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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tykwariat Jul 10. 2023

[간식 시집] 두부 두루치기, 조성진, 상세르

[간식 시집] 대전에서 두부 두루치기를 먹으며, 추억 여행과 조성진과의 지난 9년, 마무리는 상세르로


7월 8일, 대전 예술의 전당에서 조성진의 리사이틀을 보고 왔다. 단순하게는 대전이 서울이나 부산 보다 광주에서 가기 적당한 거리이고, 운좋게 표도 구했고, 게다가 공연 시간이 토요일 오후 5시라서 밤운전에 대한 부담도 덜하다는 여러가지 이유로 선택된 것이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이렇게 저렇게 어떻게든 연결되는 이야기들이.


대전은 시카고에서의 신혼 생활을 끝내고, 정착한 도시이다. 낯선 그곳에서 아이 둘을 낳고, 6년여간 살았다. 이어서 또 한번 더 낯선 곳 광주로 이사와서는 대전에는 가끔 아이의 옛 친구들을 보러 놀러가고는 했다. 이번의 대전 여행은 아이만을 위한 것도 나홀로도 아닌, 우리 둘만의 추억을 만드는 여행이기에 더 기대가 되었다. 마침 아이의 sweet sixteen 생일 다음 날이기에 서로를 위해 선물을 준비한 느낌으로 더욱 들뜬 마음이 들었다.


우리는 우선 대전 여행에 앞서 '무엇을 먹을지' 계획을 세웠다. 다행히 큰 갈등 없이 메뉴는 하나로 통일 되었는데, 나에게는 아이가 어릴 때 정신없이 먹어서 무슨 맛인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그렇게나마 추억이 있는, 아이에게는 맛기행 책 <오무라이스 잼잼 - 대전편>으로 기억되는 음식, 바로 '두부 두루치기' 였다. '두부 두루치기'는 채소 몇가지를 넣은 빨갛고 매콤한 국물에 두부를 넣고 자작하게 끓인 음식인데, 이게 다른 평범한 두부 조림와 차별화 되는 이유는  어느 정도 두부를 건져 먹은 후 남은 양념에 칼국수 면을 넣고 비벼 먹는 데 있다. 대전에 조성진 공연을 보러 가는 것도 좋지만, 누굴 만나는 것도 좋지만, 기억이 희미해진 추억의 음식과 또 아이는 책으로만 보던 음식을(물론 아주 어릴 땐 먹어봤지만) 먹으러 간다는 것이 생각보다 꽤 큰 설레임을 주었다. 아이가 어린 시절을 보낸 도시에 거의 성인에 가까운 나이가 되어 함께 찾아 간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다가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초등학생 때, 중학생 때, 함께 갔던 것과는 정말 또 다른 느낌.


우리가 '두부 두루치기'를 먹으러 갔던 식당 이름이 가물가물해서 대전의 '두부 두루치기' 식당을 검색해 보고 두군데가 추려졌다. 두군데의 사진을 가만히 보고, 이름을 몇번 되뇌어 보니, 드디어 우리가 갔던 식당이 생각 났다. 그곳은 바로 '동원 칼국수' 였다. 이름부터 간판까지, 갑자기 희미해졌던 기억이 선명해졌다. 머릿속에서 기억이 빠르게 채색되는 기분. 우리는 목적지를 '대전 예술의 전당'으로 찍기 전에 '동원 칼국수'부터 찍고 출발했다.



