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잘못 보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어.
단 한 번도 나는 내가 나를 싫어하는 걸 몰랐다. 아니 내가 나를 위해 운동도 시키고, 건강식도 먹이고 좋은 거 보여주고 일하고 돈도 벌어오니까. 내가 나를 싫어한다고? 상담을 받은 지도 삼 년을 넘어가는데 그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큰 계기로 깨달은 것도 아니다. 회사까지 한 시간 반 걸리는 기차를 타고 출근을 하고 있었다. 회사는 시골에 있고 나는 도시에 살아야 숨이 트이는 사람이라서 멀리 산다. 그날도 기차에 앉아서 책을 읽었나, 일기를 썼나 아님 그냥 무거운 가방을 무릎에 올리고 허리를 피고 있었나. 아 정말 이렇게 사는 거 갑갑하다, 반복이 지겹다, 도대체 나는 언제 내가 살고 싶은 곳에 사는 결정을 할까, 또 살이 쩠어, 여기 있는 게 지겹다-라고 생각하다 문득 깨달았다.
아! 나는 내가 가진 건 다 안 좋아하네, 다 만족하지 않네.
어! 나 내가 가지면 싫어하나?
나 날 싫어하나 봐.
그 짧은 순간에 오래 가지고 있던 의문들이 풀리기 시작했다. 안개 낀 듯 흐렸던 머릿속에 하나의 문장으로 깨끗해졌다. 뭐든 내 손에 들어오면 빛을 잃었다. 나는 내가 가졌기 때문에 내가 다니는 회사도 의미가 없고, 내가 산 옷은 당연히 나에게 어울리지 않고, 내가 사는 곳은 지루하고(아 이건 객관적인 사실이다), 내가 하는 일은 내가 원하던 게 아니고, 나는 의지박약에 말만 하는 사람이고, 항상 부족해서 채우고 채워도 팥쥐 항아리처럼 비는 사람. 나에게 나라는 사람은 한없이 부족하고 만족을 주지 못하는 사람. 너무 싫은 사람.
내가 이걸 나이가 서른이 넘도록 몰랐다니 충격이었다. 항상 갑갑했다. 왜 나는 이게 맘에 안 들까, 자꾸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 가고 싶을까, 왜 또 다른 걸 원할까, 가만히 있지 못할까, 왜 스스로 못나 보일까. 지금 사는 곳에서 좋아하는 걸 만들어보려고 얼마나 노력하고, 가끔 숨이 잘 안 쉬어질 때 나는 왜 가지고 있는 걸 좋아하지 못하는 사람인지 한참 나무랐다. 답은 내 안에 있었다.
상담선생님에게 선생님! 제가 스스로를 싫어하는 걸 깨달았어요!라고 말하며 어떻게 좋아하죠?라고 물었다. 선생님은 웃었다. 자기를 이제 바라보기 시작했는데 왜 또 더 좋은 거 바꾸는 방법만 따라가려고 하냐고. 이걸 문제로 보고 해결하고 싶죠? 또 밖에서 찾으려고 하네요. 그러게요. 내가 있는 지금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벗어나려고 했다. 당분간 예전처럼 못마땅한 순간이 오면 아, 이거 내가 나를 싫어해서 그렇지 하고 바라보는 연습을 하라고 하셨다.
깨달았던 순간처럼 모든 게 깨끗하고 속 시원하게 해결되면 참 좋았겠다. 다시 머릿속은 흐리지만 앞에 가는 길의 방향들이 보이는 기분이다. 매일 습관처럼 찾아오는 아 나 왜 여기 있지, 마음에 들지 않아, 이건 또 왜 부족해 보여 - 이 생각이 들 때 아 맞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건 항상 부족해 보이지? 정말 부족한 거 같아? 정말 이거 별로야? 스스로에게 다시 물어보게 된다. 이게 날 바라보는 방식이 맞는지 몰라도, 꼬리를 물듯 우울함에 빠지지 않게 도와준다. 모든 것들이 흙탕물 속에 빠져 있었는데 돌 하나라도 건져서 닦아 볼 수 있게 되었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