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리웃 액션과 지랄맞다의 의미를 인지하다
"강아지가 있어!"
마트를 갔다온 엄마가 나를 보자마자 한 첫마디였다. 그 말에 머릿 속에 물음표만 띄운 채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으니까 엄마가 약간 다급한 어조로 또 다시 반복했다. 강아지가 있어!
뭔 소리인가 했더니 엄마가 간 마트에는 동물병원도 함께 있는데, 별이 물건 사러 동물병원 들렀다가 거기에 따로 철장에 갇혀진 새끼 강아지가 있었단다. 근데 그 강아지가 정말 소리도 내지 않은 채 뒷발로 서서는 엄마를 향해서 연신 앞발로 움직여댔단다. 정말 소리 하나 없이 그 짧은 꼬리를 흔들면서 연신 엄마만을 향해서 짧은 앞발을 움직였다고. 그 모습을 보고서 왔단다.
"..................(5초 뇌정지) 설마... 데려오자고?"
"아니 꼭 그런 건 아니고 너도 한 번 보면 어떨까 싶은 거지. 지금 갈래?"
"...................(5초 뇌정지) 일...단... 가... 봐...요..."
난 거의 무념무상인 상태로 엄마의 뒤를 따랐다. 사실 이미 결정났다고 생각했다. 강아지를 데려오겠구나. 엄마가 이렇게 행동할 때는 사실상 엄마는 하고 싶은 상태이기 때문에 결국 응해드리는 게 가장 깔끔한 방법이다. 홈쇼핑에서 어떤 물건을 보고서 사고 싶은데 약간 좀 애매하면 나한테 막 이야기를 하신다. 얼마짜리인데 이거 사면 이리 괜찮고, 저리 괜찮고, 요리 보고, 조리 보고 좋지 않냐고. 내 생각엔 아무리 봐도 쓸모가 없을 것 같으면 돈이 많고 적고를 둘째치고 우리 집엔 안 쓸 것 같다고 솔직히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 엄마가 그렇냐고 수긍을 하고선 조금 있다가 '근데 그래도 그거 사면 괜찮지 않을까?' 하고 다시 물으신다. 그래서 나는 그럴 때면 그냥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곱다고, 버리든 쓰든 써 보면 최소한 품평회는 할 수 있고, 맘에 여한은 안 남을 테니까 그냥 사요.'라고 하면 엄마는 눈을 반짝이며 주문하신다. 내가 그걸 알고 있기 때문에 군말 없이 따라가긴 했는데 솔직히 나는 강아지가 살짝 거북했다. 애니의 리바이벌이 될 것 같은 느낌에 달갑지 않았다.
동물병원에 가니 엄마 말대로 혼자서 따로 철장에 갇혀 있는 강아지가 있는데, 다행히 푸들은 아니고 말티즈였다. 거기서 일단 살짝 안도가 됐다. 그 애가 엄마를 보자마자 엄마 말대로 뒷발로 선 채 앞발로 앙증맞게도 계속 반갑다고 움직이는 것이다. 동물병원에 여러 사람이 있었는데 정확히 엄마한테만 그런다. 엄마가 자기 말이 맞지 않냐고, 애가 참 착하고 소리도 없이 예쁘다고 흐뭇하게 보신다. 내가 엄마 옆에 서니 그 애가 날 힐끔 보더니 또 날 향해서 엄마한테 하듯 똑같이 군다. 우리 모녀에게만 정신없이 환영인사를 퍼붓고 있는데 사실 나도 꿈뻑 넘어갔다.
알고 보니 애가 장이 약한 편이라 설사를 해서 상태를 지켜보느라 따로 빼놓은 것이란다. 새끼 때 이러면 곧 죽을 공산이 크다는 수의사의 말에 엄마는 이런 애를 누가 데려가겠냐며 우리가 데려가는 게 좋지 않겠냐 했고 나는 이미 반포기 상태이기도 했고, 그 애의 예쁜 짓에 어느 정도 넘어간 터라 손가락으로 오케이 표시를 했다. 그 자리에서 '하늘'이라고 이름을 붙여주고, 수의사에게 데려가겠다고 했더니 그 사이에 죽을 수도 있는데 괜찮겠냐고 하며 건강하게 되면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한달 후쯤에 수의사에게 데려가도 좋다는 연락이 왔고, 그 애는 한달 전에 봤듯이 똑같이 뒷발로 서서 앞발로는 열심히 움직여대면서 반갑다고 난리가 났다. 흐뭇한 맘으로 하늘이를 집으로 데려왔다.
케이지에서 꺼내서 하늘이 네 발이 거실 바닥에 닿자마자 그간 단 한번의 소리도 없이 예쁜 짓만 했던 하늘이는 왕!하고 짖으며 거칠게 몸을 트는 바람에 깜짝 놀라 하늘이에게서 손을 떼었다. 그 순간 스친 생각은 '속았다. 잘못 데려왔다'였다. 하늘이는 씩씩거려가며 나를 한번 본 후에 제집인 것마냥 이곳저곳을 그 짧은 다리로 얼마나 쏘다니는지... 아... 이름 그대로 정말로 하늘, 상전을 모시게 됐음을 단 몇 초만에 나는 절망적으로 깨달았다.
정말 하늘이는 그 동물병원 철장에서 보여주던 모습은 정말 완벽한 페이크였다. 나는 사람들이 헐리웃 액션이라고 하는 걸 이런 때에 쓴다는 걸 하늘이를 통해서 통감했다. 이런 게 헐리웃 액션이구나. 제대로 당했구나. 이후에 자기 데려갈 것 같은 사람에게 강아지도 나름 열심히 피력하는 것에 감쪽 같이 걸려들은 거란 소리를 듣고서 정말 제대로 걸렸구나라고 다시 한 번 통렬하게 느꼈다.
거기다가 설상가상으로 정말 성격은 안 좋다 못해 더러웠기 때문에 만나는 수의사마다 성격 나쁘다고 대놓고 인정했으며, 만나는 미용사마다 사나워서 미용하기 너무 까다로웠다며 한탄하기 일쑤였다.
하늘이의 그 성격에 의해서 내 입에선 너무 자연스럽게 '지랄 맞은 놈'이 나왔다. 지랄이란 단어는 좋은 의미도 아닐 뿐더러 비속어이기 때문에 단어는 알고 있으나 입밖으로 낸 적은 없었는데 하늘이를 키우면서 어느 순간 득도를 하듯 자연스럽게 "지랄이다"라고 말하게 됐다. 그리고 사전에서 말하는 마구 법석을 떨며 분별없이 하는 행동이 어떤 건지 하늘이를 통해서 유감없이 느꼈다. 지랄이란 이런 때에 쓰는 거구나...하고 그 활용처를 제대로 알았달까?
진짜 그 뒷발로 서서 꼬리를 흔들어가며 소리도 없이 앞발을 움직여 예쁜 짓을 하는 모습은 그 동물병원에서 보여준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강아지답게 이리 치대고 저리 치대며 예쁜 짓은 해서 가족의 사랑을 흠뻑 받은 것도 사실이지만 정말 정말... 몇 년간은 심각하게 고생했다. 나는 하늘이한테 얼굴까지 물려서 얼굴을 2번이나 꼬매야 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그나마 성격이 순해진 건 3년 정도 지나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