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숫자 7, 도시, 그리고 청춘의 발자국
* 프랭크 오하라의 <점심 시집>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으나 ‘시집’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저께 초복이라고 친구와 오랜만에 복숭아를 샀다. 나에겐 올 여름의 첫 복숭아. 복숭아는 장마철이 지나야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계속 멜론만 사다가 친구가 이미 복숭아를 살 때가 되었다는 말을 듣고 나도 비로소 복숭아를 사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운동이 끝나자마자 바로 땀 범벅이 되어 달려갈 만큼 마음이 급했는데,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만큼 다양한 종류의 산지 직송 복숭아들이 마트에 가득 진열되어 있었다.
복숭아를 사고 나니, 얼마전 알베르 카뮈의 <결혼, 여름>도 읽었고, 여름 이야기가 담긴 책을 더 읽어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특히 프랑스의 여름 이야기가 많이 담긴, 알베르 카뮈의 책을 많이 번역한 김화영 교수의 <여름의 묘약>을 우선 펼쳤다. 역시 여름 여행엔 음식 이야기도 빠질 수 없을텐데, 마침 펼치자마자 멜론에 백포도주를 부은 <봄 드 브니즈에 재운 카바용 멜론> 이야기를 발견하게 되어 너무 흥미로웠다. 멜론에 백포도주 외에 코냑을 붓든 위스키를 붓든 뭐든 괜찮다고 한다. 김화영 교수는 프랑스에 처음 도착하는 날이면 복숭아, 멜론 등 늘 과일을 푸짐하게 사들이는 것이 나름의 사치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액상프로방스의 생산자가 직접 찾아와 여는 시장에 들러서 토마토, 복숭아, 오렌지 멜론, 같은 과일들을 구경한다. "삶의 기쁨은 바로 이곳, 과일과 채소와 소금과 기름과 향료의 색채와 냄새가 소용돌이치는 이 시장에서, 즐거운 표정들 속에서 빛난다." 라고 하면서.
아무도 서두르지 않고, 테라스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이 있는 풍경은 마침 나도 집 앞, '로컬 푸드 직매장'에서 비슷하게 경험했다. 비가 쏟아 붓기 직전이라 번뜩이는 햇빛은 없고, 아직 낡은 크리스마스 장식이 여전히 남아 있고, 수백 년의 전통은 없지만, 인근의 생산자가 생산한 갓 딴 복숭아와, 신선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테이블이 있고, 바로 먹을 수 있는 옥수수는 찜기에서 익어가고 있었다. 계산할 때도 결코 서두르거나 줄을 길게 설 필요가 없는것도 비슷하다.
나는 보통 말랑말랑한 백도를 좋아하지만, 복숭아가 싱싱하고 적당히 익었다면 어떤 종류든 다 맛있다. 복숭아가 가득한 상자에 코를 대면 느껴지는 달콤하고 관능적인 향은 아무리 가격이 비싸고 사자마자 금방 상한다고 해도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다. 이번에 산 복숭아는, 올 여름의 첫 복숭아라 실패하기 싫어서, 조금 비싸도, 무조건 크기가 크고 잘 생긴, 말랑한 황도를 6개 샀는데, 역시 예상대로 맛있었다. 복숭아를 먹다 보니, 여름의 책 말고, 여름의 레시피도 생각이 났다. 예전에 미국에서 산 요리책 Mimi Thorisson의 <A kitchen in France>에는 프랑스 농가의 계절 음식들이 나오는데, 내가 늘 여름마다 찾아보는 음식이 하나 있다. 바로 <Chilled white peaches in white wine syrup>인데, 냄비에 설탕, 화이트 와인, 시나몬, 바닐라 빈, 레몬 제스트와 즙을 넣어 시럽을 만드고 그 안에 적당히 자른 복숭아를 넣어 살짝 익힌 다음, 민트로 장식하고 차갑게 보관하는 음식이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프랑스의 여름에는 복숭아만큼 생각나는 과일이 없다는데, 대신 복숭아는 뜨거운 여름에 쉽게 상하니 이렇게 만들어두면 보관도 더 오래 할 수 있고, 산뜻한 디저트로도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사진을 보는 걸로만 만족하지 말고, 올 여름이 가기전에는 '와인 시럽에 담근 백도'를 꼭 한번 만들어 봐야 겠다. 어쩌다 맛없는 복숭아를 사게 되면 구제도 할겸.
