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과의 만남은 계획적이지 않다
나는 내가 동물을 키울 것이란 생각을 못했다. 어린 시절에 강아지를 키우자고 부모님께 말한 적은 몇 번 있었으나 그냥 지나가는 말로 한 것이지 정말 간절하게 키우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아주 조금 더 나이를 먹은 후에는 동물을 키울 때의 책임감과 그 수고로움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내가 키울 맘도 딱히 있지 않았다. 친구들 강아지가 귀엽고 예뻤으나 거기까지였다.
무엇보다도 우리 집에서 부모님이 강아지를 키우도록 허락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작은 외삼촌이 억지로 떠맡긴 10살 푸들이 우리 가족에겐 상당한 트라우마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름은 '애니'였다. 아닌 밤 중에 홍두깨마냥 키우게 된 애니와 살았던 건 몇 달 되지 않는다. 엄마는 그 때 이야기를 하면 그 당시엔 강아지를 키울 상황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고 한다. 어린 자식들을 보살피기도 바쁜 와중에 딱히 동물을 좋아하지도 않고, 싫어하지도 않은 우리 엄마가 갑자기 자기 남동생이 찾아와서 "누나, 잘 키워 줘!"란 한마디를 남기고 떠나버렸으니... 지금 생각하면 약간 혹은 꽤 깊은 빡침도 존재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나도 그 어린 시절에 기억한 것이 애니는 항상 대변을 엄마가 설거지 할 때 서 있는 그 위치에다가 싸곤 했는데 엄마에겐 엄청난 스트레스로 작용했다. 엄마가 그래서 몇 번이나 소리친 걸 기억한다. 그리고 나중에 들어서 알았지만 밤이 되면 같이 자고 싶어서 낑낑거리는 소리를 내서 결국 같이 자곤 했단다. 어쨌든 나는 어린 시절에 나대로 놀기 바빴기 때문에 애니의 기억이 많지는 않다. 다만 몇 가지 기억하는 것 중 하나는 우리 집에 왔을 때는 이미 임신한 상태였다는 것이다. 엄마는 그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어서 뒷목 잡을 뻔했단다. 산달이 가까워지고 급하게 집에서 새끼를 출산해야 했는데 3마리를 낳았는데 2마리는 그 자리에서 떠났고, 나머지 한마리는 하루를 버티다가 떠났는데... 그 숨이 붙어있는 한마리를 어떻게든 살리려고 핥고 또 핥았던 애니의 모습이 내 기억에 또렷하게 남아있다.
그 일이 있은 후에 노령견에 우리가 케어하기에는 건강상태가 너무 나빠져서 작은 외삼촌이 다시 데리고 갔는데 엄마가 애니 떠나는 날에 하루 종일 울고 또 울었단다. 나중에 애니 소식을 듣고는 마음 아파서 한동안 정말 힘들었다고. 아무튼 우리 집은 그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강아지를 키울 리가 없었고, 무엇보다도 애니 생각에 푸들은 약간 금단의 영역이었고, 사실 지금도 그러하다.
그래서 한 번은 고양이를 키우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한 적이 있었는데, 엄마는 "고양이는 요물이야! 고양이는 키울 것이 못 된다!"라고 정말 일언지하에 거절하셨기 때문에 고양이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하고 그냥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어차피 동물을 키우는 것에 간절한 적은 없으니 상관 없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어느 날, 우리 엄마는 나를 보더니 "고양이 데리러 가자!"라고 하셨다. 난 맨처음에 농담인 줄 알고 엄마를 물끄러미 쳐다보고만 말았는데 "나가게 채비해~ 오늘 데리러 갈 거야"라는 말에 진짜임을 깨달았다. 내가 엄마랑 고양이를 데리러 가는 동안 옆에서 계속 "고양이라니? 강아지가 아니고? 고양이 요물이라며? 키울 게 못 된다며? 엄마, 동물은 그냥 키우는 거 아냐, 한 번 키우면 죽을 때까지 키워야 해, 책임감이 많이 필요해, 함부로 결정할 문제가 아냐, 잘 생각해야 해, 돈도 많이 들어, 엄마 농담이지? 진짜 이거 함부로 키운다 할 게 아니라니까, 진짜 키울 거야?" 라고 쫑알쫑알 거렸다.
엄마는 항상 마음에 염두에 두고 있던 일이라 답했다. 내가 예전에 고양이 키우자고 했던 걸 기억한다고 했다. 자신은 자식이 한 말을 다 맘에 두고 있다고. 실행이 늦을 뿐이라며. 정작 고양이 키우자고 한 나는 기억도 못하고, 관심도 없는 상태인데 엄마는 내가 과거에 딱 한 번 한 말을 빌미로 생뚱맞게 정말 인생에서 있을 수 없다 생각한 고양이를 우리 집에서 키우게 됐다. 페르시안 친칠라 실버 '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