'동원 칼국수' 근처에 도착해서 골목을 주차를 하기위해 몇번 돌다가 다행히 식당 근처 길에 자리가 나서 주차했다. 식당을 향해 걸어가면서 당시 ‘여기 참 복잡하다’ 라고 생각했던 기억 등등이 되살아났다. 던킨 도너츠로 기억되는 곳은 파스쿠찌로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식당이 예전엔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 좌식이었는데, 들어가보니 다행히 테이블과 의자가 생겨서 좋았다. 아이는 식당을 한참 둘러 보더니, "여기 예전에 신발 벗고 앉아서 먹었지?" 라고 한다. 기억이 전혀 안난다고 했는데, 그 공간속에 들어와 보니 그제야 어렴풋이 기억 나는 듯 했다. 마침(?) 어떤 아이가 계속 떼를 쓰며  울고 있는 소리가 들려서 아이들이 어릴 때 기억이 저절로 소환 되었다. ㅋㅋ 일단 식당에 들어 오니, 다시 언제 올까 싶기도 하고, 마음이 흥분되어 모든 메뉴를 다 시키고 싶었지만, 칼국수와 두부 두루치기, 면사리를 주문했다. (다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이것도 많이 남았고, 그렇게 남겼는데도 다음날 몸무게가 1kg 늘어 있었다. ㅜㅜ) 맛있어서 많이 먹었다기 보다는 다시 올 수 없을 것 같아서 먹을 수 있을데까지 먹었다고 하는게 맞을 것 같다. 물론 맛도 있었지만, 평소의 내 섭취량을 훨씬 초과하는 양을 먹은 이유는 추억을 되새기고 그때도 지금도 계속 기억하고 싶었던게 컸던 것이다.


우리는 두부 두루치기를 먹은 후, 디저트로 고디바의 초콜릿 아이스크림이 올라간 아이스 초콜릿 음료를 먹기 위해 갤러리아 백화점에 갔는데, 주차장 입구에서 마침 아이가 좋아하는 티모시 샬라메의 '샤넬' 광고 사진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티모시 샬라메와의 만남은 조성진 공연의 복선이 되었다.


공연전에 연주될 곡을 미리 다 들어보고 갈 때도 있지만, 게을러서, 한편으로는 새롭게 만날 곡에 대한 기대감으로 공연장에 그냥 갈 때가 많다. 조성진의 이번 대전 공연 프로그램은 브람스의 피아노 소품, 작품 76 중 1,2,4,5번과 라벨의 거울 1-5곡, 슈만의 교향적 연습곡, 작품 13 이었지만, 사실 모두 익숙하지 않은 곡들이고, 미리 들어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공연장에서 우리는 깨달았다. 라벨의 세번째 곡이 흘러나올 때 언젠가 많이 들어 본 것 같았다는 것을. 집에 와서 찾아보니, 그 곡은 바로 티모시 샬라메가 나온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 o.s.t.에 실린, 라벨의 거울 3곡<대양 위의 조각배 Une barque sur l'ocean>이었다. 미리미리 아는 것도 좋지만, 뒤늦게 집에 와서 찾아보며 아이와 "어쩐지 들어본 것 같더라니.." 하며 같이 웃는 순간도 좋았다.


아이는 나와 공연에 함께 다니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고1이 된 아이에게,  초2때부터 내가 조성진을 좋아했으니,  자신에게도 나름 그동안의 시간이 쌓여서 조성진과 관련된 추억이 밀려오는 듯 했다. 조성진이 2015년 쇼팽 콩쿨 우승 직후 내가 거의 세달간 매일 조성진 쇼팽 콩쿨 공연을 유튜브로 들었던 기억, 그리고 아이도 마침 그 당시에 '가족 음악회'에 곡을 준비해서 공연했던 기억, 조성진의 국내 공연 티켓이 너무 구하기 힘들어서, 가족 여행을 핑계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일본 삿포로로, 미국 워싱턴 D.C.로 공연을 보러 갔던 기억이 밀려오는 듯 했다. 그리고 친구들이 '문화 생활'을 즐기는 자신을 부러워할거라며,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공연 티켓 사진을 찍어 올리기도 했다. 아이는 그동안 조성진 공연을 갈 때마다 재미도 없고 힘들다면서 불만이 많았는데, 이제서야 우리가 쌓아온 시간이 어떤 의미인지 실감하고 즐기는 듯 했다. 게다가 아이가 좋아하는 티모시 샬라메가 나온 영화의 음악을 조성진이 연주했으니, 더 이날의 공연이 의미 있을 수 밖에. 더불어 조성진이 앵콜로 연주한 쇼팽의 영웅, Polonaise in A flat major Op. 53는 우리가 또 한번 공감할 수 있는 곡이기에-이 곡은 쇼팽 콩쿨 우승자 연주 때 앵콜로 했던 곡이기도 한데, 내가 이 곡을 앵콜로 들은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공연 때가 유일했기에 아이가 아는 몇 안되는 쇼팽 곡중 하나인 이 곡을 함께 들을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면서 의미 있었다-우리는 더욱더 흥분할 수 밖에 없었다. 아이와 함께 조성진의 공연을 마음껏 즐긴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닌가 싶다. 이렇게 추억의 레이어가 한겹 더 쌓였으니, 다음 조성진 공연에 함께할  때는 우리가 나눌 이야기도 더 많고, 더 즐길 수 있겠지?


