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2개 국어 써서 좋긴 한데, 그래도 걱정이

by 정숙진

"오 마이 갓!"


공부방에 앉아 일을 하고 있는데, 두 초딩의 떠드는 소리가 간간이 내 귀로 들려왔다. 아들 친구인 루이가 집으로 놀러 온 날이다.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좁은 계단을 후다닥 뛰어 올라와 방에서 뭔가를 챙겨서는 다시 아래층 거실을 향해 쿵쾅거리며 뛰어내려 갔다. 혼자 해도 될 걸 그리고 천천히, 살살해도 될 걸 둘이서 우당탕하며 온 집안을 뒤흔들어 놓았다.


아이들의 격한 놀이 소리에 하던 일이 집중도 안 되고 불안하기까지 했지만 내버려 뒀다. 지들이 다치지만 않으면 된다 싶어서다. 우리 집은 장식과 가구 배치까지 모두 단출한 덕택에 우당탕에 최적화되어 있다.


그런데, 두 아이가 보드 게임인지 비디오 게임인지 뭔가에 집중할 때부터 신경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아들이 수시로 내뱉는 말 때문이다.



"Oh, my god!"



게임 진행이 안 돼도 'Oh, my god'...

게임 진행이 잘 돼도 'Oh, my god'...

상대가 실점을 해도 'Oh, my god'...


전혀 맥락도 없이 마구 내뱉는 셈이다.


영국에 살면서 'Oh, my god'이라는 말이 아무 때나 쓸 수 있는 단순 감탄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당황했다. '하나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라고 십계명에 담겨 있지 않은가. 모두가 독실한 신자라고는 할 수 없어도 종교의 영향을 오랜 세월 받아온 민족 아닌가.


이를 몰라서인지, 비영어권 출신이 오히려 아무런 거리낌 없이 '오 마이 갓'을 쓰는 성향이 있다. 영국에서 태어나 한국인 부모 밑에서 성장한 아들도 마찬가지다.


영국인은 'Oh, my goodness'나 'Oh, my gosh', 'Gosh' 등으로 바꾸어 쓴다. 물론, 말의 근원을 따지고 들면 'Oh, my god' 보다 훨씬 더 점잖다 할 순 없지만.


욕설은 아니지만, 점잖은 영국인은 'Oh, my god'을 아무 데서나 말하지 않는다. 어쩌다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튀어나오기라도 하면 당황하며 주변 사람에게 사과를 한다. 무엇보다 내 아들처럼 연거푸 내뱉지는 않는다. 옆에 있는 루이도 같이 웃고 떠들고 장난도 쳤지만 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다른 친구가 왔을 때도 마찬가지다.


사실, 나의 옛 기억을 떠올려 보면 아들만 탓할 일은 아닐 테다.


나 또한 언어에 담긴 문화적 깊이와 의미를 오해해 아무렇게나 내뱉은 경험이 있다. 대학생 시절 영어 회화반에서 수업을 받을 때였다.


미국인 강사가 그림 한 장을 보여주고는 여기에 나오는 두 사람의 대화를 영작해 보라고 했다.


어린 꼬마가 부엌에서 뭔가를 몰래 꺼내려는 도중 엄마에게 들킨 장면이다. 흑백 만화라 상세히 알 수는 없으나 엄마의 옷차림과 머리 상태로 보아 한밤중에 벌어진 일로 추측되었다.


수업을 듣는 학생들 중 제일 용감했던 내가 자신 있게 먼저 답했다.



"What the hell do you think you are doing?"



한밤중에 벌어진 소란에 잠이 깬 엄마가 부엌으로 달려와 아들에게 다짜고짜 따지는 말이다.


당시 영어 회화반의 수준을 고려해 이 정도 문장이면 강사에게 잘했다 칭찬받겠지 기대했건만, 강사는 당황하며 그런 말을 어린 아들에게 써도 되겠냐 내게 점잖게 반문했다.


그 순간, 'What the hell'이라는 말에 큰 문제가 담겨 있음을 깨달았다. 그게 뭔지는 몰라도 말이다.


내가 'What the hell'을 일상적인 대화문에 사용할 수 있다 착각했던 건, 미국 드라마와 영화의 영향이 크다. 드라마와 영화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친구나 가족에게 'What the hell'이라 했으니. 코미디 방송이라 감정 표출이 지나치게 과장되었다는 걸 짐작하지 못했던 거다.


아들 또한 이런 TV 드라마나 영화를 보다가 비속어에 익숙해지지 않았을까 짐작된다.


집에서는 한국어로만 대화를 나누기에 아들이 영어를 사용할 기회는 TV 시청과 독서, 숙제, 학교 생활을 통해서가 전부다.


영국인이 일상적으로 쓰는 영어에는 아이와 어른 사이에 쓰는 말과 어른들끼리만 쓰는 말, 격식을 갖춘 사이에 쓰는 말이 제각각 존재함에도, 아들에게는 이런 세분화된 영어를 관찰할 기회가 또래 친구에 비해 적은 편이다. 이 때문에 'Oh, my god'이라는 점잖치 못한 감탄사를 아무렇지 않게 내뱉었을 수 있다.


이날 저녁 아들에게 경고를 했다.


주변에 너처럼 말하는 사람을 본 적 없으니 분명 TV 방송을 너무 많이 본 탓에 그런 나쁜 말을 배운 것 같다, 또다시 그런 식으로 말하면 TV를 못 보게 하겠다,라고 말이다.


아들 나이에 맞춰졌다 해도 영국의 드라마와 시트콤, 코미디, 퀴즈쇼는 내 기준에서 자극적이고 짓궂은 장면이 많다. 직간접적으로 아이의 언어나 행동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몇 해가 더 지나 아들의 넷플릭스 관람등급을 15세로 상향 조정해 줄 때도 걱정을 하긴 마찬가지였다.


나이가 되었기에 조정해 주는 거지만 나는 조심스러운 입장이었다. 이런 엄마의 걱정도 모르고 아들은 나이가 차기 전부터 바꿔주면 안 되냐고 불평하던 차였다.



"친구들은 이미 다 보고 있는데 나만 못 보는 방송 때문에 남자들의 세계에서 대화가 안 통하는 고충을 엄마가 아냐고..."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아들에게 '오 마이 갓' 일화를 들먹이며 때를 기다리라고만 했다.


TV 시청 연령이 상향 조정되면서 아들의 말투나 행동이 더 나쁜 방향으로 영향받는 건 아닐까 걱정하는 건 여전하다. 당장은 나이 때문에 15세로 올려주지만, 또다시 그때처럼 문제 언어나 행동을 보이면 즉각 12세로 하향 조정하겠다는 경고도 빼놓지 않고 말이다.


옆에 있던 남편은 한술 더 떴다. 아예 유아 등급으로 낮춰버리자고.



"그 나이에 집에서 텔레토비나 보고 있으면 참 좋겠네!"


커버 이미지: Photo by Keren Fedida on Unsplash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