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발 기부

마지막일지도 몰라...

by 가릉빈가

나는 초등학교 5학년을 끝으로 엄마 손에 억지로 이끌려 파마를 했던 것이 종료된 이후로 머리를 만진 적이 없다. 그냥 천연 그 자체의 머리로 살아왔다. 머리모양에 유달리 관심이 없어서 내버려뒀더니 알아서 허리까지 길더라. 다행히도 나는 긴 머리가 어울리는 편이었기 때문에 괜찮았다.

물론 중간에 염색을 하고 싶긴 했는데 하필 하고 싶을 때 두피가 난리나는 바람에 염색을 포기했고, 그러다 보니 염색에 대한 욕구가 줄어들어 결국 염색 한 번 못했고, 이제는 해 봤자 뭐 하나 싶어서 생각도 안 한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미용사들이 머리도 예쁜데 더 꾸며보는 건 어떻겠냐며 속삭였고, 결국 꼬임에 넘어가 웨이브를 하기로 했는데... 정말 안 어울렸다. 너무나도 안 어울렸다. 웨이브하자며 꼬셨던 그 미용사조차 내 결과물을 보고서 미안하다고 사과한 다음에 돈을 안 받았다. 물론 그 후에 한 번 더 웨이브를 하자고 하는 미용사가 있었는데, 과거의 일을 이야기하며 안 어울린다고 했더니 '그 사람이 실력이 없어서 그래요!'하며 호언장담 하더라. 그래서 또 웨이브 해달라고 맡겼지. 그 사람도 사과하고 돈 안 받았다. 정말 지긋지긋하게 웨이브가 안 어울린 덕에 그냥 머리에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아예 포기했다.




그러한 와중에 어차피 몇 년에 한 번은 자를 머리, 그냥 버리면 아까우니 소아암 환자를 위해 모발을 기부하기 시작했다. 모발을 기부하기 위해서는 펌도 안 되고, 염색도 안 되고, 머리 길이는 25센티 이상이고 어쩌고의 나름 까다로운 조건이라고 하는데 나에겐 너무나도 쉽게 단박에 클리어됐기 때문에 사실 맘만 있으면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내가 모발기부를 할 때 나름 절차가 있다. 1)자르기 전에 허리까지 오는 내 뒷모습을 찍는다. 2)단발로 된 내 모습을 찍는다. 3)25센티 이상 잘려나가 우편으로 보낼 내 잘린 머리카락을 찍는다. 4)그 기부할 모발이 담겨진 우편봉투를 찍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 모발기부를 한 날에 난생 처음으로 길게 늘어뜨린 내 뒷모습을 찍었다. 딴에는 기념샷이었다. 모발기부로 단발이 되기 전에 내 모습과 단발된 나의 모습을 비교하면서 기념하려고 찍었던 건데 나는 그때 내 뒷모습으로 공포를 맛보았다. 엄마가 뒷모습을 찍어줘서 보여줬는데 진짜 뭔 귀신 하나가 서 있는데 순간 삭제하고 싶었다. 옛날 동화나 무서운 이야기 보면 머리 긴 귀신 나오고, 머리카락에 얽힌 공포물이 곧잘 있는데 그 이유를 내 뒷모습 보고 확실하게 알았다. 그리고 엄마가 긴 하얀 잠옷 입고서 머리 산발한 채로 이따금 내가 자다가 깨서 물 마시러 주방에 왔다갔다 할 때 귀신 하나 왔다가 들어간다고 나한테 말할 때마다 뭔 또 그렇게까지 표현하냐고, 딸한테 귀신이라고 하고 싶냐고 했는데 엄마가 왜 내 모습에 놀라서 심장이 뛴다고 했는지 충분히 이해가 됐다. 무섭다. 충분히 무섭다.

그리고 항상 내가 모발기부를 할 때마다 입버릇이 '이번이 마지막이겠지'다. 머리를 계속 긴다는 장담도 없고, 머리를 긴다고 기부를 꼭 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항상 이번이 마지막이란 맘으로 했는데, 어쩌다보니 정기적으로 몇 번이나 기부하게 됐다.

그러다가 코로나19가 발생했고, 머리는 길고, 미용실 가기에는 좀 그래서 사실 집에서 대충 가위로 잘랐다. 그러다 보니 삐뚤거리긴 했지만 긴 머리의 장점은 묶으면 되기 때문에... 신경 안 쓰고 그렇게 살았다. 다시 이야기하지만 머리 모양에 관심 없다.

하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지 한 번은 정리해야할 필요성이 있어서 다시 모발기부를 하려고 하는데, 왠지 '지금도 모발기부 가능한가?'란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검색해봤더니 종료됐더라. 내가 마지막 기부를 하고 6개월도 안 된 시점에서 모발기부가 종료된 공지를 보고서 약간 시원섭섭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이제 모발기부는 하지 말라는 뜻인가 싶었는데 밑에 모발기부를 받는 단체가 또 있네? 그래서 보니 아... 영 미심쩍어... 이거 진짜 제대로 된 곳 맞는 거야? 라는 의구심이 들긴 했으나 어차피 자를 머리이고, 내가 기부해서 제대로 쓰이든 안 쓰이든 그 또한 그 단체의 몫이란 생각이 들어서 싹둑 잘라 결국 모발기부했다.




그런데 솔직히 몇 번의 기부가 될 동안 나도 나이가 먹었단 말씀이다. 이번에도 언제나처럼 뒷모습 사진 찍고 오오~ 무서워~~ 하는 감탄사(?)를 내뱉었고, 단발된 내 모습을 찍고, 잘려나간 내 머리카락을 찍고, 우편봉투까지 다 찍었는데... 정말 이번이 마지막 모발기부일 것 같다. 이제 허리까지 길기엔 좀 거추장스럽고, 나이 먹는 것이 죄는 아닌데 이렇게 계속 허리까지 길어도 되나 싶기도 하다. 예전만큼 그리 예뻐보이진 않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정말 항상 입버릇처럼 했던 그 말이 정말 진짜로 이루어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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