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기규 Jan 22. 2023

세상의 모든 셜리

2. 얼음 여왕의 호기심

“너, 엄지손가락이 얼마나 중요한 손가락인지 모르지?”

윤진이 차갑고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윤진에게 엄지손가락을 붙잡힌 성태는 시뻘개진 얼굴로 소리쳤다. 

“너 안 놔? 죽고 싶어?”

 윤진은 무표정한 얼굴로 말을 이어 갔다.

“엄지손가락을 잃으면 손으로 할 수 있는 일 70%를 할 수 없게 돼. 양치질도, 연필을 잡는 것도.... 아 넌 원래 양치질은 안 하잖아. 그리고 머리도 나쁘니 이 거 하나 쯤 없어도 상관 없으려나?”

 “야 이 미, 미친년아!”

 성태가 흥분해서 남은 왼손을 마구 휘둘렀다. 하지만 윤진이는 그것들을 가쁜히 피했다. 그러는 동안 성태의 오른손 엄지손가락은 퍼렇게 죽어가고 있었다. 

 “너, 너 가만 안 둬!”

 성태가 눈물을 글썽거렸다. 하지만 윤진이는 성태의 손가락을 감은 털실을 더욱 세게 묶었다. 

 “몇 분 지나면 괴사가 시작될 거야. 그럼 이제 너는 영원히 엄지손가락을 쓸 수 없을 테고 앞으로 그 더러운 손으로 여자애들 평가하던 일도 못 하겠지.”

 “그건 그냥 농담이잖아. 농담!”

 성태가 고래고래 소리쳤다. 윤진은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다. 

 “이제 5분 지나면 손가락을 자를지 아니면 팔 전체를 자를지 선택해야 될 거야. 넌 어떤 게 좋겠니?”

 성태가 결국 무릎을 꿇었다. 

 “미안! 미안! 미안해. 다신 여자애들에게 장난치지 않을 게 맹세해 맹세한다고!”

 성태가 울부짖었다. 그제야 윤진은 성태의 엄지손가락을 놔주었다. 성태는 허둥지둥 묵여있던 털실을 풀어 보았지만 그게 맘처럼 쉽지 않았다. 커터칼로 간신히 털실을 끊고 나서야 성태의 손가락은 자유를 얻었다. 성태는 곧바로 윤진에게 달려들었다. 

 “내가 너였다면 지금 병원으로 달려갈 걸. 이제 2분도 안 남았어. 잊었어?”

 “이런 미친 사이코패스 년!”

 성태가 손가락을 부여잡고 교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공부 좀 해. 난 사이코패스가 아니라 소시오패스야.”

 윤진이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윤진이 교실을 죽 둘러보자 윤진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반 친구들은 흠칫 놀라 후다닥 자기 자리에 앉았다. 야자 시간만 되면 맨 뒤자리에 앉아 여학생들의 몸매에 대해 평가를 해대던 성태의 최후가 시원하긴 했지만, 반 친구들은 윤진의 모습에서 모두 자기 엄지손가락이 잘리는 것 같은 섬뜩함을 느꼈다. 그들은 혹시 자신이 윤진의 심기를 건드린 적은 없는지 헤아려보기 바빴다. 모두 얼음 여왕 윤진의 처벌을 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윤진이 목도리를 뜨던 실을 풀고 성태에게 다가가 녀석의 엄지손가락에 실을 감을 때까지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상한 사람은 그 누구도 없었다. 어떤 일을 벌일지 도무지 예상할 수 없는 가장 무자비한 얼음여왕.... 반 친구들에게 윤진은 그런 존재였다. 그래서 반 친구들은 좋은 일이든 안 좋은 일이든 윤진이와 엮이고 싶지 않았다. 

 “아, 심심해.”

 윤진은 반 친구들의 행동에 관심조차 없다는 듯이 저벅저벅 교실 창문을 향해 걸어 나갔다. 그리고 창문을 활짝 열었다. 바람이 휙 하고 들어왔다. 윤진은 창문 밖으로 고개를 쑥 내밀었다. 마침 운동장에는 서너 명의 학생들이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다시 시작! 오혜연!”

 혜연이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혜연. 3학년 1반 “억울한 사람 없는 정의로운 연정고”라는 매우 유치한 슬로건을 들고 학생회장 선거에 나온 녀석...  윤진이 얼핏 보기에도 선거 준비부터 선거 운동까지 제대로 하는 것이 하나도 없었기에 윤진은 애당초 혜연이 당선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저 녀석 뭘 다시 시작하자는 거지? 지금도 뭔가 하고 싶은 게 있나?’

 윤진은 완벽한 패배 앞에서 다시 시작을 외치는 혜연에게 이상한 호기심이 생겼다. 그것은 매우 단순하고 순수한 호기심이었다. 만약 성태가 여학생들 몸매 평가에 윤진의 이름을 넣지 않았다면 성태의 헛소리에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거였다. 사실 윤진이 성태의 장난에 일부러 대응해 준 것은 지난번 의학책에서 본 내용을 실험해보고 싶었던 것이 더 컸다. 그런 윤진에게 누군가에 대한 호기심이 생긴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오혜연, 한 번 만나 봐야겠어.”

 윤진은 교문 밖으로 사라지는 혜연의 뒷모습을 지그시 쏘아 보았다.

<계속 ..... 일요일마다 연재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몬스터 바이러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