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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경덕 Mar 04. 2019

리셋, 하시겠습니까?



독립하다



집을 나올 땐 배낭 하나와 쇼핑백 하나가 전부였다.  

몇 권의 책과 몇 벌의 옷, 노트북과 세면 도구 정도를 챙겨 고시원 작은 방에 들어갔다. 1.5평 고시원 방에서 3평 하숙집 방으로, 하숙집에서 5평 옥탑방으로, 옥탑방에서 10평 투룸으로 평수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려가며 내 물건을 구입하고, 물건들을 내가 원하는 모양으로 쌓아가는 재미가 있었다. 생활하면서 필요한 물건들, 필요하다 믿은 물건들, 언젠가 필요할 물건들, 필요하진 않지만 저절로 손이 간 물건들이 차곡 차곡 쌓여갔다. 


작년 말에 하던 일을 그만두었다. 아침엔 카페에서 점심에는 학교 급식실에서 투잡을 뛰었고, 퇴근하는 

오후 2시부터 자유 시간을 갖는 생활이었다. 근데 이사를 몇 달 앞두고부터 조금의 시간도 허투로 쓰지 않고, 순도 백프로의 자유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깔끔하게 둘 다 그만두고 백수 생활 세달째인 지금, 생활비는 거의 떨어졌고 월세는 보증금에서 까고 있다. 사회 주택 입주 신청 결과는 다음 달에 나오고, 그 전까진 어디로 가게될 지 알 수 없다. 


집 안에 있는 물건들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들어올땐 참 달콤한 녀석들이었는데 이제 애물단지로 보인다. 여럿이 함께 사는 공유주택에 가게 되면 필요 없는 물건들이 태반이고, 이 물건들을 다 가지고 갈 수 있는 집은, 이제 구하기 힘들다. 문득 떠오르는 장면 하나. 독립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청년 주거 관련해서 최서윤님이 진행한 '내 친구의 자취집은 어디인가' 라는 컨셉의 인터뷰에 인터뷰이로 참여한 적이 있다. 오랜만에 인터뷰 기사를 다시 찾아 보니 이런 내용이 있다.  


- 그는 지금의 삶에 만족하는 편이지만, 점점 원룸으로 옮기고 싶은 마음이 커지고 있다. "조그만 집을 인테리어한 사진을 게시하는 페이스북 페이지가 있는데, 즐겨 찾고 있어요. 나도 원룸을 구하면 이렇게 해야지!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30만원짜리 원룸을 구하는 것이 다음 목표죠. 지금은 고시원이라 항상 이어폰을 이용하는데 스피커를 사서 음악도 듣고 싶고, 벽 한 면을 책으로 빼곡히 채우고 싶어요." 


스피커로 음악도 듣고 서재도 꾸미고 싶은, 이제 막 독립한 청년의 소박한(?) 꿈은 비슷하게 이루어진 것 같다. 심지어 보증금 300에 월세 30으로 투룸에 살고 있으니, 그 때 생각한 것보다 좀 더 가성비 좋은 집을 얻은 셈이다. 사실 이 가격은 같은 건물 옥탑방에 살 때 계약한 금액인데 1층 투룸으로 가격 변동 없이 내려왔다. 지금 사는 지역이 재개발 구역인 덕분(?)이었다. 나 빼고 다른 세대가 모두 이사를 가버려서 텅 빈 건물 꼭대기에 나 혼자 덜렁 놓인 꼴을 본 집주인은, 내가 1층으로 내려오길 바랐다. 그래야 하나 남은 세입자 관리가 편하니까. 그렇게 생각지 못한 기회로 저렴한 가격에 방 두개인 집에서 살게 된 것이다.  


