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리심 Jul 30. 2022

마음에 안 드는 사람 변화시키는 법

타인을  감동시키는 전략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 혹은 연인이 나에게 괴로움을 줄 때, 그 사람이 조금만 바뀌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셨을 겁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너무 지나친 욕심입니다. 나 자신의 오래된 습관을 고치기 어려운 것처럼 타인을 바꾸는 것은 더 힘들기 때문이죠.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에요. 바로 감동 주기 전략을 써보는 것입니다. 감동은 타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니, 감동을 받았다면 그나마 바뀔 가능성이 있습니다. 말이야 쉽지, 남을 바꾸는 것이나 감동을 주는 것 둘 다 똑같이 어렵지요. 존경받는 위인이나 성인이 아니고서야 평범한 우리가 남을 바꿀 수 있을 만큼 감동을 주는 것은 과연 가능하기나 할까요?


평범한 우리가 남을 변화시키기 위해 현실적으로 써볼 수 있는 전략을 고민해보았습니다.


1. 나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을

비밀로 해라!

마음에 안 드는 상대를 바꾸려고 그 상대에게 충고나 조언을 했을 때를 생각해보죠. 그 조언을 수용한 자신이 아니라 조언을 한 사람이 이익을 본다는 생각이 들면 어떻게 될까요? 그런 조언과 충고는 절대로 감동을 줄 수 없어요. 그리고 마음에 안 드는 행동을 개선하기는커녕 충고한 사람에 대한 반감을 갖게 될지도 모릅니다. 학창 시절 부모님이 공부하라는 잔소리로 “다 너 잘되라고 하는 얘기야”라고 하면,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미래에 내가 자신들의 골칫거리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부모님의 이기심이 엿보이지 않았나요. “나 좋으라고 하는 말이 아냐”라고 부모님이 말해도 뻔한 속내를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죠. 부모님의 말은 잔소리에 지나지 않았고 우리의 마음에 결코 와닿지 않았을 거예요.


남에게 감동을 주고자 할 때는, 나의 충고가 나에게 이익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남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합니다. 특히 가족과 같이 가까운 사람일수록 (이해관계가 밀접할수록) 조언하는 사람이 이익을 본다는 것을 숨기기가 더 어렵습니다. 고치라고 한 사람이 이익을 보는 것이 너무나 뻔해 보입니다. 가족끼리는 어쩌면 모르는 사람에게 대신 잔소리를 해달라고 하는 편이 더 효과적일 거예요. 그런 면에서 아이가 공부하길 바라는 부모는 아이에게 특별히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나마 할 수 있는 것들은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과, 모범을 보이는 것 등 밖에는 없습니다. 그 외에 아주 세련되게 넛지 하는 수밖에 없죠.


글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인터넷 상으로 아무리 좋은 글을 읽어도, 글쓴이가 글 마지막에 광고 문구를 넣어 놓은 것을 보면 저는 감동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리고 제가 쓰고 있는 글 역시 읽는 사람에게 감동을 주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왜냐하면, 내 글을 누군가 보고 좋아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익을 보고자 하는 마음)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죠. 그 욕심이 커질수록 그것을 알아차린 독자는 감동보다는 팔짱을 끼고 비판적으로 제 글을 대할 것입니다.



2. 오히려 손해가

된다는 것을 넌지시 알려라.


조언을 하는 혹은 호의를 베푸는 우리가 오히려 손해를 입는다는 것을 “넌지시” 알리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대놓고 “당신 때문에 내가 얼마나 손해 보는 줄 알아?”라고 생색을 내면 감동은 파괴됩니다. 설사 대놓고 말하지 않더라도, 똑똑하고 눈치 빠른 사람들은 작은 손해 뒤에 감춰진 숨은 의도를 쉽게 알아차립니다. 그래서 넌지시 알리는 것은 어렵습니다. 이때도 제삼자가 대신 말해주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겠죠.


우리가 감동받았던 경험을 떠올려보면 아실 겁니다. 힘들게 밤낮으로 일하시는 부모님이 집에 들어와 “밖에 나가서 너희들 공부시키려고 얼마나 힘들게 일하는지 아니”라고 말할 때보다, 고된 일로 거칠어진 부모님의 손을 어느 날 우연이 보았을 때 비로소 감동이 물결칩니다. 그리고 위인들의 고결한 희생과 죽음이 대대손손 감동으로 전해지는 것도 이와 같은 이치입니다.



3. 애초에 이해득실을

따지지 못하게 하라.


마지막으로 이것이 제일 힘든 방법이지만 어찌 보면 쉬운 방법 같아요. 사람이 이해 득실을 따지지 않는 경우는 무아지경에 빠졌을 때라고 합니다. 무아는 내가 없다는 것이고 내가 없으면, 좋고 나쁜 것 또한 없습니다. 그래서 뭔가에 푹 빠져 무아지경이 되면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게 됩니다. 이상태에서 감동받는 것이 쉽습니다. 언제 그런 경험이 있었는지 떠올려 보면 너무 재미있고 행복하게 시간을 보낼 때였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놀이 공원에서 친구들과 놀 때나 아주 재미있는 영화 보거나/글을 읽을 때였습니다. 뭔가에 푹 빠져 있는 순간에 상대를 바꿀 수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입니다.


재미있게 놀고 있는데 갑자기 조언을 하는 것은 흥을 깰 테니 효과적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영화나 글은 스토리 속에 메시지를 추가할 수 있으니 좋은 방법일 수 있습니다. 뛰어난 이야기 꾼이라면 영화/글이 아니더라도 대화를 통해 진정성 있는 이야기 혹은 사례를 말하며 원하는 조언을 섞어 넣을 수 있겠죠. 그런 달변가가 아니라면 글의 힘을 이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우선 재미있는 글을 읽으면 글에 몰입이 됩니다. 감동적인 글은 감동을 말로 설명하지 않고 독자가 감동이라고 느끼게 합니다. 감동의 나레이티브를 해치지 않고 남을 바꿀 수 있는 의미 있는 메시지를 추가하는 건 어떻까요?



남을 감동시키기가 이토록 어렵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어요.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를 좋게 유지하는데 노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한번 더 느낍니다. 아끼는 사람일수록 너무 쉽게 바꾸려는 마음을 갖는 것보다 감동을 느끼도록 나의 열정을 쏟아 보는 것이 어떨까요.


표지사진 출처: @캬냐의 나이로비

매거진의 이전글 이기심이 곧 이타심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