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반려 취미 탐색기 #9
술을 좋아하던 C선배의 근황을 듣고 좀 놀랐다. 위가 안 좋아 술을 끊었다는 것이다. 예민한 위장 때문에 늘 고생을 하면서도 (안주로 먹은 걸 고통스럽게 확인하면서도) 편안한 술자리를 좋아하고 특히 후배들에게 영양 가득한 고기와 술 사 주는 걸 즐기던 선배였다. 심한 목감기로 내 목소리가 파열음으로밖에 안 나왔을 때도 굳이 불러내 홍대 앞의 삼식이 회와 소주를 권하며 선배는 말했었다. "이걸 먹으면 삼식이 소리가 나올 거야"
그랬던 선배의 일상에 술이 빠진다니 걱정되는 일이기도 하고, 상상이 안되었다. 내가 기억하기로 선배에게 술이란 팍팍한 일상에서 위장의 고통을 감내하면서도 지켜가야 하는 낭만 같은 거였고, 선배는 누구보다 낭만적인 사람이었으니.
나 역시 그런 시절이 있었다. 낭만은 비어 가는 소주잔에나 있는 거라 믿으며, 위장이 뭐라 신호를 보내거나 말거나 호기롭게 잔을 비우던 시절. ‘비명을 질러야 할 때 함성을 지르게 하는 게 소주라잖아’며 소설가 김소진의 소주 예찬을 호출하던 시절.
아아, 쐬주병의 비어버린 밑바닥을 맨정신으로 보는 일만큼 쓸쓸하고 또 소름 끼치도록 비참한 경우는 없으리라. 하지만 그 밑바닥을 회피하고 외면하면서 자리를 털고 일어나지 못하고는 쓸데없는 고집을 피우는 일만큼 비겁한 일도 없는 법이다.
(…) 하지만 아직도 우리가 쐬주한테서 배워야 할 점은 너무도 많지 않은가.
그것은 연약한 비명을 질러야 하는 사내의 혀를 마비시킴으로써 어떤 의미에서는 단련시킨다.
그래서 비명 대신에 일순간이나마 함성을 지르게끔 한다. 고마운 일이다.
그런 사내의 가슴을 통과한 쐬주는 본디 그대로의 투명한 빛깔로 남모르게 재생되기도 한다. 그게 거시기 두 쪽만 달랑 찬 사내들에게 내일을 견디는 힘이 돼주는 유일한 밑천임을 모르는 사람은 바보다. 그리고 속삭임이 있다. 미치는 것보다는 취하는 게 백 번 낫다고. 나을 것도 없지만… 혹 덧없는 사랑 때문에 혹 권태 때문에 혹 허영 때문에 속세를 저주하고 고통받는 이들이 있다면 쐬주만한 친구도 더 이상 없을 성 싶었다.
- 김소진, 「쐬주」, 『눈사람 속의 검은항아리』
그러나 소주의 힘을 등에 업은 젊음의 객기에는 시효가 있었고, 부실한 위장은 엄살을 넘어 복수를 꾀하려는 것 같았다. 소주를 마시는 일은 이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나빠지는 건강에 대한 용기뿐 아니라 그 "비어버린 밑바닥", 나의 밑바닥을 맞닥뜨릴 수 있는 혹은 내 안의 비명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용기. 과음한 전날의 숙취와 기억으로 괴로워하고 있던 어느 날 한 후배는 이런 메시지를 보내왔다. "지랄 총량의 법칙이 있다네. 일생에 부릴 수 있는 지랄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는 거지. 언니는 아직까지 거의 지랄 맞게 안 살았으니 앞으론 충분히 지랄을 부리면서 살아도 돼"
후배의 이런 격려가 꽤 위로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로 소주는 거의 입에 대지 못했다. 만성위염을 디폴트로 가지게 된 사람으로서 위장의 안녕이 우선이기도 하였지만,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우리에겐 맥주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즈음 아는 삼촌들이 홍대 앞에 자그마한 수제 맥주 가게를 오픈한 것도 영향이 컸다. 맛나고 향기로운 맥주들을 두루 섭렵하며 자연스레 맥주의 세계로 입문하게 된 것이다.
소주의 미덕이 어떤 삶의 회한도 차별없이 받아들일 것 같은 무색무취의 그 투명함에 있다면 맥주의 미덕은 적극적으로 자기 색깔을 드러내는 다양성에 있다. 이 시간에도 지구 어딘가에서 수제로 생산되고 있는 맥주까지 그 수를 다 헤아려 본다면... 결코 헤아려볼 수가 없는 것이다. 이제까지 가장 인상적이었던 맥주는 뭐니 뭐니 해도 먼 아일랜드 소도시의 펍에서 맛보았던 기네스다. 왜 아일랜드 사람들이 기네스는 기네스일 뿐 맥주가 아니라고 말하는지 단박에 알 것 같았다.
지금은 맥주를 마시는 일도 많이 줄긴 하였다. 하지만 이제야 정말 술을 사랑하게 된 것 같기도 하다. '비명이나 함성'을 지르게 해 주는 삶의 밑천 단계를 지나, 그 자체로 좋아하고 즐길 수 있는, 남은 인생 같이 할 수 있을 편안한 친구-취미가 되었으니.
*사실 요즘 같은 때 비명이나 함성 같은 걸 마구 내지르는 건 웬만해선 민폐다. 문학적 메타포로 이해해야 한다. 먹자골목 가까운 오피스텔에 살았을 때 새벽까지 울려 퍼지던 그 함성과 노랫소리는 얼마나 괴로운 것이었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