라 12스톤 13파운드. 


영국인은 다이어트를 한다고 하면 1스톤 혹은 2스톤 감량을 목표로 삼는다. 미터법을 쓰는 한국에서 5kg 혹은 10kg 빼는 걸 목표로 삼는 것과 유사하다. 번역 일을 하다 보면 이런 단위 차이에서 오는 숫자 표현이 애매하다. 영어 문장을 직역하면 한국인에게 익숙하지 않은 단위가 나오고, 한국인에게 익숙한 미터법으로 환산하면 숫자가 어색해지기 때문이다. 


올해 목표는 살 빼기다. 꼭 1스톤 빼고 말 테다. 

올해 목표는 살 빼기다. 꼭 6.35kg 빼고 말 테다. 


커버 이미지: Photo by i yunmai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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