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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독이 든 성배를 들다

49세 문과출신 N잡러 이야기

by Kay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고 체념하면서 짐을 챙기고 있었습니다. 고객사 팀장님과 저와 동행한 영업팀장님이 한참 동안을 다시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쩔 줄 몰라하는 고객사 인사팀의 팀원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불편한 시간이 지나고 저와 동행했던 영업팀장만 들어오셨습니다.



일단 나가서 말씀하시지요.



그렇게 저와 영업팀장님은 고객사의 로비에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고객사가 생각한 내용과 제가 준비한 내용이 다른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었지만, 막후에 숨겨진 다른 이야기들이 있었습니다. 고객사의 인사팀장과 인사팀원, 그리고 인사팀원과 저와 동행했던 영업팀장님, 그리고 저에게 이어지는 소통의 흐름 속에서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왜곡이 발생한 듯했습니다. 그러니 제가 준비한 내용은 고객사 인사팀장께서 보시기에는 0점짜리 강의 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영업팀장님은 이점을 파악하시고 인사팀장과의 제로베이스 미팅을 통해 고객사가 ‘정말로’ 원하는 니즈를 가지고 오셨습니다.



1. 성과관리에 집중할 것

2. 타사의 사례를 다양하게 많이 제시해 줄 것

3. 성과관리 면담을 위한 자세한 스크립트를 작성해 줄 것

4. 현업에서 리더들이 사용하기 좋은 템플릿을 제공해 줄 것



제가 처음 들었던 니즈와는 아주 달랐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이렇게 니즈가 구체적이고 명확해지니 좋긴 했습니다. 하지만, 고객이 만족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거의 과정개발의 수준의 품이 들어가는 작업입니다. 그것도 조직을 떠나 동료도 없이 혼자 해야 하기에 두려움이 앞섰습니다. 대신 진행만 잘 된다면 4주 강의라는 달콤한 과실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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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난이도는 매우 어려웠습니다. 실컷 고생만 하고 시범 강의에서 다시 퇴짜를 받을 수도 있었습니다. 영업팀장님은 이런 사정을 잘 아시기에 너무 어려울 것 같으면 다른 강사를 섭외할 수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이번 강의를 놓친다면 저에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당장의 생존이 어려운 지금, 생존기간을 더 연장하기 위해서는 어떤 일이라도 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독이 든 성배를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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