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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규 Oct 05. 2019

모라잔의 10분 글쓰기

시작은 있지만 끝은 없는 10분간의 자유로운 이야기 <21>

- 흔히 많은 글쓰기 창작 교육에서 하고 있는  10분 글쓰기는 10분간 자유롭게 글을 쓰는 과정에서 새로운 영감을 주고 필력을 높일 수 있습니다. 앞으로 연재할 10분 글쓰기는 소설(혹은 동화)을 기반으로 한  저의 자유로운 글쓰기가 될 것입니다. 매일 10분간 쓴 글을 맞춤법 수정 이외에는 가감 없이 게재합니다. -




 진실은 세상을 비추는 등불이고 세상을 바꾸는 가장 날카로운 창이라고 누군가 말했다지만 그건 순 개 뻥이 틀림없다. 

 “기침약! 감기약! 아무거나 좋으니까 빨리!”

 오십이 넘어 보이는 남자가 기침을 참으려는 듯 자꾸 입을 막으면서 내게 손을 벌렸다. 그 바람에 그의 가운데가 빈 머리가 계속 눈에 들어왔다. 그의 허연 머리와 손끝이 너무 애처롭다. 

 “죄송하지만 아침부터 매진이었어요.”

 나는 아침 7시부터 줄 곳 해온 멘트를 이 손님에게도 날렸다. 

 “에이 C!”

 그는 화가 났는지 편의점 문을 세게 닫고 나가버렸다. 지난주부터 기침감기가 대 유행이다. 물론 기침감기야 약 먹으면 사흘이고 그냥 견디면 3일이라고 할 만큼 별로 대단하지 않은 병이다. 하지만 지금 K시 전체를 유행하고 있는 기침감기는 보통의 감기가 아니었다. 지독한 독감처럼 고열에 시달리게 하냐고? 아니다. 문제는 기침과 재채기에 있었다.

 “에취!” 한 번에 두 시간, “콜록!” 한 번에 30분이다. 시간도 정확하고 오차도 없이 그 시간이 환자에게 닥쳐온다. 그 시간이 뭐냐고? 바로 진실을 고백하는 시간이다. 

 기침 한 번에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30분 동안 진실을 말해야 한다. 재채기라도 할라치면 장장 두 시간 동안 자신의 속내를 상대방에게 그대로 드러내야 하는 것이다. 그게 뭐 문제냐?라고 말할 사람도 있겠지만, 솔직해 보자. 정말 자신 있을까? 기침을 할 때마다 30분씩 고박꼬박 다가오는 진실의 시간을? 이건 학창 시절에 친구들끼리 재미 삼아했던 진실게임 시간이 아니다. 내가 선택할 수도 내가 거부하고 대신 술을 먹을 수도 없는, 절대 드러내고 싶지 않은 진실을 말해야 하는 시간…….

 다행히도 나는 그 감기에 걸리지 않았다. K시의 모든 사람들에게 거쳐 간 “진실 감기”(어떤 사람은 두세 번 걸리기도 한다)는 이상하게도 나에게는 지금까지 아무런 영향을 주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사실 별로 기쁘지 않다. 

 “딸랑! 딸랑!”

 편의점 문에 달아놓은 작은 종이 울리며 마스크를 쓴 그녀가 들어왔다. 나는 그녀를 알아차리자마자 재빨리 귀마개를 꼈다. 그래 봤자 소리가 들리지 않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고 싶었다. 그녀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털어놓는 진실의 목소리를 나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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