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의 카드 및 지폐 사용, 이런 점에 유의하세요

by 정숙진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말과 함께 A가 봉투를 내밀었다. 겉면에 찍힌 한국의 은행 로고가 눈에 들어왔다. 봉투가 의미하는 바를 알기에, 나는 '천천히 주셔도 되는데... '라고 말하며 불편한 심기를 애써 감췄다.


이들 가족이 영국에서 임시로 거주할 숙소를 구해주면서 내 카드로 예약금을 결제했더니, 이를 갚고자 A가 돈을 봉투에 담아 온 것이다.


사정상 지금 당장 한국으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A는 내 돈을 떼먹고 시치미 뗄 위치의 사람은 아니었다. 그가 언제든 영국에 정착해 여유가 될 때 돈을 보내면 그만이다. 은행 계좌를 개설하고 이를 통해 내게 돈을 송금할 수 있는 환경에서 말이다.


그런데, 영국에 도착하자마자 현금을 건넨 것이다.


내가 받을 돈은 한화로 따지면 거의 70만 원에 달했다. 늘 소액의 현금만 지니고 다니는 편이라, 내게는 감당하기 힘든 거액의 현금을 쥐고서 거북한 기분마저 들었다.


불필요하게 많은 현금을 처분하기 위해 은행에 들르는 일이 불편해서만은 아니었다.


직항 비행 편과 시외버스를 이용하면 13시간 남짓 되는 거리를, 무슨 이유에선지, 타 국가를 경유하고 공항 근처에서 하루 숙박하는 등 40여 시간이나 상공과 도로에서 보내고 내 앞에 나타난 가족이다. 이토록 길고 힘겨운 여정을 거치는 동안 내게 줄 현금을 이들이 한국에서부터 품고 왔다는 사실이 가장 마음에 걸렸다.


이뿐만 아니다.


이날 당장 지불해야 할 숙박비 잔액은 물론 1년간 거주할 집을 정하면서 계약금을 낼 때도 A는 현금을 그 자리에서 꺼냈다. 이 또한 한국에서부터 미리 준비해 온 돈이라고 한다.


옆에서 지켜보니 그가 꺼낸 봉투에 현금이 수두룩하게 담겨 있었다. 아까 내게 내민 봉투 속 현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거액이라서 차라리 돈 보따리라 해야 할 판이다. 해외 출국 시 반출 가능한 액수의 금액을 몽땅 환전받아 왔나 의심될 정도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A는 영국에서 은행 계좌를 만들지 않고 1년을 버틸 작정이었다.


이들 가족과 함께 집을 보러 다니며 식사도 하고 내 차에 기름도 넣었다. 초등학생 자녀의 학용품도 사고, 시간이 길어져 다들 출출해할 무렵 간식도 사 먹었다. 이 모든 소비 과정에 A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결제를 했는데, 그럴 때마다 카드 사용이 안 된다 싶으면 A는 예의 돈 보따리를 꺼내 현금으로 계산했다.


나는 이들과 하루 종일 돌아다니며 줄곧 경계심을 늦출 수 없었다. 지폐가 수북이 담긴 보따리에서 돈을 꺼내는 모습을 아무렇지 않게 드러내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영국인은 A의 행동을 의아해하면서도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지만 범죄자의 마인드가 어디 그러하겠나.


도저히 참다못한 내가 간곡히 부탁했다. 차에 짐을 놔두고 다닐 때만이라도, 가방을 자동차 좌석 대신 트렁크에 보관하자고. 이는, 영국에서 자주 발생하는 자동차 소지품 도난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경찰이 당부하는 주의사항이다. <외부인의 눈에 띄지 않도록 귀중품을 보관하십시오>. A 가족의 소중한 돈이 몽땅 털릴까 걱정도 되지만, 그 과정에 내 차에 흠집이 나는 것도 달갑지 않으니까.


이날 돈 보따리를 지키는 일만 번거로운 건 아니었다.


Bank-of-England-warning-over-fake-notes-e1415379038843.jpg Bank of England



영국의 상점에서 지폐를 내놓으면 상당수의 점원이 위 사진 속 남성처럼 행동한다. 위조지폐 여부를 판별하기 위해서다. 그 짧은 시간 안에 육안으로 가려낼 수 있는지 의문이지만, 어떤 때는 형식적인 행위로도 보일 정도다.


위조지폐 비율이 높은 편은 아니지만 범죄 가능성은 늘 있으므로, 현금을 거래하는 업체를 대상으로 영국의 은행과 경찰이 권유하는 방식이며 이에 맞게 직원 교육도 시킨다. 그러니 계산대 업무를 맡으면 형식적으로라도 이렇게 하는 것이리라.


A 가족과 함께 돈 보따리를 들고 다니며 현금을 쓰던 날, 유난히 이 광경이 피곤했다. 한국에서 살다 보면 뭐든 빨리빨리를 외치는 문화에 익숙해지지 않은가. 지폐 하나하나를 이런 식으로 검사하는 광경이 얼마나 생소하고 지루하겠나.


