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 먼지 흩날리는 요즘, 성수대교 위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마치 누군가 블러 효과를 넣은 듯 뿌옇다. 건너편으로 보이는 영동대교는 실루엣만 남아 하나의 선분처럼 허공에 떠있고, 좀 더 떨어진 곳에 있는 롯데타워는 건물 조명이 반짝일 때만 간신히 그 존재를 가늠할 수 있다.
마스크를 쓰고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다리 위로 올라간다. 6시 출근할 땐 아직 해가 뜨기 전이라 어둑 어둑하다. 이른 아침부터 어딘가로 향하는 자동차들이 많다. 유유히 흐르는 강 위의 도로에는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 소리가 허공을 매우고, 가로등과 전조등이 교차하며 도로를 밝힌다. 자동차 소음을 뚫고, 인공 조명에 의지하여 다리를 건넌다. 차도 옆에 붙어 있는 자전거, 보행자 도로 위를 엉금 엉금 지나가는 사람은 나 뿐이다. 소리를 힘껏 질러본다. 사방이 뚫려있지만 노래방보다 방음이 잘 되기 때문에 눈치 볼 것 없이 노래를 부른다. 괴상한 소리를 내보기도 한다. 아무리 큰 소리를 내어도 강 바람과 자동차 소음에 묻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출근길에 즐기는 자연 방음 장치는 코인 노래방 이상으로 쏠쏠하다.
퇴근길엔 수면 위로 올라온 태양이 낱게 세상을 비추고 있다. 일곱시 사십분 쯤, 다시 성수대교 위로 올라오면 비슷한 지점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이 있다. 싸이클 복장을 완벽히 갖추고 오토바이 타듯 핸들을 넓게 잡고 반대편에서 달려오는 아저씨, 다리를 반 쯤 지날 때 머플러를 휘날리며 바구니 달린 자전거를 타고 오는 아주머니, 두 분이 주인공이다. 아저씨는 복장에 어울리는 진지한 포즈를 취하며 지나가고, 아주머니는 아침 마실을 나온 듯한 표정으로 사뿐 사뿐 페달을 밟는다. 그 분들이 어디를 가는지는 모르지만 그 찰나의 마주침이 반복될수록 그 시간, 그 장소에서의 은근한 연결감이 만들어진다. 성수대교 위에서 우연히 만들어진 아침 공동체는 미세먼지 속에서도 무언의 안부 인사를 주고 받는다.
다리를 지나 서울숲 사거리 건널목에서 멈추면, 반대편에 신호를 기다리는 등교길 학생들이 보인다. 초록불이 들어와 한 무리의 학생들이 지나가고, 건널목을 건너 응봉교에 진입하면 지각생 무리들이 등장한다. 걸음을 재촉하는 학생1, 헐레벌떡 뛰어가는 학생2, 킥보드를 타고 열심히 달음질하는 학생3 등,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분초를 다투는 학생들이다. 그리고 얼마 후, 그 분들이 등장한다. 등교 시간 따위엔 연연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어기적 어기적 걸어 오는 그 분들은, '내가 도착하는 시간이 곧 등교 시간이로다' 하는 아우라를 풍기며 규율에 매이지 않는 열반의 경지를 몸소 보여준다. 교문을 지나 교실문을 열고 들어가는 모습까지 엿보고 싶지만, 그저 상상에 맡길 뿐이다.
집에 도착하여 현관 앞에 자전거를 세운다. 온 몸으로 먼지를 가르고 왔기 때문에 머리부터 발 끝까지 한바탕 털어주고, 집에 들어간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여섯시부터 여덟시까지 오늘과 같은 아침을 반복한다. 시간과 장소의 반복은 건강한 리듬을 만들어준다. 아침 기도를 드리듯, 아침 예불을 드리듯 자전거를 타고, 다리를 건너고, 사람들을 마주친다. 우연히 맺어진 아침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
오늘과 같지만, 오늘과 같지 않은 아침을 또 맞이한다. 아침의 존재들과 그 날의 안부를 나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