방음이 안 되는 고시원에서 이어폰으로만 음악을 듣고 누구 하나 초대할 수 없는 좁은 방에서 살다가, 텅 빈 건물에 혼자 남겨진 덕분에 누구 눈치 볼 필요 없이 스피커 음악을 크게 틀어 놓고, 친구들을 초대해서 한 끼 식사도 같이 할 수 있는 생활을 하고 있다. 방 하나는 모임 공간으로 꾸며서 매 주 독서, 글쓰기 같은 커뮤니티 모임도 한다. 벽 한 면을 책으로 빼곡히 채우고 싶었던 바람도 이루어졌다. 네 개의 5단 책장이 나란히 서있는 벽 한쪽 뿐만 아니라 구석 구석에 책이 쌓여 있고, 침실에도 이불을 덥는 잠자리 주위에 책무덤이 군데 군데 올라와 있다. 한 권의 책을 진득하게 읽지 못하고 그날 그날 눈길을 끄는 주제에 혹해서 뭔가에 홀린듯 책을 결제하는 병적인 증상 때문이었다. 집에 오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묻곤 했다. "저 책 다 읽으셨어요?" 그럼 난 내 심각한 병증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을 하는 대신 민망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그럴리가요." "읽히길 기다리는 가여운 책들이죠." 하고 답할 뿐이었다.   


물건들도 꽤 쌓였다. 지난 겨울에는 욕조가 없는 화장실이 아쉬워 쇼핑몰에서 플라스틱으로 된 이동식 반신 욕조를 샀다. 작은 화장실에도 들어갈 수 있는 아담한 사이즈였다. 몸을 쭈욱 다 펼 수는 없지만, 다리를 굽히고 몸을 웅크리면 머리 끝까지 물 속에 쏘옥 잠기는 가성비 좋은 욕조였다. 따뜻한 물 속에서 몸을 다소곳이 웅크리고 있으면 흡사, 자궁 속에 잠긴 태아가 이런 기분일까, 하는 생각도 든다. 추울 땐 며칠에 한 번씩 온탕을 만들어 그렇게 몸을 녹였다. 


옵션이 세탁기만 있는 집이어서 냉장고는 중고로 샀다. 밥솥도 사고, 전기레인지도 사고, 옷장이 없어 행거도 샀다. 대부분 저렴하거나, 아주 저렴한 가격의 상품 중에 사용후기가 나쁘지 않은 것을 골랐다. 접시, 밥그릇, 도마, 칼 등의 주방 용품은 대부분 메이드 인 다이소였다. 최저가와 가성비로 채워진 살림들이지만 내 일정한 생활 루틴을 거들어주고 하루의 생체 리듬을 유지해주는 데는 부족함이 없었다.  

사회가 요구하는 어떤 품격 대신, 1인 가구의 지속가능한 생존에 맞춰진 선택들이었다.  




 




리셋, 이후



부모님 이야기를 해야겠다.  

엄마, 아빠는 이십대에 결혼해서 방 두개짜리 집에 살았다. 한 쪽 방에서 부부가 지내고, 다른 방에서는 시골에서 올라온 할머니와 큰아버지가 지냈다. 당시에는 돈을 벌기 위해 시골에서 도시로 상경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연고가 닿는 대로 같이 살거나 얹혀 살곤 했다. 그 때의 분위기를 생각하면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다 엄마, 아빠는 저렴한 가격으로 나온 인근 주택을 사서 새로운 신혼 집을 얻었다. 마당에 강아지 한 마리를 키웠고 작은 화단이 있던 기억도 난다. 한 시기에는 너도 나도 연립주택을 새로 짓는 분위기가 동네를 휩쓸었다. 엄마, 아빠도 원래 살던 집을 허물고 3층짜리 연립주택을 지었다. 집을 짓는 동안 근처에 작은 원룸을 얻어 네 식구가 몇 달동안 지내기도 했다.    


식구는 새로 지은 주택 3층에서 살다가 내가 중학교에 입학할 때 집을 전세로 내놓고 학교 근처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전세집이었지만 처음으로 아파트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방이 세개 있었고 거실 한쪽에는 쇼파를, 마주보는 벽에는 텔레비전을 설치했다. 나와 동생은 각자의 방이 생겼고, 침대도 하나씩 두었다. 무슨 동, 몇 번지로 부르는 주소에서, 무슨 아파트, 몇 동, 몇 호라는 주소가 점점 익숙해졌다. 거기서 몇 년 살다가 엄마, 아빠는 인근 동네에 새로 지은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마침내 아파트 내집 마련에 성공한 것이다. 경기 호황 시기, 아빠의 쉼 없는 풀타임 노동, 부동산 정책, 은행 대출, 엄마의 부동산 제테크 감각 등이 한 가족의 내집 마련 프로젝트에 기여한 요소들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 엄마, 아빠 소유가 된 아파트로 이사를 했고 12년을 주욱 거기서 살았다. 그러다 스물 여덟 어느 날, 난 고시원으로 독립했다. 