하지만, 영국에서 근무하는 직원 입장에서는 당연한 태도다. 위조지폐 범죄에 연루되는 외국인 비율을 무시할 수 없는 데다 영국인은 잘 쓰지도 않는 50파운드 지폐까지 내놓는 사람 앞에서 바짝 긴장하고 검사할 수밖에.



"카드에 꼭 서명을 해야 하나요?"


A 가족처럼 영국에 1년간 체류할 목적으로 온 이의 질문이다.


옷을 구매하는데 카드 서명란이 비어 있는 걸 지적하며 점원이 결제를 거부하더란다.


반면, 한국에서는 서명란이 비어 있거나 결제 시 서명과 카드 서명이 달라도 문제 삼지 않는다고 했다. 심지어 서명 대신 줄 하나만 그어도 가능하다고.


영국에서는 앞서 나온 사진 속 위폐 검사와 마찬가지로, 카드 사용도 엄격히 따지는 편이다. 카드에 서명이 있는지, 이 서명과 영수증에 입력한 서명이 일치하는지도 확인한다. 코로나 19 이후 최대 100파운드 (한화 약 18만 원)까지 비접촉 결제가 가능해져 이런 풍경이 줄어들긴 했지만.


번거롭더라도, 영국에서는 카드 서명란을 반드시 채워두고 결제 시 서명도 꼼꼼히 할 필요가 있다.



"사진을 찍느라 잠시 정신을 팔았더니 지갑이 없어졌지 뭐예요."


런던에서 여행하다가 소매치기를 당한 이의 사연이다.


다행히 재빠른 신고 덕택에 추가 피해는 없었고 분실한 지갑 속 신분증과 각종 서류도 재발급받았다. 그나마 피해가 이 정도니 다행이다 싶지만, 모처럼 다녀온 여행에서 기분이 좋지는 않을 듯하다. 미지의 누군가를 두고 앞으로도 계속 원망하고 낯선 이에 대한 경계심마저 계속 가지지 않겠나.


이번 사연의 주인공도, 앞서 나온 A처럼 거액의 돈 보따리를 들고 다닌 건 아닐까, 그래서 그것마저 분실한 건 아닐까 의문도 들었지만 그렇게 물어보진 않았다. 남의 일임에도 괜히 나의 일처럼 속상해지기 때문이다.


한 때 영국의 TV 방송에서 소매치기가 주로 활동하는 곳을 카메라로 담은 적이 있다. 코로나 19 전만 해도 세계에서 가장 붐비는 공항 순위 상위권에 항상 들던 런던 히스로가 배경으로 나왔다.


각종 짐꾸러미와 가방, 쇼핑백은 물론 어린 자녀나 노부모를 챙겨야 하는 가족이 주로 피해를 당했다.


가족과 짐을 챙기는 동안 지갑과 여권 등 귀중품이 든 작은 가방을 큰 가방 위에 얹어둔 이가 CCTV 영상에 담겼다. 다른 이는, 면세점에서 구매한 고가의 물품이 담긴 쇼핑백을 옆에 아무렇게나 세워두고 큰 가방 속 물건을 뒤지기도 했다.


방송 화면이 아닌 내 눈으로 직접 바라본 풍경도 위태로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특히, 사람들로 붐비는 영국의 거리와 관광지에서 말이다.


가방이나 작은 소지품을 옆에 두고 사진을 찍는 이가 있는가 하면, 군중들과 뒤섞여 거리 공연을 지켜보는 이의 가방이 등 뒤로 펼쳐져 있기도 했다. 심지어, 지퍼나 단추가 없어서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가방에 손을 집어넣을 수 있을 정도였다.


앞서 소매치기를 당했다고 하는 이의 경우도 사진을 찍으면서 가방의 지퍼를 열어두었다고 했다.




"영국에서 번거롭게 은행을 개설할 필요가 있겠어?"

"이것저것 다 귀찮으니 영국에서 쓸 돈을 몽땅 환전해 가자고."

"한국에서의 습관대로 카드를 썼을 뿐인데 영국 상점에서 카드를 안 받아주네."

"혼잡한 관광지에서 사진을 찍고 구경거리에 한눈을 팔다가 소매치기를 당했다."


대부분 영국에 온 지 얼마 안 되는 이의 사연이다. 이들은 단순히 거액의 현금을 들고 다니며 불안해하거나 카드 사용에 곤란을 겪는 일로 그치지 않는다.


카드 서명란이 비어 있어도 또 결제 서명을 대충 휘갈겨도 의심하지 않지요, 수시로 사람들이 드나드는 카페에서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을 두고도 안심하고 자리를 비우는 문화권에 살다가 해외에 나오면 당황하는 한국인이 많다.


이들처럼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거액의 현금이나 귀중품을 들고 다니는 외국인 관광객을 노리는 범죄는 어디서든 도사리고 있다. 조심. 조심. 조심할 일이다.


커버 이미지: bing.com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