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모임이 열리는 자리였다.
한 해 동안 지역 한인학생회를 이끌 회장으로 선출된 A에게 축하의 인사가 쏟아지던 중, 이 말과 함께 갑자기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영국의 중소도시에서만 살았던 내가 목격한 한인 단체는, 모임 규모도 작고 대부분 학생과 이들의 가족으로 구성되는 형태라, 한인회가 아닌 말 그대로 '한인학생회'로 운영된다.
학업을 마치고 취업에 대비하거나 원래 일터로 복귀해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살뿐만 아니라 한 지역에서 오래 머물지도 않는 사람도 기에 모임 대표 자리를 꺼리기 마련이다.
상공업 종사자와 직장인이 주류를 이루는 타 지역 한인회의 경우, 특히 런던 등 대도시 모임의 경우, 회장이라는 직함이 주는 힘은 꽤 크다. 한국에서 오는 각종 단체장, 심지어 대통령과 국회의원 등 거물급 인사를 맞이하는 자리에 이들이 나서기 때문이다. 잘하면 TV 등의 매체 출연도 가능하다.
반면, 중소도시에서 학생들로 구성되는 소규모 한인 모임에서는 서로 부담을 가지고 떠맡는 것이 회장직인 셈이다. 당선을 축하해 주면서도 한편으로는 안쓰러운 눈으로 보는 것도 당연하다.
그런데, A의 경우, 단순히 학생회 회장이라는 번거로운 업무를 맡느라 얼마나 힘들겠냐는 안타까움에서 그치지 않고 한술 더 떠 '안사람'이 없음을 걱정해주고 있었다.
기러기 아빠처럼 영국에서 홀로 지내는 A의 모습을 안쓰러워 하는 시선은 이해가 되지만, 영국에 처음 올 때부터 이미 그가 혼자임을 주변에 밝히지 않았나. 하필, 회장직에 선출된 자리에서 아내의 부재를 걱정하는 이유가 뭘까?
동네를 오가다 한 번씩 인사를 나눈적 있는 B의 연락이다.
추석을 기념하여 한인 모임을 여는데 각 가정에서 음식 한 가지씩 장만해 오자는 부탁이었다. 모임을 주관하는 한인학생회에서 나온 안건인데 정작 이를 요청하는 건 회장이 아닌 그의 아내 B의 임무였다.
겨우 안면만 익힌 사이에 대뜸 전화해 놓고 음식을 해오라 요구하는 입장이 괴로웠던지 B의 한숨 섞인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 전달되었다.
전화 한 통으로 각종 한식 배달이 가능할 정도로 한인 상권이 잘 형성된 대도시와는 거리가 먼 영국의 작은 동네에 살 때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하면, 제한적이나마 한국 식재료를 판매하는 아시아 식료품점은 있다는 점이다. 이런 동네에 살면서 고국의 먹거리를 즐기려면 직접 만들 수 밖에 없다.
남편의 손을 빌린다면 그다지 어려운 과제는 아니다 싶어, 미안해 하는 B에게 흔쾌히 김밥을 해가겠노라 답변한 뒤 전화를 끊었다.
불편하기 짝이 없는 대화였다. 김밥을 만들어 가는 일이 귀찮아서가 아니다.
모임을 위한 식 준비는 오히려 설레는 일이다. 우리가 한 가지 음식만 조금 신경써 준비해 가면, 모임 당일 최소 스무 가지 이상의 다양한 음식을 맛보는 기회가 아닌가.
내가 불편하다 여긴 건, 고국 사람들끼리 모여 한식을 먹으며 향수를 달래자는 취지를 내건 회장 본인이 아닌 왜 그의 아내가 나서서 이런 일을 해야 하나 말이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불만을 추가하자면, 굳이 메뉴까지 정해 통보해야 하는가다.
음식을 해주십사 부탁하는 사람도, 또 그런 부탁을 받고 요리를 하는 사람도 여자이어야 하며, 그래서 여자들끼리 알아서 의논해 결정하라는 뜻에서 남자인 회장 대신 아내가 나서야 한다는 말인가?
이런 이유에서, 아내도 없이 홀로 지내는 A가 회장으로 선출되자 주변에서 걱정부터 한 셈이리라.
모임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인 먹거리를 마련하는 임무를 회장 본인이 아닌 아내에게 떠넘겨야 하는가? 한인 모임을 주관하고 책임져야 하는 회장이 남자라는 이유로?
