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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빛서가 Aug 08. 2021

지금 우리는 무엇을 외면하고 있을까?

김초엽작가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책 에세이


아이들과 꽉 차게 시간을 보내다 보면, ‘난 언제부터 어른이 된 걸까?’라는 의문이 들어요. 스무 살이 되면서 사회에서는 '성인'으로 분류되었고, 그러면서 어슴푸레 ‘어른’된 듯 착각했던 것 같아요.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서 한 사람 몫의 수입과 내 이름으로 책임져야 할 일들도 생겨나면서 ‘어른의 삶이 이런 거구나!’ 깨닫기도 했는데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부모'라고 불리면서 그 책임의 무게가 더 커질수록 나에게서 '어린아이'는 잊혀진 것 같습니다. 


아주 먼 시간을 거슬러 아이였을 때를 떠올리면, 매우 골치가 아팠던 기억이 나는데요. 해마다 학교에서는 왜, 자꾸, 미래를 상상하라고 하는 것인지요. 10년 후, 20년 후의 '내 모습'을 그림으로 그리거나 글로 써보라고도 하잖아요. 선생님이 될까, 마케터가 될까, 영어 통역사가 될까, 심리학자가 될까 수많은 직업들을 두고 고민도 했었죠. 한편으로는, 잘 생긴 남편과 예쁜 아이들을 낳아 화목한 가정을 이루는 꿈도 꿨을 것 같습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상상’을 할 시간과 에너지조차 없다고 느낄 때가 많아졌어요. 당장 마주한 현실을 하루하루 살아내고, 안주하는 어른이 되어갔죠. 해가 갈수록 느는 것은 뱃살과 주름뿐만이 아니었고, 고작 상상할 수 있는 것은 끝도 없는 '걱정 메들리'였습니다. ‘오늘 저녁은 또 뭘 차리지?’와 같은 아주 사소한 근심부터 내일도 코로나가 늘어나면 어쩌지?라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걱정까지 생각의 파도가 휘몰아쳤어요. 자려고 누워서도 ‘아직 난 걱정할 거리가 산더미인데’ 자정은 너무 빨리 넘어가 버리네요. '자야 하는데.....'라는 걱정과 함께.     


이렇게 뇌의 수분이 바짝 말라가는 듯한 걱정만 끌어안고 있다 보면, 정신이 피폐해지는 것을 느껴요. 이럴 땐, 훌훌 털고 현실을 잠시 떠나보는 것도 좋겠다 싶어서 ‘책’을 펴 들었습니다. 바로, 미래에 대한 상상력이 듬뿍 담긴 김초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말이죠. 젊은 작가의 기발한 상상과 더불어, 생소한 과학 용어까지 낯설지만 읽는 재미가 있었던 책입니다.       


이 책에는 총 7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습니다. 간단히 주제들을 짚고 넘어가 보면, 인간 배아를 소재로 한 '순례자는 왜 돌아오지 않는가', 외계 생명체와의 교류를 다룬 '스펙트럼', 우주 행성 간의 이동한 시대의 이야기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 실려있고요. 그다음으로 미지의 외계 생명체가 인간의 몸속에 존재한다는 '공생 가설', 감정을 손으로 만지고 쓰다듬을 수 있다는 '감성의 물성', 죽은 사람들의 생애 정보를 데이터로 이식한다는 상상력이 돋보인 '관내분실', 사이보그의 몸으로 우주 비행을 한다는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으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단편들마다 공통점은 주인공들이 거의, 대부분 여성이라는 점인데요. 아직까지 내가 접해온 SF 영화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남성이었고, 많은 남자아이들의 꿈이 '과학자'라고 하는 것을 고려한다면, '여성 과학자'나 '우주비행사'가 조금은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저는 아주 눈치가 없게도 책의 절반 정도를 읽었을 무렵이 되어서야 '아, 주인공들이 다 여자네?!'하고 눈을 다시 떠서 보게 되었죠. 참, 세상을 보는 눈이, 책을 읽는 마음이 넉넉지 못한 것 같아요.     


그중에서 가장 잘 이해하고 공감했던 작품은 '감성의 물성'이었어요. 잡지 기자인 주인공은 어느 날부터인가, SNS 통해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하게 된 제품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그 물건들은 '행복, 침착, 공포, 우울'과 같은 감정을 조형화한 것인데요. 예를 들어, 침착의 비누를 만지면, 마음이 가라앉게 되는 효과가 있다고 하죠.      


