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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차 출근 - 전설의 아이템,카렌다(Calander)

달력 배부 합니다....아?

존경하는 구독자 형님들,

이 엄동설한에 따스히 잘 지내고 계신가요? 12월, 올해의 끝자락에 들어서면서 달력에 빼곡히 채군 송년회 일정으로 좋은 시간 보내고 계신가요?

예? 달력부터 주고 그런 이야기를 하라고요? 잠시만요 형님들, 일단 제 이야기부터 들어주시겠어요?


1. 달력 다 나갔어요

카렌다 있어? 카.렌.다(calander의 품격있는 발언)


선착순인데 오늘 다 나갔어요!


그게 말이 돼?

내가 vip고객인데?

뒤에 고객용 따로 빼 놓았을 텐데?

넉넉하게 안 만들어 놔?

이 날만 기다린다고 작년부터 몇 번을 왔다갔는데!

예금 다 빼야겠네! 고액 거래하는데!

어제도 받아갔는데 오늘 내 동생이 필요하다고 해서 왔는데!

거 한달짜리 걸어 놔야 부자 된다고 해서 특별히 왔다고!

어디서라도 사와!

다른 지점에 있는지 알아봐!

빵빵은행 께 만두 만들기 좋게 종이가 빤딱빤딱한대 만두 못 먹겠네!


12월 초만 되면 고객님들을 위해 카렌다 페스티벌을 하는데, 5만 식빵동(행정동) 인구를 다 못 맞추긴 합니다. 5만 대군이 와도 학익진도 못 필 정도로 별로 없어요. 보통은 하루 만에 다 나가거나 전날보다 배부 수량이 적어지긴 하죠. 아침에 백화점 오픈런 방불케 하며 줄 서서 가져가시니 어쩔 수 없죠. 그래도 하나라도 받고 싶어하시는 형님들의 마음, 이해합니다. 그저 죄송하다는 말씀만 드립니다. 마음 같아서는 크레파스라도 달력 그려드리고 싶습니다만.


2. 아무리 걸어놔도 부자가 안 되는 느낌!

옛 조상님들의 말씀이신지는 모르겠지만, 달력을 걸어 두면 돈이 저절로 많이 들어온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누구보다 강력한 팔랑귀인 저는 항상 어릴 때부터 은행 달력을 신줏단지처럼 모셔 두었습니다. 그런데 돈이란, 저에겐 스쳐 지나가는 인연처럼 바람에 날려 사라지는 느낌이었어요. 달력은 그저 "마! 지금까지 마이 썼으니 없는거지, 내 탓 아이라고!" 말하는 듯 했어요.


1월부터 지금까지 반성을 해 보자면, 해외여행도 두 번, 국내 장기 여행부터 여러 가지로 물심양면 쓰셔서 그렇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달력을 1월까지 다시 앞으로 넘길 때마다, 숨차게 열심히 즐겼고 뭔가를 이루었던 지난 날들이 뭉게뭉게 떠오르지만, 그만큼 돈도 허공에 모락모락 피어나서 저 하늘로 날라갔네요. 알차게도 쓰셨습니다. 김감자님.

이제부터는 달력에 걸어 두고, 가계부처럼 한 날 한 날 관리하는 습관을 키워야겠어요. 불우한 이웃을 돕는 행위도 좋지만, 정작 제 자신이 불우해지기를 바라는 것처럼 미래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행위는 자제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에는 가계부라는 주제로 글을 써 보겠습니다.


