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주도 이런 마음일까?

by 가릉빈가

사람으로 태어난 내가 이런 말을 하긴 뭐 하지만 지구에서 없어져야 할 생물체를 선택해야만 한다면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사람을 가리킬 것이다.


아무리 봐도 온 만물 중에서 사람보다 민폐를 끼치는 존재는 없는 것 같다.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고통을 겪는 이 상황에서 인도가 국가봉쇄령을 내린 후에 대기질이 개선되어 뉴델리에서 맨 눈으로 히말라야를 볼 수 있다는 기사를 작년에 접했을 때도 '역시 사람이 문제구만'이란 생각도 함께 들었다. 30년 간 스모그로 인하여 뿌연 대기로 인해 하늘이 파랗다는 것도 잊을 정도인 그 극악의 대기가 사람이 코로나19로 부득이하게 멈추자마자 하늘의 푸름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참 씁쓸한 대목이지 않을 수 없다.


거기다가 또 얼마나 범죄는 잘 저리는지 괜히 귀신보다 무서운 게 사람이라고 했겠나. 흉악범죄나 아동학대, 동물학대와 같은 기사를 접할 때에는 환멸을 느끼다 못해 절망감도 함께 든다. 아... 금수보다 못하다는 소리는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고.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지만 영장으로서 제대로 역할 수행을 하고 있는지는 궁금할 따름이다.


그래서 항상 도대체 창조주(신)은 '왜 사람을 만들어 이대로 내버려 두는 걸까?'란 생각을 했었다. 이런 존재는 그냥 갈아 엎어버려도 하등 문제가 되지 않을 듯도 싶은데 꾸역꾸역 그것을 지켜보고 계신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을 때도 있었다. 성경에서도 보면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하고, 그 마음이 악할 뿐이라 사람을 창조한 것을 한탄한 구절도 있다. 그래! 그런 맘이 안 들면 이상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 기회를 주는 걸까 싶은데... 내가 요즘 며칠 전부터 하기 시작한 게임으로 다소 알 듯도 싶고 그렇다.


그 게임은 힐링 게임이란 명목 하에 고양이를 키우며 그 세상을 넓혀 나간다. 하나의 고양이를 시작으로 영토를 넓혀 나간다. 시작은 미약하나 그 끝은 창대하다고 하나의 고양이와 조그마한 땅으로 시작했는데 어느새 꽤 넓어졌다. 꽃밭도 있고, 원두막도 있고, 계곡도 있고, 음식점도 있다. 심지어 온천도 있다. 지금은 사원을 만들기 위하여 열심히 금화를 모으는 중이다.


앞서 말했지만 힐링 게임이고. 방치형 게임이다. 줄창 붙잡고 하는 게임은 절대로 아니다. 그러려고 만든 게임은 아무리 봐도 아닌데 어느새 그 게임의 목적성과는 다르게 붙들고 있더라. 왜냐하면 고양이한테 더 좋은 걸 주고 싶어서다. 물론 그 게임 속 고양이는 실존하지는 않지만 혼자 있는 고양이가 내 맘엔 하도 쓸쓸하고 외로울 듯하여 다른 고양이를 초대했고, 땅이 좁으니 답답할 듯하여 땅을 넓혔다. 땅이 넓은데 단 둘만 있기엔 쓸쓸할 듯도 하여 또 다른 고양이를 초대했고, 이왕이면 꽃밭도 있는 게 좋겠다 싶어 꽃밭도 만들고, 계곡이 있으면 더 좋을까 싶어서 계곡도 만들고. 고양이들이 이러면 더 좋지 않을까, 이러면 더 맘껏 뛰어 놀겠지? 이러면 덜 심심하려나? 하는 마음에 계속 붙잡으면서 금화를 모으고, 그 애들을 레벨 업 시키고 있다. 또 그 고양이들을 조금 꾸밀 수가 있는데 이왕이면 예쁜 게 좋지 않겠냔 생각에 모자도 씌어주고, 목걸이도 걸어주고, 가방도 달아줬다. 그러고 있자니 성경에서 나오듯 '보기에 좋았더라'.


이를 테면 나는 그 게임의 창조주인 셈이다. 내가 굳이 고양이가 혼자 있어서 외롭든 말든 관계가 없다면 그 세계는 거기서 끝이다. 굳이 열심히 광고를 보며 금화를 모아 온천을 만들어줄 필요는 없다. 조그마한 영토에 혼자 고양이를 내버려 둔다고 해도 그 고양이는 나에게 원망하지 않을 것이다. 거기서 자족하겠지. 근데 내 맘이 그러하지 않아서 결국 방치형 게임을 몰입형 게임처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창조주도 이런 마음으로 굽어 살피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 다양한 고양이들이 전부 행동을 달리 하는데 그릇 나르다가 넘어지는 것 보면 "아이코!"하고 무심코 소리를 낸다. 난 시킨 적도 없건만 온천에서 양머리한 채로 몸 담그고 있는 고양이를 보니 어이없는 실소도 흐른다. 이런 마음으로 창조주도 사람을 보고 있는 게 아닐까. 물론 이 게임 속 고양이들은 사람처럼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나쁜 짓 하나 안 하나는 그저 예쁘고 귀엽기에 온전히 비교대상이 되는 건 어렵긴 하지만, 그래도 창조주도 이렇게 보고 있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창조주도 스스로 만들었고, 또한 일구고 있다. 창조주도 사람이 도구를 다루기 시작하거나 불을 사용했을 때, 언어를 만드는 모습을 보며 나름 흐뭇해하며 바라보지 않았을까. 물론 하늘에 닿자고 바벨탑을 쌓는 사람을 보며 진노도 하시지만, 필요할 땐 기도하며 도와달라 하고, 풍족해지면 내박치는 사람을 보며 한탄도 하시지만 여전히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고 계신 건지도 모른다. 내가 이 고양이들을 바라 보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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