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친절해도 곤란해요

by 정숙진

"어느 병동을 찾으시나요?"


벽면에 걸린 지도를 보며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는데 낯선 노인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영국의 현충일이나 유럽 전승 기념일 행사에서나 볼 수 있을 듯한 재향 군인 차림이었다. 물론, 그런 기념일에 초청될 재향 군인이라면, 즉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할 정도의 연배라면, 홀로 꼿꼿하게 서 있지도 못하시겠지만. 아마 다른 종류의 제복이겠지.


노신사의 친절한 제의에도 불구하고, 나는 혼자서 갈 수 있겠다고 모기만 한 소리로 대꾸하고는 재빨리 발길을 돌리려 했다. 방금 전까지 보고 있던 지도를 마저 들여다봐야 길을 찾을 수 있지만, 그래야 미로처럼 복잡하게 얽힌 이곳 병원 건물 사이를 헤쳐 나갈 수 있음에도 말이다.


사실, 그런 지도쯤이야 출입문 몇 개 지나면 또 나오기 마련이다. 지금으로서는, 이 신사에게서 최대한 빨리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



"나를 못 믿어요? 내가 이 병원에서만 10년 넘게 자원봉사하며 안내를 해온 사람인데?"


자신을 못 미더워한다고 오해한 건지 노신사가 노기를 띠며, 그러면서도 자랑스러운 듯한 어조로 목소리를 높였다.


아휴... 할아버지 그게 아닌데요.


이렇게 소리치고 싶었지만 속 시원히 말 못 하는 심정이라 갑갑해하며 침묵을 지키다가,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음을 깨닫고는 솔직히 털어놓기로 했다.



"저기... 저... 섹스 클리닉... 섹슈얼 헬스 클리닉... 가는데요..."



나는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결국, 신사도 나도 서로 얼굴을 붉히며 어설픈 웃음을 지어야만 했다. 내가 왜 그토록 말하기를 꺼려했는지 그제야 상대도 알아차린 눈치다.


당시 시기로 따져 보면, 아들을 출산한 후 줄곧 몸에 지니고 있던 피임 장치를 제거하려던 즈음인데, 중간에 이사를 가느라 병원을 바꾸었으니, 이날 장치를 제거하러 가는 길이었는지 아니면 이를 제거한 뒤 검진을 받으러 가는 길이었는지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


방문 목적은 정확하지 않지만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는 방문인 건 분명하기에, 어느 때건 이 병동 이름 때문에 한 번쯤 곤욕을 겪겠구나 싶더니 결국 이런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영국에서는 임신과 출산을 담당하는 산부인과 외에 성클리닉을 별도로 운영한다. 나처럼 피임 장치를 하거나 피임 시술을 원하는 경우 혹은 단순히 피임 상담을 받거나 피임 도구를 구하러 가는 곳이다. 미성년자가 보호자 동의 없이 이용할 수 있고 주치의를 거치지 않고도 검진, 시술을 받을 수 있으니 영국의 여느 병원 서비스와는 다르다 할 수 있다.


결혼과 출산을 당장 고려하지 않는 젊은 세대들에게는, 성병 검사와 치료를 위해 들르는 곳으로 더 알려져 있다.


이런 병동을 간다고 스스로 말해놓고 보니 노신사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걱정부터 앞섰다. 성적으로 문란한 생활을 하거나 무책임한 행동을 하고는 뒤처리를 하러 온 것으로 비칠까 두려웠다. 어떤 이유에서든 이 자리에 온 것만으로도 당당해질 필요가 있지만, 당시만 해도 '섹스'니 '섹슈얼'이니 하는 단어를 낯선 이에게 언급하는 일은 민망하기 그지없었다.


기회가 생긴다면 제발 병동 이름 좀 바꾸라고 병원 측에 건의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한국에서 산부인과를 여성 의원, 여성 클리닉, 여성 병원... 이렇게 부르듯 말이다. 유부녀가 피임을 위해 오는 길에도 이토록 얼굴을 붉혀야 하는데, 만일 이 병동의 주요 고객인 성병 환자로 온다면, 병동 이름 때문에 꺼리지 않을까.


Sexual Health Clinic이라는 노골적인 이름을 대체할 만한 단어도 있지 않겠나. Women's Clinic, Women's Health Centre....


참, 이곳은 남녀 모두를 위한 병동이지.




영국에 살면서 어디를 가든 목적지를 찾아 헤매는 시간은 그다지 길지 않았다. 주변에 사람이 있기만 하면 말이다. 앞서 언급한 병원에서의 일처럼 누구든 금방 다가와 도와주기 마련이다. 낯선 장소에서 길을 헤매는 사람에게는 누구나 도움의 손길을 주고 싶어 하니까.


