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반려 취미 탐색기 #8
주문했던 월동 장비가 도착했다. 기특하게도 접히는 반신욕조다. 허술한 매뉴얼을 보며 펴고 끼우고 나니 제법 그럴듯하다. 그런데, 주문한 것은 분명 반신욕조인데, 머리까지 잠긴다. 내 아무리 단신이기로서니... 웃픈 상황인가 하다 단신의 이점으로 받아들이기로 한다. 나는 긍정적인 사람이니까.
단신만이 누릴 수 있는 널찍한 공간감에 흡족해하며 따뜻하고 부드러운 물의 감촉을 만끽하다 보니 옷장 속에 고이 모셔져 있는 오리발이 생각난다. 수영 중급반에 올라간다고 신나서 장만했던 것인데 코로나 때문에 수영장이 문을 닫으면서 한 번도 써보지 못했다. 말로만 듣던 오리발의 스피드를, 물을 가르며 달려가는 그 쾌감을 얼마나 기대했었는데. 흑!
내가 다니던 대학에선 수영이 필수 교양이었다. 타고난 운동신경이 둔한 데다 수영을 배워 본 적이 없던 나로선 참으로 암담한 일이었다. 두 번째 시간이던가. 학기초의 추위와 긴장으로 떨리는 몸을 추스르며 수영장에 들어섰을 때 마주한 현실은 가혹했다. 3미터 깊이의 풀에 선 채로 똑바로 뛰어내린 후 바닥에 발이 닿으면, 그 바닥을 딛고 힘차게 뛰어올라 25미터를 자유형으로 가라는 것이었다. 물론 그런 근사한 일은 나에겐 일어나지 않았다. 단지 온 힘으로 살려 달라 외치며(정확히 뭐라 외쳤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허우적거리다, 무서운 강사님이 내려주신 장대를 잡고서야 간신히 살아 나올 뿐이었다. 친구들은 이때의 일을 "절망의 밑바닥까지 내려가서 그 바닥을 차고 오르는 경험" 쯤으로 빗대어 꺼내보곤 했지만, 내게는 잊을 수 없는 좌절이었다. 언젠가는 극복하고 싶은, 그리하여 그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은.
이후로 수영을 배우려는 몇 번의 시도들은 성공적이지 못했고, 결국 이건 그냥 나랑 안 맞는 취미에 불과하다며 스스로를 다독여 포기하고 말았지만 이상스레 미련이 남았다. 물속을 유유히 유영하는 꿈도 여러 번 꾸었다. 내가 꿈꾸던 자유의 모습 같았다.
잔병치레가 잦아 뭔가를 시작해봐야겠다 싶었던 작년 이맘때쯤 불현듯 수영이 생각났다. 마침 운 좋게도 집 근처 수영장에 자리가 있었다. 잠깐의 고민 끝에 등록을 하고 나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는데... 수영강사로부터 배우는 속도가 빠르다며 연거푸 칭찬을 받게 된 것이다. 한 친구는, 수영이란 몸에 힘이 들어가서 배우기 어려운 법이라며, 수영이 쉬워진 건 결국 나이가 들어서일 뿐이라고 나의 성취를 폄하했지만, 뭐, 아무래도 좋았다. 칭찬받는 게 이리 좋은 것이었나 싶었다.
코로나 시국이 끝나고 수영장이 문을 열면 지체없이 나의 어여쁜 오리발을 신고 신나게 물속을 헤엄쳐볼 것이다. 자랑스럽게 나의 취미는 수영이요, 외쳐도 보겠다. 그러다 언젠가는 꿈에서처럼 어느 따뜻한 바다 위를 유유자적 헤엄쳐볼 수도 있겠지.
그날이 요원한 오늘은 이렇게 반신욕조 혹은 전신 욕조 속에 몸을 담그고, 그저 먼바다를 꿈꿔 보는 것이다.
이적의 노래 속 달팽이처럼, 기억 속 어딘가 들리는 파도소리에 귀 기울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