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석십자수 체험

by 가릉빈가

보석십자수란 것이 유행한 건 이전인 것 같긴 한데, 나는 유행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서 뒤늦게 해 봤다. 보석십자수라고 흘려 듣긴 했는데... 그래서 검색을 몇 번 해 봤는데 아무래도 선명도가 높지 않은 듯하여 완성해봤자 액자에 걸어놔도 별 것 없을 것 같아서 포기 아닌 포기를 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1000원짜리 잘 파는 곳이 있지 아니한가! 둘러 보다가 3천 원만 주면 체험할 수 있도록 키트가 있는 걸 발견했다. 순간 할 일도 없거나 할 일이 있으나 죽어도 하기 싫을 때 하면 되겠다 싶어서 사서... 결국 했다.


이미 다 준비되어 있던 것이고, 그냥 도안에 써 있는 번호와 똑같은 보석을 붙이면 되는 아주 간단한 것이었다. 맨 처음에는 가장 윗부분부터 하려고 했는데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 밤하늘을 하려니까 뭔가 막막했다. 똑같은 색만 나열이 되는 광활한 밤하늘을 품기에는 내 자신은 너무 초라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아래서부터 시작했다. 녹색인 건 비슷했으나 그래도 중간중간 다른 색깔이 있는 게 그나마 공략하기 쉬워 보였다.

그리고 맨 처음에는 책상에 놓고 했는데 몇 분만에 손목의 피로도를 느꼈다. 그때 왜 수틀이 필요한지 확실하게 느꼈다. 비스듬히 할 만한 좀 더 편안한 게 필요했는데 없었으므로 그나마 있는 독서대에 의지하여 강행했다.


정말 어려울 건 하나도 없었는데, 진짜 5분 만에 후회했다. 내가 이 노가다를 왜 할까. 도대체 이 행위에 어떠한 의미를 찾을 수 있냔 말이다. 정말 머리 안 쓰는 취미란 걸 깨달았다. 번호 따라서 그냥 머리를 비우고 그냥 붙이면 되는 정말 거기에 그 어떤 생각은 필요가 없다. 이런 게 삽질이구나 싶었다.

그리고 독서대를 놓고 해도 어깨가 바로 굳어왔다. 그 보석을 찍어 저 도안에 붙이기를 반복하는데 양쪽 어깨가 굳어가면서 아파오는데는 사실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또한 보석이 너무 작은 데다가 내가 자주 흘리는 통에 책상과 방바닥이 자그마한 보석들로 넘실넘실 거려서 청소할 생각과 청소를 하는 과정에서 짜증났다.


무엇보다도 나는 이게 보석'십자수'라는 걸 하면서 깨달았다. 보석십자수라고 하면서도 '십자수'란 건 아무래도 내 머리에 입력이 안 되었던 모양이다. 보석십자수를 하면서 '참 못 붙인다, 남들도 이렇게 못 붙일까, 이리 간단한 것도 예쁘게 안 되니~' 스스로에게 감탄을 하다가 '어째 이거 예전에 십자수 했을 때가 떠오르네...' 하면서 설마 하는 심정에서 케이스를 다시 보니 보석십자수라고 써 있는 것이 내 머리에 그제서야 길을 잘못 들었음을 확신했다.

이모가 한때 십자수를 한 적이 있어서 옆에서 같이 한 적이 있는데... 난 그때 그 쉬운 십자수도 하는 사람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이모가 한 부분은 뭔가 예쁘게 가지런한데 내가 한 부분은 묘하게 안 예뻐... 똑같은 실로 똑같이 십자모양으로 수를 놓았는데 이모가 한 부분은 예쁜데 내가 한 부분은 뭔가 엉성한 걸 눈으로 확인하고서 내가 그 뒤로 십자수 안 했다. 십자수 쳐다도 안 봤다. 근데 이런 내가 보석'십자수'를 선택하다니!!! 도대체 왜 나는 십자수란 걸 생각을 못 했는지 아직도 의문이다. 보석십자수여도 십자수인데 당연히 잘할 리가 있나!


사실 크기는 별로 크지 않은데 의외로 꽤 시간 오래 걸린다. 하나씩 찍어 붙이는 게 효율성이 정말 떨어진다. 밤하늘 같은 경우는 똑같은 색을 10개고, 20개고 붙이니까 한 번에 확 붙이는 것 있으면 그나마 나을 텐데 정말 이태리에서 한땀 한땀 만드는 트레이닝복 같은 느낌으로 몇 시간씩 해서 2일에 걸쳐서 완성했다. 도구가 너무 불편하다. 도구 개선 절실하다.

엄마는 맨 처음에 공부하는 줄 알고 조용히 계시다가 자세히 보니 고개 숙이고 조용히 보석만 찍어 붙이는 나를 보고서 "장인의 모습이 이런 것이구나~"하면서 팡 터졌다. 그리고 가끔 찾아와서 "그 노력으로 다른 걸 하면 성공할 텐데~"하고 놀리고 가셨다.


아무튼 어깨는 어깨대로 아프고, 손목은 손목대로 아파가면서 속으로 '이 생각도 할 필요 없는 무의미한 이 시간은 무엇을 위해서 존재하는가~~' 한탄하면서 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하는 활동은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다. 완성품은 그냥 버릴 생각이었는데 엄마가 그래도 딴에는 시간 내서 한 거니까 어디 걸어놓자고 하며 걸을 곳을 찾으셨다. 그래서 찾아 걸어 놓은 곳이 냉장고 위쪽 벽이었는데 도대체 거기에 누가 못을 박아놨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렇게 걸어놓은 보석십자수에 든 첫 감상은 "엄마, 부적 같아". 크기도 그렇고, 위치도 어째 좀 웃겼다. 엄마가 내 말에 허리 접어가며 깔깔 웃었다. 보석십자수는 다신 안 한다.


물론 아무 생각 없이 온전히 머리 비운 상태로 뭔가를 할 생각이면 나름 추천한다. 어깨와 손목이 아픈 건 디폴트값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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