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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숙진 May 23. 2024

TV 음성 변조, 솔직히 어색하지 않나요?

"목소리가 왜 저래요?"


갑자기 깔깔대며 웃던 아들이 이렇게 물었다.


나는 요가 동작 중 어깨서기 자세로 버티고 있던 중이었다. 좁은 거실 바닥에 깔아 둔 요가 매트에다 머리와 어깨만 살짝 대고는 다리와 허리를 수직으로 띄운 제법 위태로운 상태에서 웃음이 전염되는 바람에 하마터면 고꾸라질 뻔했다. 자칫, 어설픈 뒷구르기 자세가 되어 소파 귀퉁이에 세차게 착륙하거나, 반대 방향으로는 TV에 다리를 내다 꽂을 수도 있었다.


급하게 배에 힘을 주고 다리를 가슴으로 감싸 안았기에 큰 소동은 없었다.


바닥에 누워 운동을 하는 동안 조용해진 틈을 타서 휴대폰으로 뉴스를 듣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아들이 내 옆에서 뭘 하고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한국과 영국의 방송사 유튜브 채널을 통해 그날의 뉴스를 골라 미리 저장한 뒤 이런 식으로 한꺼번에 듣곤 했다. 이날 듣던 뉴스도 그중의 하나요, 마침 영국 뉴스가 아닌 한국 뉴스로 말이다.


나도 얼떨결에 따라 웃기는 했지만 전혀 웃을 만한 내용은 아니었다.


업체의 부당한 조치로 피해를 입은 사람의 증언이 나오고 있었다. 물질적,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여성의 신분을 드러내지 않도록 화면은 모자이크 처리하고 목소리도 변조한 상태였다. 아들이 웃었던 건 바로 이 목소리 때문이었다. 한국의 드라마와 영화는 자주 보지만 뉴스는 거의 접하지 않았기에 이런 목소리 변조가 생소하게 다가왔으리라. 


남녀노소 누구든 이 목소리 변조만 거치면 특유의 귀에 거슬리는 음성으로 바뀌어 나오지 않는가. 특히나 말하는 이가 극도로 흥분한 상태라면 이 변조된 음성은 더더욱 날카로워지고 인터뷰도 알아듣기 힘든 지경이 된다.


물론, 영상에 자막이 딸려 나오기에 내용 파악은 되겠지만, 이런 방식이 아쉽다고 하면 해외에서 한국 뉴스를 공짜로 듣는 내 입장에서 너무 큰 욕심일까?


지금껏 한국의 뉴스를 청취하며 변조된 목소리가 듣기 거북하다 여기긴 했지만 그렇다고 어떻게 한단 말인가 싶었는데, 아들의 질문을 듣고 다르게 생각해 보았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화 방송도 있는데 말이다.



한국 뉴스의 목소리 변조가 생소하다고? 그럼, 영국 뉴스에서는 어떻게 하기에?   


영국의 뉴스에서는 출연자의 신분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로 목소리 변조를 하는 대신 성우가 더빙하는 방식을 쓴다.  



@ Channel4News



↑ 범죄를 예방하고 시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경찰이 오히려 성범죄를 저지르는 사례가 늘자 사회 문제가 되고 있음을 경고하는 뉴스다. 피해자는 인터뷰 내내 어두운 화면에서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증언을 하는데, 화면에 나오는 목소리는 성우가 대신한다. 


이 자리에 해당 영상이 아닌 캡처 화면을 올린 이유는, 영국의 TV 방송 영상은 시청료 규정 때문에 영국 외에서 볼 수 없어서다. 링크가 작동하지 않는다. 물론, 학교나 호텔, 공항 등의 장소에서 틀어주는 화면은 다르겠지만.


그래도, '유튜브에 뜨는 짤막한 영상이니 혹시^^;;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라는 심정으로 아래에 링크를 올려보았다. 영상이 뜬다면, 문제의 장면은 16초 지점부터 참조하면 된다. 


@ Channel4News




나의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에서 보면, 한국과 영국의 뉴스 진행 방식 모두 장단점이 있다.


한국처럼 목소리를 변조하는 방식은 실제 목격자나 피해자의 증언을 듣고 있다는 기분이 들게 한다. 이들의 고통과 억울함이 가슴에 직접 와닿는다. 하지만, 앞서도 말한 것처럼 변조된 목소리는 듣기 거북하다 못해 우스꽝스럽게 들릴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아들이 웃어넘겼던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철저히 감추고 싶었을지 모를 자신의 쓰라린 과거를 용기 내어 고백하는 이에게 누가 되지 않을까 염려가 된다.


영국처럼 성우의 목소리로 대체하는 방식은, 전문 성우가 차분한 목소리로 출연자의 인터뷰 내용을 전해주니 내용 이해는 잘 된다. 그렇다 해도, '과연 실제 피해자가 한 말이 맞을까?', '그렇게 고통스러웠다면서 너무 차분하게 나오는 거 아니야?'라는 의구심은 들기 마련이다. 분노와 두려움으로 가득한 주인공의 감정에 맞게 격정적으로 외쳐야 할 셰익스피어 연극 대사를 AI가 영혼 없는 목소리로 읽어주는 것처럼 말이다. 정보 전달에는 도움이 되지만 피해자와 공감하기는 힘들다.  


개인적으로는 운동할 때 주로 이런 뉴스를 접하다 보니, 즉 화면은 무시하고 귀로만 뉴스를 듣지만 자막을 참조하여 내용을 더 깊이 이해하려는 과정은 생략해 버리는 입장이라, 영국의 뉴스 방식이 더 편한 건 사실이다. 


조금 다른 방식으로 뉴스를 진행할 수는 없을까?


커버 이미지: Photo by Sam McGhee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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