그래도 이번 년도를 돌아보면서 잘 했던 점은, 생각보다 몇 일을 안 빼먹고 꾸준하게 달력을 괴롭혔어요. 일정관리를 하고 다이어리를 빼곡히 작성했다는 점입니다. 제 다이어리는 1월부터 3월까지는 아날로그 형식으로, 가장 선명한 초록색 다이어리를 사서 고사리같은 손으로 한 땀 한 땀 쓰는 방식이었어요. 작은 달력에는 식단과 지출기록도 나름 썼고(빼 먹은 적이 더 많지만요.) 공책에는 아침, 점심, 저녁으로 계획 키워드만 작성을 하고 일기도 썼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게으름이라는 적이 나와 언제까지 무겁게 들고 다니고 시간도 없는데 언제까지 쓰고 앉아 있냐고 속삭였습니다. 사실, 열심히 별벌레다방 등에서 프리퀀시 한 장 한 장 알뜰히(?) 모아 받은 다이어리... 귀찮아서 오래 쓰지를 못했습니다. 더구나 문장이 아닌 단어 한 개 한 개 기록하는 습관이 있어서인지 생각보다 비정형화된 추상 예술로 다이어리를 작성하더라고요. 막상 보면 벤 다이어그램처럼 정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네이버 캘린더와 메모를 이용하여 핸드폰으로 관리를 시작했어요. 적어도 제 손에서 안 떠나는 핸드폰으로 일정관리를 하면 뭐 두고 왔는가, 뭐 하기 귀찮은가 하는 핑계가 사라지더라고요. 컴퓨터 타자로 한 탁 한 타닥 치다 보면 수정을 계속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제 삶의 방식과 맞습니다. 이 거대한 김감자의 4차 산업혁명으로 디지털 달력을 도입한 이후, 그렇게 12월까지 운동기록과 몸무게까지 업어오면서 작성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긴장의 끈을 놓고 그저 집에서 쉬기만 하던 감자 몸뚱아리가 무언가를 해내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하더라고요. 작고 귀여웠지만 적어도 하루종일 잉여로운 나날을 안 보내고 운동이든 취미든 해 내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사고뭉치인 저라도, 꾸준히 해 온 이건 칭찬해 줄려고요. 잘했어!


3. 그 어떤 방식이든, 다음 달력은 더 많이 수정하면서 말아보기로!

비닐에 똘똘 말아져 있는 벽걸이 달력, 사실 그거 야근하면서 고사리같은 손으로 한 땀 한 땀 말았습니다. 더 빨리 말기 위해서 선배들과 누가 더 빨리 말아넣는지 떡볶이 쏘기 대결도 했습니다. 수습의 인생이다 보니 난생 처음 말아 보았지만, 패기있게 그 승부 받아들였습니다. 12인분의 떡볶이, 내가 공짜로 먹겠어! 생각하는 순간, 선배들은 이미 컨베이어벨트에 가동되는 생산 로봇들처럼 신속 정확하게 비닐에 쏙쏙 넣고 있었죠. 선배들이 3나노 공정 집적 생산 수준이었다면, 저는 원시 시대 뗀석기를 만들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처럼 달력을 내리 치고 있었습니다. 그 작은 비닐 쪼가리에 왜 안 들어가는 건가 투덜거리는 순간, 12인분의 떡볶이는 고스란히 저의 지갑에서 나가게 생겼어요.


달력을 어떻게 잘 마는 건지 선배님께 조심스레 여쭤보니, 각자 다른 스타일로 말고 계셨어요. 어떤 선배님은 처음에 힘을 주어서 촘촘히 꽉 말고, 어느 선배님은 마치 스크류바 아이스크림처럼 돌리면서 비닐에 달력을 넣었고, 한 선배님은 비닐을 바닥에 대고 달력 한 귀퉁이를 비닐에 대 고정한 다음 쏙 넣으셨더라고요. 그래서 제 나름대로 이를 하나로 합쳐 달력 마는 방식을 수정했어요. 이제 내년에는 귀여운 후배한테 떡볶이 얻어먹을 생각을 하니 콧구멍이 벌렁벌렁거립니다.


앞으로 존경하는 형님들이 얼마나 이 아날로그 달력들을 쓰실 지는 모르겠어요. 4차 산업혁명이니 정보화의 물결이니 뭐래니 카렌다 페스티벌은 계속되고 있어서 당분간은 매년 야근하면서 달력을 말고 있겠죠. 그 동안 제 작은 금고같은 가계부나 다이어리가 이번에 그러하듯이, 앞으로의 달력의 내용이든 달력을 마는 방식도 계속 발전하게 하겠습니다. 형님들, 다만 한 가지만 읍소하고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그렇게 어렵게 말고 그렇게 어렵게 얻은 달력, 중고장터에는 보지 않게 부탁드립니다! 카렌다 페스티벌의 마무리가 5,000원에 팝니다가 아니길! 빵빵은행 달력으로 부자도 되시고 인생도 멋지게 수정되길 기원합니다. 그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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