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2개월이 좀 지났을 때쯤에 우리집에 온 별이는 아직 이빨이 난 상태는 아니었다. 이빨이 날 때쯤이라서 한창 입안이 간질간질할 때였다. 그 간질간질함을 해소하는 도구는 바로 내 손가락이었다. 우리 가족 중 별이 입맛에는 내 손가락이 가장 좋았던 것 같다. 가늘고 긴 편이라서 아마도 물고 빨기에 훨씬 수월했겠다. 그래서 별이는 내 손가락을 야무지게 꺄꺄거리면서 잘도 물어댔다.
겪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이빨이 제대로 나지 않는 새끼 고양이가 입은 그야말대로 근질근질하니 좋은 것이었다. 아프지도 않고 물어대는 감촉 또한 그렇게 나쁘지 않다. 무엇보다도 앞발로 내 손가락을 꼭 잡고 떨어지지 않은 채 열심히 앙앙 물어대는 별이를 보면 집게 손가락 뿐이겠는가. 열 손가락도 다 바칠 수 있다. 별이는 입안이 간질거릴 때마다 내 손을 찾았고, 나는 내 손가락을 넙죽넙죽 바쳤다. 오히려 가족들에게 "훗! 부럽지?"하고 기고만장해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니 이빨이 나기 시작했다. 처음 이빨이 날 때에는 아프지 않았다. 드디어 이빨이 나는가 싶어 오히려 신기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이빨이 더 나고 강도가 세질수록 손가락에 구멍이 뚫리기 시작했다. 열심히 물어대는 별이의 악력을 버텨내기엔 내 손가락은 너무 비루했다. 새끼 때에는 '언니 손 깨물꼬다냥~' 같은 느낌이었다면, 어느 정도 이빨이 다 자란 상태에선 "언니 손 오늘 아작내주갓어!' 같은 느낌으로 실로 무시무시했다. 새끼 때는 앙앙 물었는데 정말 어느 정도 크니 콱콱 물어댔다. 이러니 당해낼 재간이 있나.
나는 별이의 이빨을 피하기 위해 손을 감추는 것에 나름 필사적이었는데 문득 모유 수유하는 엄마들이 아이가 이가 나면 아파서 젖을 물릴 수가 없다는 말이 떠올랐다. 대략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드니 그 아픈 와중에도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엄마 맘이 참 대단하다 싶었다.
별이가 내 손을 찾는 건 몇 년간 꽤 지속됐다. 원래 고양이가 사람 손가락 움직임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건 사실이지만, 별이는 내가 새끼 때부터 입에 물려서 그런지 유달리 내 손가락에는 반응이 심해서 내가 손가락을 조금만 움직여도 귀를 쫑끗거리며 반짝거리는 눈동자로 내 손가락의 움직임을 쫓았다. 버릇 한 번 제대로 들여놓은 덕에 이후의 고생은 내가 옴팡한 셈이다.
나는 이 경험으로 다시는 어떠한 새끼 고양이에게도 내 손을 제물로 바치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하늘이는 별이와 비슷한 시기에 왔지만 다행히 내 손가락을 바칠 일은 없었다. 하긴 바칠 생각도 못했다. 성격이 지랄 맞은 턱에 그 입에다가 내 손가락을 넣었다간 구멍 뚫리는 수준이 아니라 우스러질 수준이라 그 입에다가 내 신체를 넣을 생각을 할 수가 있을까. 대신 복병은 다른 곳에서 터졌다. 사건은 정말 예상치 못하게 터졌다.
하늘이가 오고 한 2주 쯤 지나서였을까. 나 빼고 가족들이 아침 일찍 외출을 해야 했다. 나는 보통 새벽까지 원서를 읽다가 잠드는 패턴이었고, 강의는 으레 오후에 있기 때문에 점심까지는 늘어지게 자도 되는 생활이었다. 그런데 가족들 전부 나가니 자다 깨서 부모님을 항상 마중해야 했는데 엄마는 나가면서 "하늘이 혼자 두지마! 아직 새끼니까"하고 신신당부를 하고 나가셨다.
거실로 가니 사람들 움직임에 그새 깼는지 하늘이가 꼬리 흔들며 앉아있고, 하늘이를 혼자 두자니 맘에 쓰이고, 그렇다고 내 정신을 깨우고 거실에 같이 있자니 도저히 잠이 와서 죽을 것 같아서 한 손으로 하늘이를 휙 들고 내 방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팔베개를 해준 다음에 하늘이 배를 토닥이며 "같이 자자~"하고 정말 같이 잤다. 둘이 똑같이 앞으로 나란히 자세를 하고서.
다음 날도 가족 모두 아침 일찍 나가야 했고, 엄마는 어제와 똑같이 하늘이 혼자 두지 말라고 말하시며 나가셨다. 나는 다시 거실로 가서 하늘이를 한 손에 휙 들고 같이 꿀잠을 늘어져라 잤다.
다음 날 셋째날도 가족 모두 아침 일찍 나가야 했고, 엄마는 또 똑같이 하늘이 혼자 두지 말라며 나가셨다. 뒤를 돌아 하늘이를 데리러 가려니 이미 하늘이가 꼬리를 흔들며 내 방문 앞에 와 있었다. 그 순간 쎄~한 느낌이 들긴 했으나 나는 너무 졸렸으므로 언제나처럼 똑같이 앞으로 나란히 자세로 같이 잤다.
그 다음 날인 넷째날도 며칠 동안과 똑같은 모습이 연출됐고, 나는 혼자 둘 수 없는 하늘이를 데리러 거실로 갔는데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 방 저 방 찾아보니 하늘이는 꼬리를 흔들면서 내 침대 옆에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아... 망했다...' 라고 생각했다.
그 이후로 하늘이는 나이가 들어 관절이 무리가 생겨 혼자 힘으로 침대에 뛰어오르지 못하게 될 때까지 사람하고 항상 붙어 자야만 하는 강아지가 되었다. 그 애가 혼자서 잠을 잔 건 우리 집에 오고 나서 딱 2주 뿐인 셈이다.
그렇다. 원흉은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