이렇게 복숭아 생각에 빠져 있다가, 갑자기 이번 주말 KTX를 이용한 서울행에 대한 단상으로 나의 생각이 흘러가게 되었다.
그리고 광화문, 미술관, 카페 이마의 아이스크림 와플, 그리고 다시 복숭아로 생각이 돌아오게 된다.
왜냐하면 위에 언급한 책, <여름의 묘약> 때문이다. 그 책의 첫 문장에 따르면, 김화영 교수는 8월 20일(이 날짜가 마침 내 생일이라서, 이후 책에 뭐든 나오는대로 자꾸 연결고리를 만들기 시작한다.) 토요일에 TGV를 타고 40여년 만에 액상프로방스로 향한다. 그는 프로방스식 가옥에 도착해서 집 주인이 오래된 나무 벽장문을 열고 그 속에 차곡차곡 쌓인 시트들을 보여주자, 확 끼치는 신선한 광목 냄새에 비로소 프로방스에 도착했음을 실감하게 된다. 그리고 그곳으로 돌아오는 데 40년이 걸렸다며, 그 먼길 위에 흩어진 자신의 청춘의 발자국이 간데 없다며 잠시 생각에 잠긴다.
매년은 아니지만 나는 7월 7일을 앞두고 가끔 인생의 이벤트를 만들게 되는데,
1999년 7월 7일에 스무살이 되면 경복궁에서 친구와 만나자고 했듯이,
20여년 만에 7월에, 그것도 경복궁 근처 미술관에 가다보니 자꾸 뭔가 재밌는 일을 만들고 싶어졌다.
마침 내가 가는 날짜는 2023년 7월 16인데,
그래서 억지로 생각해 낸 것은, 그날은 7이 세개가 모인 날이라는 것이다.
2023= 2+ 0 + 2+ 3 =7
7 = 7
16= 1+6 = 7
이렇게 숫자 7에 대한 생각을 계속 하면서 나혼자 재밌어하고 있는데, <여름의 묘약> 뒷부분을 마저 읽어보니, 김화영 교수도 7월 7일과 관련된 추억이 있고, 숫자 7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반가웠다. 그가 '아네 성' 이란 곳을 여행할 때 일기를 보면,
"1977년 7월 7일, 이 신비스러운 7자가 마치 기적처럼 캘린더 속에 되풀이하여 나타나던 우리 일생의 우연한 하루, 그날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그날 나는 무덥고 나른한 대도시 파리를 벗어나 여행길에 올랐었다. (......) 아름다운 여인 디안 드 푸아티에의 아네 성이었다." 라고 나온다.
그는 그때로부터 정확하게 35년이 지난 2012년 7월 7일, 다시 아네 성으로 가게 된다. 열다섯 살 어린 나이에 자신보다 마흔 살이나 더 많은 노르망디의 총독 루이 드 브레제와 결혼하여 두딸을 두었던 디안 드 푸아티에는 남편과 사별 후, 어릴 때 잠시 인연이 있었던 자신 보다 스무살이 어린 앙리 2세와 대모 겸 현명한 충고자로서 플라토닉한 사랑을 나누며 부와 영예를 누렸다. 그리고 앙리가 갑작스레 사망한 후에 디안 드 푸아티에는 다시 아네 성으로 돌아와 남은 생을 살았다고 한다. 그리고 김화영 교수는 이번 여행 중 처음으로 흩뿌리던 서늘한 비를 맞으며 파리로 목신을, 말라르메를 찾아 떠난다.
그가 이후 말라르메의 생가를 찾아 감격에 젖는 장면을 보며, 나는 또 말라르메의 시집, <목신의 오후>를 뒤적여 본다.
방 안에서 시원하게 퍼지는 부채와 같이
이렇게 작은 흥분으로 단조로운 우리의 자연스러운 우정이
되살아 나는 것이 놀랍기 그지 없답니다. 115쪽, <여인이여, 지나친 격정 없이도>
그래요! 그대는 아는, 지난 세월 동안, 또
앞으로도 영원히 그대의 눈부신 미소가
과거로 그리고 미래로도 뛰어드는 이 장미를
그 아름다운 여름날과 함께 지속시켜준다는 것을. 116쪽, <오 멀리서 가까이서 순백의, 그토록>
작은 흥분과 아름다운 여름날, 비가 흩뿌릴 지언정, 7월은 나에게도 그러할 것이다.
