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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경덕 Jun 11. 2018

젖 떼기

나를 먹인 것은 누굴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출생 이전으로 가보자. 엄마 자궁 속에 거꾸로 잠겨 있는 태아가 보인다. 태아는 탯줄을 통해 모체의 산소와 영양소를 받는다.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헤맬 필요도, 장을 보고 요리를 하고 상을 차릴 필요도, 숟가락질 젓가락질을 할 필요도 없다. 그저 엄마의 몸에 연결되어 있는 것만으로 저절로 살아진다. 먹는 노력은 엄마의 몫이다.

이보다 더 안락할 수 없는 자궁 유토피아 속에서 태아는 무럭무럭 자란다. 출생을 앞두고는 무의식적으로 자기 엄지를 빨며 젖 빠는 연습을 한다. 자기도 왜 그런지 모르고 본능이 시키는 동작을 반복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자궁 밖으로 미끌어져 나온다. 탯줄이 끊긴 아기는 이제 저절로 살아질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엄마 젖을 찾는다. 이제 자기 엄지가 아닌 엄마 젖을 빨기 시작한다. 

탯줄은 끊겼지만, 아기의 생명은 엄마의 젖과 연결된다. 더이상 저절로 영양분이 공급되지 않기에 아기와 엄마의 교감이 절실하다. 아기는 울고 엄마는 젖을 물린다. 아기가 먹고 싶어 할 때마다 젖을 물린다. 위가 작은 아기는 2-3시간 간격으로 젖을 찾으며 울고, 먹고, 자고, 깨고를 반복한다. 엄마는 밤낮 없이 수유를 하며 수면 부족에 시달리고, 수유가 잘 되지 않아 젖몸살에 시달리기도 하지만, 배고픈 아기는 아랑곳 없이 울며 불며 젖을 찾는다. 

젖을 떼고 아이 스스로 밥을 먹는 날이 와도, 엄마는 여전히 아이를 먹인다. 아침에 먼저 일어나 밥을 하고, 상을 차린다. 쉽게 못 일어나는 아이를 반복해서 깨우고 식탁 앞에 앉힌다. 식사 후에는 널부러진 상을 정리하고 식탁 위에 떨어진 국물을 닦고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한다. 남은 반찬을 냉장고에 넣고 설거지를 하고 행주를 빤다. 다음 상 차림을 생각하며 식단을 짜고 장을 보고 식재료를 다듬는다.

젖 물림은 1년만에 끝나지만, 상 차림은 계속 된다. 둘째가 태어나고, 젖 물림과 상차림이 겹치면 엄마의 노동 강도는 상상 이상으로 치솟는다. 

아이들이 자라서 독립을 한다. 엄마의 젖을 먹고, 상차림을 받은 덕분에 아이들은 무사하다. 엄마도 수십년간 잘 견디었다. 다만 몸이 많이 상했다. 한쪽 손목을 잘 못쓰게 되었고, 뼈마디가 시리고, 만성 허리 통증에 시달린다. 누군가를 먹이는 데 수십년을 쏟아 붓느라 사회 경력은 단절된지 오래다.

아이는 잘 컸고, 엄마는 남겨졌다. 수십년 동안 지속된 고강도 무급 노동에 엄마의 삶은 여기 저기 상처 투성이다. 다른 가능성을 볼 여유가 없었다. 이제 이전처럼 누굴 먹일 필요는 없지만 당분간은 자유롭기보다 혼란스럽다. 오랜 기간 다른 누군가를 먹여왔던 몸은 쉽게 스스로를 놓아주기 어렵다. 부엌 밖이 낯설고 두렵다. 

이제 엄마 역할을 나눠야 한다. 누군가 대신 젖을 물릴 순 없어도 젖 물리는 엄마가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 순 있다. 작년 호주 여성 국회의원이 회의장에서 모유 수유를 하며 연설을 하고 박수를 받은 것처럼, 일 하는 곳에서도 눈치 안 보고 아이를 먹일 수 있다면 좋은 환경이다. 엄마에게도 엄마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퍼지고 서로가 서로를 기르는 문화가 만들어진다면 좋은 환경이다. 엄마와 아이가 환대받는 'YES KID' 공간이 많아진다면 좋은 환경이다. 

엄마는 할 만큼 했다. 이제 모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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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집에 가면 엄마는 여전히 상을 차린다. 팔목에 보호대를 차고 있다. 의사가 핸드폰도 무거울 수 있으니 가벼운 케이스로 바꾸라고 했단다. 이제 독립해서 스스로 밥을 차리는 아이는 엄마의 상차림을 서서히 알아간다. 반찬 하나 하나의 차림이 궁금하고, 육수는 어떻게 내는지, 베란다에 한 가득 매달려 있는 햇마늘은 어떻게 다듬어 관리하는지 물어본다. 엄마는 별스럽다는 표정이지만 아이와의 새로운 공감대가 생기는 것이 싫지 않다. 밥을 먹고 상을 치우고, 아이는 설거지를 자처한다. 부엌에서 나를 먹인 사람을 다시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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