집집마다 연락하여 'XX 음식을 해주세요'라고 부탁하는 일이 껄끄럽다면, 방식을 조금만 바꿔보면 되지 않는가. 이렇게 연락하는 이유는 각 가정의 사정에 맞게 모임에 가져올 음식을 조율하느라 생기는 절차다.
그럼, 메뉴 정하는 일 자체를 없애면 어떻겠나? 서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포트럭 파티처럼 말이다. 모임 참가자가 알아서 각자 요리 한 가지씩 준비해 오는 파티 말이다.
가정마다 잘하는 요리 한둘 정도는 있을 것이다. 모두가 김밥만 잘한다거나, 만두나 잡채를 잘한다 할 수는 없다. 설령, 한두 집 정도 메뉴가 겹친다 해서 문제가 될 일도 없다. 그게 포트럭 파티의 매력 아니겠나.
더군다나 한국식 명절 연휴가 없는 영국에서, 또 한인 마트가 없는 중소도시에서 한국의 명절 음식을 준비하는 건 번거로운 일이다. 따지고 보면, 내가 맡았던 김밥도, 미란이네가 맡았던 잡채도 모두 추석 음식이라 할 수 없지 않은가. 정통 명절 음식을 만들지 못할 바엔 누구나 먹을만하면서 영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만든 음식이면 되지 않겠나.
무슨 음식을 해야 하나 고민하는 회원이 있다면 서로 연락하여 각자 메뉴를 고르기도 하니 자연스럽게 먹거리도 다양해지고 개인의 고민도 해결된다.
집집마다 연락할 필요도 없다.
회원에게 모임을 공지하면서 각 가정에서 음식 한 가지씩 준비해 주십시오, 정도의 간단한 메시지만 덧붙이면 되는 일 아닌가. 요리할 여건이 안 되는 사람이라면 마트에서 살 수 있는 디저트나 과자, 음료, 술을 가져오면 된다.
한인 모임이 열린 자리에서 당시 한인학생회 회장을 맡고 있던 C가 한 말이다.
전례없는 상황과 발언을 접하고 나는 당황했다.
늘 그렇듯 모임을 위해 각 가정에서 먹거리를 한 가지씩 준비하는 건 이전 모임과 다를 바 없지만, 음식을 장만하는 수고에 대한 금전적 보상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내가 당황한 건, 돈 지불 때문이 아니다.
음식을 준비한 분의 노고에 대한 보답이라며 돈을 건네는 행위로 '문제를 해결했다'라고 판단하는 그의 사고방식 때문이다.
당시 5파운드라고 하면 영국의 최저 시급에 해당하는 돈이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은 12.21파운드).
경제학도 답게, 영국의 물가에 맞는 수고비를 C가 책정한 건지, 아니면 학생회 예산에 맞춘 단순한 계산이었는지는 모른다.
파운드 당 환화가 얼마냐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영국의 물가를 고려해야 하니까.
가계부까지 써가며 나름 알뜰하게 살림을 꾸리려 노력하던 시절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20여 년 전 물가를 내가 지금 떠올리기는 막연하니 현재의 최저 시급으로 따져보자.
모임에 가져갈 음식 재료비로는 조금 빠듯하나마 충당 가능한 금액이다.
가령, 우리 집에서 자주 해먹는 돼지불고기를 예로 들어보자. 마트에서 판매하는 돼지 목살 2kg이 10파운드인데 여기에 당근과 양파를 추가하여 만든다면 얼추 12파운드치 요리가 탄생한다. 집에 있는 기본 양념을 써야 하겠지만 이건 돈으로 환산하기 힘드니 제외하고.
요리를 할 수 없다면 디저트가 될 만한 케이크나 과자, 과일을 마트에서 살 수도 있다. 또는, 와인 한 병 반이 될 수도 있고 24개들이 캔 음료 한 상자를 살 수 있는 돈이다.
즉, 순수 재료비에 해당하는 돈인 셈이다.
이런 돈을 수고비라며 건네다니, 그것도 최저 시급으로.
당시 나같은 초보 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 경력이 몇 년씩 되는 고참 주부의 노력을, 사회 초년생에게나 지급하는 최저 시급으로 그것도 한 시간의 수고비로 떼운다고?
오히려 안 주느니만 못한 돈이다. 특히나, 음식 장만에 대한 번거로움을 해결했다는 소리를 들으면서까지 받고 싶은 돈은 아니다.
그저 감사하게 잘 먹겠습니다, 라는 인사 정도면 충분하다. 한 시간치 최저 시급을 받아서 음식을 해야 할 정도로 사정이 어려운 이웃도 아니니까.
커버 이미지: Photo by Alexander Faé on Unsplash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