딴 이야기이지만, 특별한 행운이 깃든 숫자 7과 관련된 재밌는 구절을 이날, '여름의 책'에서 또 우연히 발견하게 된다.
"그는 카지노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좁은 보폭으로 걸었는데, 그 이유는 집에서부터 걸음 수가 꼭 1,457보가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예전에 그가 계산해 두었던 것으로, 이 걸음에 맞추어 도착하는 날에는 언제나 돈을 따곤 했다. 이것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닌데, 왜냐하면 이 숫자는 마지막이 7이고, 네 자리의 수를 합하면 17이어서 또 7이 되는 것이다. 이 숫자에는 뭔가 특별한 행운이 깃들어 있었는데, 자기 자신으로밖에 나누어지지 않는 홀수인 데다, 순수한 형태일 뿐만 아니라, 17, 37, 47, 57, 67 등등과 같은 두 자리의 특별한 수를 이루고 있었다. 카지노 문으로 들어서는 마지막 걸음은 대단히 좁은 보폭으로 가야 했는데, 심지어 그건 걸음이라고 할 수도 없을 정도로 좁아지기도 했다. 하여튼 마지막 수만 1,457로 맞추면 되는 것이었다!" 132-133쪽, 레오니드 치프킨, <바덴바덴에서의 여름>
누군가에게는 여름 + 숫자 7 = 행운, 누군가에게는 여름 + 숫자 7 = 추억이다.
이번주 주말에도 비가 내린다고 한다.
한 손에는 우산을 들고, 한 손에는 복숭아-<여름의 묘약>에서 발견한 여름의 과일, 빠른 기차, 몇십년만의 여행, 숫자 7 등 이렇게 나의 생각의 흐름의 시작점-를 들고, 광화문을 걸어 보아야지.
광화문에서 갔던 미술관들을 추억하면서, 다행히 20여년이 지나도 그대로인 카페 이마의 아이스크림 와플도 먹어보고.
이번의 서울행은 또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까, 추억에 잠긴 회한으로 다가올까, 역동적이고 새로운 도시에 대한 기대감으로 다가올까.
"인간이란 기이한 동물이다. 세계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자신의 기억과 정서의 그물을 씌워서 주관적으로만 읽으려 든다. 나는 내 청춘의 요람이었던 이 도시가 돌연 나를 '이방인'인 양 밀어내는 느낌 때문에 잠시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아마도 나를 진정한 이방인으로 만들어버린 것은 흘러가버린 세월, 내 얼굴에서 젊음을 지워버린 시간, 그리고 지금 한창 신명이 나서 저희들끼리 저만큼 가고 있는 우리집 아이들의 빛나는 웃음으로부터 밀려난 이 거리감일 터이다. 54-55쪽, 김화영, <여름의 묘약>
그러고보니, 보들레르도 옛 파리에 대한 기억이 사라지는 것을 애석해했다.
“이제 옛 파리는 없다(도시의 모습은 아! 사람의 마음보다도 더 빨리 변하는구나).
파리가 변한다! 그러나 나의 멜랑콜리 속에서는 그 무엇도
변하지 않았다! 새 궁전들, 비계들, 돌덩이들,
옛 변두리 동네들, 그 모든 것이 내게는 알레고리가 되고,
내 소중한 추억은 바위보다도 무겁다.“
그는 1861년에 파리를 자신이 20년 전에 알았던 도시와 비교했다.
“당시의 파리는 오늘날의 파리 같지 않았다. 이런 난장판, 이런 뒤죽박죽, 시간을 죽이는 그 방식이 세련되지 못하고 문학의 기쁨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쓸모없는 바보천치들이 가득한 이런 바벨 같은 곳이 아니었다. “
보들레르는 <1846년 미술전>에서 현대 회화를 묘사할 때, 현대성에 대해 난장판, 소란, 불협화음 등으로 표현하는데, 그에게 새로운 파리는 소음과 시각적 우글거림기 가득했다고 한다. 내가 이번에 국립 현대 미술관 서울관에서 볼 작품들도 '명상'을 주제로 접근하지만, 사실은 영상, 소리, 체험 으로 가득할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결국 내가 기대하는 동시대성, 그 이상의 것을 보게 되며 나는 혼란스러워질 것이다. 보들레르는 현대도시가 종말적이고, 악마적이라고도 했지만, 그는 결국 이렇게 외쳤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오 치욕의 수도여!".