대전 관객의 공연 매너 덕분인지, 조성진이 컨디션이 좋았기 때문인지, 이날 공연의 앵콜은 총 다섯곡이나 되었다. 당연히 세곡 정도로 생각했는데, 나도 공연을 보면서 한 곡의 마지막 음의 여운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환호 하지 않고, 조용히 박수치는 관람객들이 마치 삿포로에서 만났던 '지나치게 절제된 공연 매너'를 보여준 일본 사람 특유의 캐릭터를 지닌 관객들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이들이 (마지막이라고 짐작한) 세번째 앵콜곡, 쇼팽의 영웅, Polonaise in A flat major Op. 53 끝나고 나서는 단체로 기립을 하면서 환호성을 지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고 감격할 수 밖에 없었다. 그동안 무수히 들었던 폴로네이즈 영웅과는 또 다른 느낌. 정말 무르익었으면서도 생동감 있고, 또 팬의 입장에서 얼마나 그 곡을 소중하게 기억하고, 또 기다렸는지 조성진도 이해하는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서로가 공유한 그 감격이 결국 전달 되었던 것인지, 연이어 두 곡을 더 앵콜곡으로 연주해 주기도 했다. 조성진과 함께 한 것 뿐만 아니라, 그 시간에 내가 모르는 사람들과, 우리 모두가 평생 기억할 순간을 함께 만들었다는게 그저 놀랍고 행복했다.



공연이 끝난 후, 여운이 남아, 아이와 한가지 더 추억을 만들어 볼까 싶어서, 집에 가는 시간을 좀 더 늦춰 볼까 했는데, 아이와 스테이크 등 기념이 될 만한 음식을 먹을 까 하다가 아이가 간단히 먹고 싶다고 해서 다시 백화점으로 갔다. 번화가의 주차 문제도 있고, 백화점 마감 시간에는 식품 할인도 하니까. 아이는 샌드위치를 골랐고, 나는 생각보다 많이 줄어든 예산 + 아이 생일 기념(?) 겸 해서 와인을 골랐다. 조성진 공연을 보았으니, 조성진이 좋아하는 와인인, 그동안 궁금했으나 한번도 마셔보지 않는 상세르Sancerre를 사기로 마음 먹었다. 백화점 와인 매장에서 상세르의 종류는 세가지가 있었으나, 가장 저렴한 것으로, 하지만 비비노Vivino 점수나, 후기를 찾아보고 가성비 괜찮은 상세르로 고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집에 와 마셔보니, 산뜻하고 맑은 느낌에 산도가 강하지 않은 것이 부담스럽지 않고, 여름에 잘 어울리는 맛이다.



아이와 집에 오면서는 90년대 중후반 팝송을 들으면서 왔다. 들으면서 깜짝 놀란 것이, 나오는 대로 나에게 다 익숙한 곡이었다는 것이다. 대신 가요든 팝송이든, 2000년대 중반- 2010년대 중반까지는 사실 잘 모르는데, 그렇게 돌아보니 나의 시간은 20대 초중반,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서 멈춘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기억으로 평생 산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격동의 사춘기가 비로소 지났는지, 다시 나와 함께하는 걸 즐기게 된 열여섯의 아이는 이렇게 두시간여의 로드 트립을 하면서 나와 90년대 후반의 노래들을 함께 듣는 것이 너무 재밌고 행복하다고 했다. 아이는 결코 겪어본 적이 없는 90년대, 그 시절을 너무나 그리워 하고 있다. 내가 마치 십대 시절에 겪어 본 적 없는, 60년대를 그리워 했듯이.


오늘의 표현

‘이제서야 우리가 쌓아온 시간이 어떤 의미인지 실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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