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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경덕 Jun 18. 2018

도시와 시골 사이

재미농장에 다녀왔다. 재미농장은 귀농 2년차 30대 부부인 신범과 키르케가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는 시골집이다. 두 사람은 도시에서 직장에 다니다가 일을 그만두는 시점에 우프(WWOOF : 농장 일을 거들어주고 숙식을 제공받는 것)로 유럽 여행을 다녀왔고, 이후에 양평으로 귀농해서 농사를 짓고 있다. 그리고 2018년 봄, 재미농장은 마르쉐와 함께 농가 체험 프로그램을 기획해서 사람들을 모집했다. 나도 신청해서 참여하고 있고 지난 4월에 첫 모임을 가졌다. 두 달에 한 번씩 모여 농사 일을 거들고, 같이 밥 먹고 이야기 나누며 노는 자리다. 


이번 6월 모임에 참여하기 위해 토요일 이른 아침에 일어났다. 양평에 있는 재미농장은 원덕역에서 10km정도 떨어져 있다. 보통 참여하는 분들은 역 앞에 모여 같이 자동차를 타고 이동한다. 근데 늑장을 부리다 간발의 차로 약속 시간에 도착하는 지하철을 놓치게 되었다. 지하철 시간표를 확인해보니 양평까지 가는 다음 지하철은 40분이나 지나서 온다. 카톡으로 참여하는 분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농장으로 바로 가겠다고 말했다. 원래는 왕십리역까지만 타고 가려던 자전거를 지하철 안까지 갖고 들어왔다. 원덕역까지 가지고 가서 농가까지 타고가려는 생각이었다.
 
지각때문에 죄송한 마음도 들었지만, 자전거를 타고 가는 시골길이 은근히 기대 됐다. 그런 생각을 해낸 스스로의 임기응변이 기특하기도 했다. 이런 저런 기분으로 계단에 앉아 기다리는데 용문행 지하철이 도착했다. 자전거 거치 장소가 있는 맨 앞 칸에 탔다.  


한 시간 좀 넘게 걸려 원덕역에 도착했고 바로 자전거를 타고 농가로 출발했다. 예상대로 꼬불 꼬불 시골길을 자전거로 타고 가는 경험은 꽤 낭만적이었다. 도심 속의 주행과는 다르게 공기는 상쾌하고 풍경은 그림같았다. 내리막길에서 온 몸으로 시골 바람을 가르며 내려가는데 영화 리틀포레스트 첫 장면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렇게 10분 정도 영화 속 주인공이 된 좋은 기분을 만끽했고, 이후부터는 햇빛이 너무 뜨겁고 '생각보다 멀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얼른 도착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중간 중간 지도를 보고 가느라 조금 늦어졌고 40분 정도 걸려 무사히 도착했다. 땀이 삐질 삐질 흘러내렸다.



오늘은 수확철 작물인 감자와 마늘을 캤다. 알맹이가 다치지 않게 호미로 흙을 살살 긁어내고 손으로 나머지 부분을 파서 깊게 묻혀 있는 것들을 건져 올렸다. 감자는 땅 속에서 덩이 줄기로 여기 저기 뻗어 있어, 파는 곳마다 크기도 다르고 수확량도 다르다. 어디서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깊고 넓게 파야 했다. 가끔 뜬금없이 옆으로 뚫린 구멍이 발견되기도 하는데 두더지가 지나간 흔적이라고 했다.  곳곳에 솟아있는 잡초도 벴다.

어느 방송국 촬영팀도 와서 활동하는 모습을 찍었다. 신범과 키르케가 쓴 책 '우리가 농부로 살 수 있을까' 를 보고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1시간 정도 일하고 점심을 먹었다. 각자 가져온 반찬을 한 곳에 모아 작은 뷔페를 만들었고 각자 먹을 만큼 그릇에 담았다. 신범이 직접 만든 막걸리를 가져와서 술 한 잔 마시며 식사를 했다. 



밥 먹고 나머지 작업을 마무리한 후에 다시 집으로 들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번에는 키르케가 직접 만든 양갱을 내놓았다. 식품 가공 수업을 받으면서 연마했다고 했다. 호두가 들어 있어 오독 오독 씹히는 게 더 맛있었다. 막걸리도 다시 등장했다. 일하고 먹으니 더 잘 들어갔다. 알콜 섭취에 점점 눈이 무거워질 때 즈음, 산책을 하며 술을 깼다. 옥상에 올라가 바람도 쑀다. 해가 뉘엿 뉘엿 지고 논밭 위에 낮게 깔린 석양을 보는데 새삼 '참 좋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집으로 들어가려는데 방송국에서 촬영하러 온 분이 나를 잡아 끌었다. 능숙하게 내 옷에 핀 마이크를 채우셨고, 정신 차려보니 카메라 앞에서 서 있었다. 얼떨결에 인터뷰이가 되었고, 물 흐르듯 사람을 낚아 인터뷰를 진행하는 솜씨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먹걸리 취기가 남아 있었는지 묻는 질문에 횡설수설 답했다. 기억나는 질문은 '농부와 함께 사는 삶은 어떤 걸까요?' 였다. 집 안에서 사람들하고 이야기 나누다 나온 주제이기도 했다. 도시에서의 삶, 시골에서의 삶 외에 '농부와 함께 사는 삶'에 대한 질문이었다.



'도시 생활이나 시골 생활에 대한 고정된 이미지가 있는 것 같아요. 도시의 각박함, 시골의 인정 넘침 같은 이미지로 인해 낭만화된 귀농, 귀촌 생활이 유통되기도 합니다. 도시냐 시골이냐, 라는 편협한 질문보다는 도시에서 시골처럼, 시골에서 도시처럼 살 수 있을까? 도시와 시골 사이에서 만들어질 수 있는 다양한 삶의 양식은 어떤 모습일까? 같은 열린 질문일 때, 각자가 뿌리 내린 자리에서 다양한 가능성을 만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농부와 함께 사는 삶'이란 지금 어디에서 살고 있든, 내가 지금 먹는 것이 어떤 과정을 거쳐 내 밥상까지 오게 되었는지를 생각해보는 것이고, 시골 땅에서 직접 작물을 재배하는 농부와 어떤 식으로든(농활 가기, 농부 친구 사귀기,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하기)관계를 맺는 것이고, 작게나마 베란다, 옥상, 마당에 텃밭을 직접 가꾸면서 식품의 생산, 유통, 가공 전 과정 참여해 보는 것 등 다양한 형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정도의 답변이 머리 속에 있었는데 입 밖으로 나올 때는 여기 저기 엉킨 체로 제 멋대로 나왔다. 인터뷰 끝나고 멘트가 영 아니면 편집하시라고 말했다. 



다섯시쯤 일정이 다 끝났다. 다음 모임은 8월이고 그 땐 농장에서 1박으로 진행될 예정이어서 좀 더 여유 있게 머물 수 있을 것 같다.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자전거를 다시 탔다. 돌아가는 길은 한결 여유 있어 남한강변을 타고 양평역 방향으로 갔다. 중간에 길게 이어진 오르막 구간에서 ‘내가 미쳤지. 왔던 길로 안가고..’ 하고 생각하다가, 내리막길에서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맞는 시골바람의 청량함에 피로가 날아갔다. 양평역 카페에서 더위를 좀 식히다가 일곱시 문산행 지하철을 타고 집에 무사히 도착했다. 도시는 이미 저물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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