(앙투안 콩파뇽, <보들레르와 함께하는 여름> 중)
사실은 나도 그 격렬한 애증의 감정에 휘말리고 싶은지도 모른다. 20년전에 알았던 도시를 비로소 다시 제대로 바라보게 되면서.
그리고 도시를 비로소 다시 제대로 바라보려면 역시 그 안에서 '걷기'를 해야할 것이다. 나 홀로 도시 걷기도 좋지만, 최근에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걷기, 헤메기> 전시를 보고 걷기가 홀로 걷는 일에서 순례나 행진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며, 함께 걷는 일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장 지오노의 '콩타두르의 모임'의 순례나 피나 바우쉬의 '넬켄 라인' 같은 행진을 나도 꿈꾸어 본다.
나는 홀로 한 손에는 우산을 들고, 한 손에는 복숭아를 들고 걸어가지만, 어느새 그 걸음에 한 사람, 한 사람씩 동참하는 상상을.
'콩타두르의 모임'은 <여름의 묘약>에서 알게 되었는데, 작가 장 지오노의 아버지는 구두 수선공으로 위안과 피난처를 찾아 자기 집으로 찾아오는 "뭔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을 맞아 후하게 대접했다고 한다. 그렇기에 작가가 된 아들 지오노 역시 사람들에게 한없이 너그러워, 집 앞에서 그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그냥 두곤 했는데, 어느 여름날 아침 지오노는 이 열광적인 사람들과 함께 떠난다. 그들은 그렇게 걷다가 농가에서 지내게 되었고, 이는 훗날 오트프로방스를 순례하는 '콩타두르의 모임'의 시작이 된다. 그는 유명하고 권위 있는 작가가 되었지만, 계속 고향 마노스크에 눌러살면서 "작은 기쁨들에 중요성을 부여하는 법"을 배웠다고 했다.
작은 기쁨,
비오는 여름날에 복숭아와 20여년전에 걸었던 곳에서 청춘의 발자국을 찾아보기.
푸르고 뜨겁고 강렬하지만, 또한 세찬 비를 맞을 수 밖에 없는 여름이라는 계절, 달콤하고 아름답지만 간직할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짧은 복숭아 같은, 데일듯한 열기에 지치기도 하고,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기도 하지만, 지나고 나면 그 땀으로 가득하고 흥분되었던 시간이 마법의 시간-‘한여름밤의 꿈' 이었음을 알게 되는. 이것이 청춘 아닐까.
나는 이상한 상상을 해보고, 그것이 상상한대로 완벽하게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언젠가 다시 꺼내 볼 여름의 기억을 만들어 두려고 한다.
나를 취하게 하는, 여름의 묘약을.
오늘부터 본격적으로(여태까지는 뭐였지?) 장마가 시작되고, 일기 예보에는 전국적으로 이번주를 넘어 다음주까지 비가 온다고 표시되어 있다.
이 계절의 비는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여름비>의 마지막 부분에 묘사된 것 처럼 쏟아질것만 같다.
"비는 시내 전역에, 강과 파괴된 고속도로에, 나무, 오솔길, 아이들이 지나던 비탈길에, 세상의 끝까지 떠돌아다닐 창고 옆의 서글픈 의자들 위에도 오열하는 파도처럼 세차게, 격정적으로 쏟아져 내렸다." 195-196쪽.
그리고 나는 시간을 넘나드는 여행을 마친 후, 뭔가 또 수수께끼를 안고 집에 오게 될 것만 같다.
“귀를 세워 들어보면서 멀리서 사람들이 내게로 달려오고 나의 기쁨이 커져간다. 또 다시 어떤 다행스러운 수수께끼 덕분에 나는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알베르 카뮈, <결혼, 여름>
오늘의 표현
'어느새 그 걸음에 한 사람, 한 사람씩 동참하는 상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