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한 사람이 되는 법

인간은 어디까지 멍청할 수 있고, 어디까지 똑똑할 수 있는가?

by 한정원

우선, 이 글은 개인의 경험과 소위 '뇌피셜'을 많이 반영하였다. 만약 이 글을 보고 '그건 당신 생각이나 그렇지, 현실과는 다르다!'는 의견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반박해주길 바란다.


<말하고자 하는 바>

1. 당신이 아는 것은 진실이 아니다.

2. 당신은 틀렸을 수 있다.

3. 이를 인정하는 순간, 당신은 똑똑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똑똑한 사람은 자신이 틀렸다고 말하며, 멍청한 사람은 자신이 옳다고 말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범죄자, 갑질하는 사람, 법을 어기는 자들, 그리고 악인들을 끝없이 목격한다. 이처럼 기이한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대한민국 사회를 보며, 나는 한 가지 의문에 이르게 되었다. 이 많은 악행은 어디서 비롯되는가? 이 의문의 답은 수없이 많을 것이다. 그 중 내가 얘기하고 싶은 답은 "내가 옳고, 남은 틀렸다"는 오만함이다. 이 오만함이 사회에 갈등을 일으키고 분열을 야기하며 이기심을 조장하는 것이 아닐까.


"대한민국의 정치는 틀렸다"는 말의 허술함

가정을 해보자. 어느 정치인이 자신의 SNS에 이렇게 적는다.

"대한민국의 정치는 틀렸다."

단 열한 글자뿐. 만약 그 문장이 근거 없이 던져졌다면, 댓글창은 논쟁으로 뜨겁게 달아올랐을 것이다. 그러나 근거를 따지기 이전에 이 문장 자체가 논리적으로 심각한 결함을 안고 있다는 사실을 먼저 짚어야 한다. 크게 세 가지 이유에서 그렇다.


1. 구체성이 결여되었다.

'대한민국 정치'란 무엇인가? 대한민국의 모든 정치 시스템을 싸잡아 부정하는 것인가? 군부독재를 극복하고, 위험한 지도자를 끌어내리며, 민주주의를 일구어낸 역사마저 부정하는가? 대통령 직선제, 의회 제도, 시민운동의 성취도 모두 잘못된 것인가? 정치가 잘못되었다고 말하려면 정확히 무엇이 문제인지 구체적으로 짚어야 한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의 양당제는 문제가 있다”거나 “국회의원의 특권 남용이 심각하다”라고 명시했다면 그제야 비로소 생산적인 논의가 가능해진다.


2. 객관적 기준이 없다.

옳고 그름을 따지려면 근거가 필요하다. 특히 정치처럼 거대한 주제를 다루려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대한민국 정치 전반에 대해 '잘못되었다'고 말하면서 어떤 지표도, 어떤 수치도 제시하지 않는다면 그 주장은 공허하다. 설령 “국민의 99.9%가 정치에 불만을 품고 있다”는 통계가 있더라도 조사 방법, 표본의 신뢰성, 질문 설계의 편향 여부 등을 따져보지 않는 한 그 수치는 단순한 숫자놀음에 불과하다. 계량화되지 않은 주장, 검증되지 않은 통계에 기대는 것은 오히려 논리의 설득력을 해칠 뿐이다.


3. 가치판단은 상대적이다

무엇이 '잘못'이고, 무엇이 '옳음'인가? 이 문제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정부가 집값을 낮추면, 집을 소유한 사람에게는 악행이고, 집을 갖지 못한 사람에게는 정의가 된다.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령을 어떤 이들은 헌법을 위반한 중대한 범죄로 보고, 어떤 이들은 국가를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로 본다. 선악은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명백해 보이는 주장이라도 스스로 조사하고, 검증하여, 비판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옳은 주장은 어렵다

혹시 그 정치인이 이렇게 적었다면 어땠을까?

"대한민국 대의민주주의는 국민의 의견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 신뢰할 만한 통계조사 결과 70% 이상의 국민이 이에 동의했다. 전문가 자문을 통해 문제의식을 확인했으며, 정치 경험을 통해 실질적인 한계도 체감했다. 다른 정당의 정치인들 또한 공감하고 있다."

슬프게도 현실에 이런 정치인은 드물지만 이런 정치인이 있다면 세상은 조금 더 살기 좋을 것이다. 물론 현실에서는 모든 발언을 이렇게 다듬어 내놓기 어렵지만 무책임하고 추상적인 발언이 난무하는 지금의 정치공약이 용인되는 지금의 분위기는 좋은 세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가 틀렸다고 인정하는 용기

이 문제는 정치인만의 문제가 아니다.우리는 일상에서 친구와의 대화 속에서도, 가족과의 논쟁 속에서도, 언론과 미디어를 소비하는 과정에서도 논리적 결함이 가득한 주장에 무방비로 노출된다.그렇기에 우리는 언제나 질문해야 한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과연 사실인가?”

“내가 내린 결론은 충분히 검토된 것인가?”
“내가 믿고 싶은 것만 믿고 있는 것은 아닌가?”

옳은 주장을 펼친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렵고 많은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방 안에 앉아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20~30분 검색한 결과를 근거로 내린 결론은 틀렸을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정보라고 해서 무조건 신뢰할 수는 없다. 왜곡된 사실 위에 쌓은 생각이 옳을 리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마음속에 이 질문을 품고 있어야 한다.

“혹시 내가 틀렸을지도 모른다.”

이 작은 의심이야말로 혐오와 갈등이 만연한 오늘날 대한민국을 조금씩 바꿀 수 있는 첫걸음이다.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할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으로 현명해질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더 나은 사회로 가는 길이다.

작가의 이전글감정과 이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