엄마, 아빠가 청년 시기에 꿈꾸고 몇 십년에 걸쳐 열심히 노력하고 성취한 것들 덕분에, 나는 노인 빈곤율이 심각한 한국 사회에서도 부모님의 노후 경제를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근데 나는 엄마 아빠가 그 당시의 경제 논리로 일궈온 것들을 가질 수 없고, 그럴 의지도 딱히 없다. 정년까지의 풀타임 노동, 장기적인 제테크 계획, 정상 가족 만들기 등의 근대적 가치가 내 안에 너무도 없고, 난 딱 내 앞가림하는 정도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 불황에, 은행 도움도, 부동산 제테크 감각도 없지만 1.5평에서 10평의 공간으로 평수를 키우며, 내 집은 아니더라도 나만의 공간에 내 물건을 하나씩 들이는 달콤한 기분을 속성으로 경험했다.  


근데 이제 더이상 물건을 증식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소유의 증식은 단계를 지날수록 난이도가 높여보였다. 그 벽을 뚫기엔 난 너무도 일하기 싫어하는 한량이었다. 그럴 바엔 싹 비우고 싶어졌다. 돈도 없는데 잘 됐다. 몽땅 팔아야지. 책만 중고로 팔아도 몇 백만원은 될 것이다. 에리히 프롬은 소유나 존재냐 라는 책에서 인간의 생존양식을 재산·지식·사회적 지위·권력 등의 소유에 전념하는 「소유양식」과 자기능력을 능동적으로 발휘하며 삶의 희열을 확신하는 「존재양식」으로 구별했다, 고 출판사 책 소개에 적혀있다. 너무 예전에 읽어서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소유와 존재의 조화로운 균형을 어떻게 이룰 수 있을지를 다시 고민하게 된다. 가지기 어려운 것들, 가져도 언젠가 골치아파질 것들을 소유하는 능력 말고 좀 더 산뜻한 능력을 어떻게 기를 수 있을까. 최서윤님과 진행했던 인터뷰 말미에 이런 내용이 있다.  


- 경덕씨는 앞으로 살면서 지속적으로 하고 싶은 게 무엇일지 탐구하고, 글을 쓰고, 공부하려고 한다. 그러기 위해 좋은 관계를 맺고 싶다. 사람이 무언가를 욕망하고 행동하게 될 때는 사람 사이에 있을 때고, 어떤 행동을 하는가도 어떤 사람들과 어울리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고 그는 생각한다. (중략) 다만 학교, 회사, 종교 등 기존의 제도에 편입되지 않고 혼자 사는 프리터가 어떻게 좋은 관계를 맺고 사람과 어울릴 수 있을까? 그가 고민하는 지점이다. 


뭔가 되게 고상하게 말한 걸 인터뷰어가 포장도 잘 해주셔서 지금 보니 엄청 민망하다. 점잖게 말 할줄 아는 스물 아홉 청년이었구나 싶다. 여전히 답을 내리진 못하지만 그 고민을 지금까지 놓지 않고 있는 건 다행스런 일이다. 정해진 것 하나 없이 은행 잔고는 착실히도 줄어든다. 다음달에 어디서 살게 될지, 앞으로 어떻게 돈을 벌지, 새로운 어울림을 어떻게 만들어갈지 아직 확실치 않지만, 지금까지 쌓아온 물건들은 정리가 좀 필요해 보인다. 재부팅 버튼을 꾸욱 누르고 싶다. 소원을 이루어주는 요정이 나타나서 리셋, 하시겠습니까? 라고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네, 하고 답하고, 중고로 팔아서 현금도 최대한 남겨주시고요, 라고 덧붙일 것 같다. 


여전히 풀타임 노동자가 되긴 싫고, 부를 증식하는 제테크 기술도 없고, 당장 혈연 가족을 만들고 싶은 생각도 없다. 이런 지금의 내가 인터뷰 당시 고민했던 지점을, 다시 고민해본다. 학교, 회사, 종교 등 기존의 제도 밖에서 맺을 수 있는 관계에 대해서. 새로운 어울림에 대해서. 덜 소유하고, 더 존재하는 양식에 대해서.  

  

리셋, 이후의 삶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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