그런데, 타인에게 도움을 주려는 태도가 영국인의 몸에 배어서 그렇다 할 수도 있지만, 모든 영국인이 그렇다 할 수도 없는 데다, 내가 외국인이기에 더 가능하지 않을까 추리도 해보았다.


여행 다닐 때마다 내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우리, 관광객 티 좀 내지 말자!"



우리 가족은, 특히 나와 아들은, 낯선 것에 대한 호기심이 유난히 강하다. 뭐든 궁금하다 싶으면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뚫어져라 쳐다보고 토론까지 벌이며 그 정체를 밝혀내려 했다. 여행지에서 발견한 미지의 조형물은 말할 것도 없고, 길 한구석에 심어진 나무 한 그루도 말이다.


그런 우리 모습이 가련해 보였는지 슬쩍 다가와 설명해 주고 가는 이가 종종 있다.


낯선 여행지에서 만난 현지인이 우리의 궁금증을 해소해 주는 것만큼 반가운 일은 없다. 책이나 안내문 정도로는 해결되지 않는 갈증을 풀어내는 존재이지 않은가.


문제는...

낯설지 않은 장소에서, 낯설지 않은 대상을 두고도 도와주려 할 때다. 대표적인 장소가 바로 지하철역이다.


런던 지하철을 숱하게 이용했으면서도 나는 아직도 노선도를 참조해야 목적지를 찾을 수 있다. 노선도를 꿰찰 정도로 지하철을 자주 탄 것도 아니요 매번 목적지가 달라지기도 해서다. 또한, 중간에 노선이 추가되거나 공사로 인해 일부 구간이 폐쇄되는 경우도 있어서 이를 수시로 확인해야 했다.


런던에 있는 한국대사관에 들렀다가 남는 시간 동안 세인트폴 대성당을 관람한다고 가정해 보자. 빅토리아 기차역이나 지하철역, 세인트 제임스 파크 지하철역에서 내리면 한국대사관까지는 걸어서 10분도 안 걸리지만, 대사관에서 성당까지는 50분이 넘는 거리다.


일정이 빠듯하다면 이 또한 지하철을 이용하면 되지만, 템스 강을 따라 펼쳐지는 웨스트민스터 대성당, 웨스트민스터 브리지, 빅벤, 런던 아이까지 런던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관을 무시하고 지하로만 이동하기는 아쉽다. 그렇다고 걸어가기는 조금 멀고... 또 지하철을 탄다면 무슨 노선을 이용해야 하나... 이런 고민을 하며 노선도를 보고 있는데 누군가 나타나 '어디 가는데요?'라고 물으면 겸연쩍어진다.


런던 토박이라도 런던 지하철 노선도를 달달 외우는 건 아니지 않겠나. 더군다나 한국대사관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가까운 지하철역이 어디인지 누구나 알까? 이들도 지도와 노선도를 비교하며 길을 찾아야 한다.


어떤 때는, 목적지로 향하는 길을 몰라서가 아닌, 더 편한 방식으로 이동하기 위해 노선도를 참조할 때도 있다. 아들을 유모차에 태운 상태에서 지하철을 타던 시절이다. 계단 대신 엘리베이터 이용이 가능한 지하철역을 찾아야 했다.


그럼에도, 나처럼 외국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노선도를 보고 있으면 무조건 달려와 도와주려는 사람이 분명 있다.


외국인에게 친절을 베푸려는 이의 태도를 비난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감사하게 여긴다. 다만, 이들의 관심에서 시작되는 불필요한 친절도 그렇고 그 뒤 이어지는 대화마저 살짝 불편해진다. 나를, 런던 지리를 잘 모르는 외국인으로 오해하는 사람은 늘 같은 질문을 하기에.



"영국에 관광 오셨나 봐요, 어느 나라 출신인가요?"



다행히 요즘은 스마트폰을 활용할 수 있으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스마트폰을 펼쳐놓고 있으면 내가 뭘 하든 길을 가르쳐 주겠다 나서는 이는 없으니까.


한편으로는, 사람과의 접촉이 줄어든 것 같아 아쉽기도 하다.


나를 도와주겠다 나서는 이가 있어도, 또 없어도 아쉬움이 들기는 마찬가진데 이럴 때면 나의 과거 행적이 떠오르곤 한다.


영어를 전공하고도 그 흔한 해외 어학연수 한 번 가 본 적 없던 내가 버스정류장이나 지하철역, 전통시장에서 외국인만 보이면 곧바로 다가가 말을 걸던 시절이다. 돌이켜 보면, 한국에서 나름 잘 적응해 살고 있는 외국인을 붙들고 오지랖을 부린 건지도 모르겠다.



"어느 동네로 가시는 데요? 제가 가르쳐 드릴까요?"

"선물하려고요? 제가 도와드릴까요?"



커버 이미지: Photo by Tim Douglas on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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