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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규 Oct 02. 2019

모라잔의 10분 글쓰기

시작은 있지만 끝은 없는 10분간의 자유로운 이야기 <18>

- 흔히 많은 글쓰기 창작 교육에서 하고 있는  10분 글쓰기는 10분간 자유롭게 글을 쓰는 과정에서 새로운 영감을 주고 필력을 높일 수 있습니다. 앞으로 연재할 10분 글쓰기는 소설(혹은 동화)을 기반으로 한  저의 자유로운 글쓰기가 될 것입니다. 매일 10분간 쓴 글을 맞춤법 수정 이외에는 가감 없이 게재합니다. -



 그날 밤 놀이터는 고요했다. 자그마한 가로등이 희미한 불빛을 내며 간신히 켜져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불빛만으로도 놀이터 전체가 훤하게 밝았다. 나는 놀이터 가운데에 서 있는 낡은 정자에 홀로 앉아 있었다. 밤의 놀이터는 마치 나만의 작은 궁전처럼 느껴졌다. 아버지의 매질과 엄마의 외면 속에서 납덩이처럼 가라앉은 내 마음을 위로해 주는 건 언제나 한밤중의 놀이터였다. 이곳에 앉아 있으면 바람이 내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갔고 풀벌레 소리가 나에게 노래를 들려주었다. 그러면 납덩이처럼 무거웠던 내 마음은 어느새 조금씩 날갯짓을 하였다. 그렇게 치유의 시간이 지나면 나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반지하 집으로 되돌아가곤 했다. 

 그날 밤도 나는 눈을 감고 정자에 앉아 바람의 장난질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은 술 취한 아버지가 코를 드르렁거리며 잠에 빠져들기를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너 혼자니?”

 누군가의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아직 눈물자국을 다 닦아내지 않았는데 어쩌지?  잠시 동안 그런 걱정이 들었지만 그의 얼굴을 보고는 그런 걱정은 부질없다는 걸 나는 바로 느꼈다. 그는 내 대답도 듣지 않고 가만히 내 옆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한 동안 나와 그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그의 가느다란 목덜미가 눈앞을 어른거릴 때면 나는 얼른 고개를 돌렸고 애꿎은 모래를 찼다.  그때였다. 쏴아 하고 비가 내였다. 

 “어, 비 온다!”

 그가 말했다. 

 “어 비 온다!”

 내가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이 비 오는 놀이터 풍경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가로등 불빛이 물기를 머금고 미끄럼틀과 시소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작은 목소리로 내게 말을 걸었다. 나는 그때 그를 바라보았다. 그도 나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는 나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기분이 묘했다. 하지만 싫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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