그런데, 사람들은 긍정적인 감정 외에도 공포나 분노 같은 부정적 감정을 사기도 했습니다. 책에서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소비가 항상 기쁨에 대한 가치를 지불하는 행위라는 생각은 이상합니다. 어떤 경우에 우리는 감정을 향유하는 가치를 지불하기도 해요. 이를테면, 한 편의 영화가 당신에게 늘 즐거움만 주던가요?”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이 부분에서 저는 한참 생각에 빠졌어요. 맞아요, 인간은 '행복'과 '기쁨'에만 반응하지는 않죠. 누군가는 나보다 더 힘들거나 슬픔에 빠진 이들을 보고 오히려 좌절을 이겨내기도 하니까요. 또,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새드 엔딩 영화나 소설을 읽으면서 감정에 흠뻑 빠졌다가 마음이 튕겨 나오듯 회복하기도 합니다. 저는 한때, 우울감이 휘몰아칠 때면 혼자 차에서 죽도록 슬픈 노래를 틀어놓고 정신 나간 사람처럼 울기도 했어요. 오히려 깨 발랄한 노래는 거추장스럽고, 전혀 힘이 나지 않았죠.     


매일 팬데믹 공포로 힘든 지금 이 상황에서, 단 한 가지 감정을 곁에 둘 수 있다면 난 무엇을 선택할까 생각해 봤어요. 아마도 '침착'을 고를 것 같은데요. 어떤 날은 질식할 것처럼 답답했다가, 또 어떤 날은 의욕에 넘쳐서 하루를 불태우곤 하다가, 갑자기 몸을 움츠리는 날들의 반복되니까요. 이렇게 하루에도 수백 번씩 흔들릴 때면 '토닥토닥' 괜찮다고 다독여주는 '침착'이라는 감정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다음으로 여운이 남았던 작품은 '관내분실'이에요. 저는 독서모임에서 책이 정해지면 도서관을 먼저 찾는 편인데요. 가끔 ‘대출 가능’이라고 적혀있는데도, 그 자리에 책이 없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때는 사서 분의 도움을 받아서 옆 칸에 잘못 꽂아진 책을 찾기도 했지만, 어떤 때에는 아예 대출을 포기를 한 적도 있습니다. 분명, 도서관 내에는 있지만 찾을 수 없다는 게 아이러니하죠.


김초엽 작가도 이런 경험을 소재로 관내분실을 썼다고 하는데요. 저에게는 한순간의 기억에 지나지 않지만 작가에게는 한 작품의 시초가 된다니, 참 놀라웠습니다.      


미래의 사람들은 먼저 떠난 이들을 추모하고 영혼과 만나기 위해 도서관을 가는데요. 도서관에는 한 사람의 생애가 담긴 데이터 ‘마인드’를 열람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주인공 지민은 엄마로부터 많은 상처를 받았었기 때문에, 엄마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마인드를 찾지 않았습니다. 3년이 지나서야 도서관을 찾았지만, '엄마의 마인드'가 분실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하죠.     


“엄마가 실종되었다. 그러니까, 죽어서야 실종되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라고요.     


지민은 도서관 어딘가에는 있지만, 인덱스가 지워져 찾을 수 없는 엄마의 마인드를 검색하기 위해 노력하는데요. 아버지만 살고 계신 친정으로 가서, 아직 남아있는 '엄마'의 유품들을 찬찬히 살펴봅니다. 그것들에서, ‘엄마’가 되기 이전의 '김은하'라는 사람이 남긴 흔적들을 접하게 됩니다. 결혼과 임신을 경험하면서 사회와 단절되는 삶을 살게 된 엄마를 발견하고, 단순히 산후우울증 때문에 자식들에게 상처를 준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깨닫게 됩니다. 정작 지민 자신도 임신 8주 차에 접어들면서, 직장으로부터 분리를 경험하게 되었으니 공감이 갈 수밖에요. 


저는 '엄마'와 '나'의 역할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 가장 흔들리는 것 같아요. 요즘처럼 다시 코로나19가 심해져서 아이를 돌보느라 '내 것'을 할 수 없게 될 때면 마음으로 울지요. 또, 점점 더 내가 하고 싶은 일과 멀어질까 봐 조바심도 나고, 이렇게 게을리 써서 과연 '작가'가 될 수 있을까 두렵기도 합니다. 이렇게 갈등이 일 때면 그 화는 아이들에게 전달됩니다.      


이 모든 상황이 나의 선택이었다는 것을 머리로는 100% 인정하면서도, 터져버릴 것 같은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서. 이런 불안정한 나를, 아이들은 이해해 주는 날이 올까요? 녀석들의 머리가 커서, 공감이 아닌 '외면'을 할까 가끔 무섭기도 합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저는 또 걱정 꾸러미를 들여왔네요.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는 여성뿐 아니라 장애인, 이주민, 비혼모 등의 사회적 약자, 소수자들이 중심인물로 등장합니다. 작가는 과학이 발달한 먼 미래를 상상했지만, 어쩌면 성공과 실패, 주류와 비주류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가는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짐작해 봅니다. 우리가 함께 살아갈 미래를 위해, 현재 외면하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문제를 던져준 것 같아서 책장을 덮은 후에도 여운이 남았습니다. 


또, 전형적인 문과인 제가 이해할 수 없는 과학 용어들이 무지막지하게 튀어나와서, 적응을 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지만, 마음 한편이 쓸쓸해지면서도 따스해지는 기분이 들었네요. 마치 책의 표지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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