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서를 쓰는 사람들
스무살 때, 가끔 서로의 집으로 편지를 보냈던 친구가 있었다. 둘 다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고, 시간이 되면 만나기도 했으니, 굳이 편지를 주고 받을 이유가 없었지만, 직접 만나서 하지 못하는 이야기, 혹은 못다한 이야기를 편지로 썼던 것 같다. 2018-2019년에 플로리다 올랜도에서 1년여간 살게 되면서, 그 친구가 서로에게 엽서를 쓰자고 제안을 했다. 해외 어디서든 실시간으로 연락이 가능한 시대에, ems 우편도 아니고, 엽서라니...아무튼 오랜만에 미국에 가는데다가, 일년이나 시간이 주어진 데에 대한 기대와 설레임에 마음이 움직였고, 결국 친구와 엽서를 주고 받기 시작했다.
또 나는 지금은 가장 친밀한 책친구이자 술친구가 되었지만, 당시에는 새로 알게 된 친구와도 엽서를 주고 받게 된다. 같은 나이이고, 같은 커뮤니티에 있었지만, 왠지 어색한 사이였다가 우연히 둘다 블로그를 하는 걸 알게되면서 비로소 소통을 하기 시작했다. 그 친구가 예전에 쓴 책을 선물 받고, 그 책과 함께 끼워져 온 엽서 속 정갈한 글씨에 나는 온 마음을 빼앗기게 되었다. 그 후 나는 때론 답장을 받지 않아도, 좋은 곳을 갈 때나,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기면 바로 바로 엽서를 써서 보냈다. 원래 친했던 것이 아니라, 멀리 떨어지고 나서야 친해졌고, 직접 만나지 못하기에 궁금함이 더해져 더욱 애틋하기도 했던 것 같다.
스무살에 친해진 친구, 마흔살에 친해진 친구와 동시에 거의 일년 동안 엽서를 주고 받았다니, 운명같은 느낌도 있고, 어떻게 그런 일을 벌였나 싶다. 겨울이 없는 플로리다이기에 마이애미에서 한여름의 크리스마스를 보내며 뭔가 마법에 걸린 듯한 기분이었는데, 정말 플로리다 매직인 것인지, 이 엽서를 주고 받은 기억은 지나고보니 하나의 판타지다. 편지든, 엽서든, 블로그든, '글쓰기'라는 수단으로 나와 가까워진 두 사람이기에 이런 소통이 자연스럽기도 했지만, 사실 일상 속에서 이 일을 지속하기도 쉽지 않고, 우편 시스템의 협조 없이는 더더욱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배송추적이 안 되는건 물론이고, 봉투에도 담기지 않은 엽서 달랑 한장이 그동안 어떻게 한통도 빠지지 않고 온전히 각자에게 전달이 되었을까. 가끔 글씨가 좀 알아보기 힘들어도, 주소가 불완전 해도 어찌 어찌 잘 도착한 엽서들을 모아 보다 보면, 이 엽서들이 거쳐온 여정을 상상해 보게 된다. 미국에서 일본으로, 미국에서 한국으로, 또 그 반대로도.
나는 플로리다에 머물면서 다른 도시로도 여행을 많이 했는데, 그때마다 친구들에게 엽서를 보내기 위해 꼭 우표를 챙겨 갔다. 엽서와 우체통은 여행지에서 비교적 찾기 쉽지만, 우표는 구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나 홀로 여행이 아니기에 늘 여유로울 수 없었다. 그래도 여행 틈틈이 잠시 쉬는 까페에서나, 호텔로 돌아와서 친구들에게 엽서를 쓸 때 가족의 여행 가이드 역할에서 벗어나 비로소 나만의 시간을 갖는 듯 했고, 여행지에서 겪은 그날의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전달하는게 무척 행복했다. 나는 그후로도 다른 나라에 여행갈 일이 생기면, 미술관, 서점과 더불어 꼭 우체국을 찾게 되었다.
또한 나는 여행지에서 친구들 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엽서를 보냈다. 여행지에서 내가 느낀 짤막한 소감과 더불어 가족들에게도 한 마디씩 적어주기를 부탁했다. 한 마디도 귀찮은 사람은 자기 이름만 쓰기도 했지만. ㅋㅋ. 지나고 보니 그것도 나름의 기록이 되었다. 플로리다에서 광주로 돌아왔을 때, 그동안 내가 나에게 보낸 엽서를 모아 보니, 사진으로 기억을 남긴 것과 또 다른 의미가 있었다. 그 엽서들에는 내가 머물렀던 그 공간, 시간의 흔적이 보이지 않아도 분명히 담겨 있을테니까.
친구들에게 엽서를 보내고 도착하기까지, 그 참을 수 없는 기다림의 공백은 무엇으로 채웠을까. 역시 마흔살에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술, 이 아닐까. 그동안 가끔 마주쳐도 결코 친해지지 못했던 술과 나는 그때부터 서로를 점점 알아가기 시작했다. ㅋㅋ. 한편 본격적으로 작품을 쓰는 건 아니어도, 가끔 일기든, 엽서든 항상 무언가를 '쓰는 사람'의 마음으로 살던 나는, 우연히 넷플릭스의 음식 여행기를 보다가 'writer's tears'라는 아이리쉬 위스키를 알게 된다. '작가의 눈물' 이라니..이 위스키의 태생적 배경과 맛이 어떻든 나는 그 이름부터 완전히 반해 버렸다. 그리고 궁금함을 참을 수 없어서 구글로 재고를 검색해 보고 그나마 가장 가까운 대형 주류 마트를 향해, 차로 40여분 거리를 달려가게 된다. 매장에 딱 두병 남아 있던 'writers’ tears' 위스키. 한 병은 내 것, 한병은 실제로 writer이기도 한 친구의 것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쓰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곁에 '쓰는 친구들'이 있지 않았다면 내가 그 'writers’ tears' 라는 이름에 그렇게 매료되었을까 싶다. 아무튼 그 후로 길쭉한 병에 담긴, 캐러멜 빛에 바닐라 향이 나는 위스키를 항상 책상 앞에 두고, 영화에서 작가들이 글을 쓰다가 'writer's block'에 놓일 때 위스키를 찾는 장면들을 찾아 보며, 작가의 마음을 짐작하거나, 흉내내 보려고 했던 것 같다. 당시 와인을 겨우 알아가던 나이기에 위스키의 맛을 잘 알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나의 첫 위스키가 'writers’ tears' 인건 마음에 든다. 나만의 술 이야기를 쓰기에 어울리는. 술을 마시다 보면 쓰기 보다 말하기가 더 쉬워지는 것 같지만…아무튼 황금빛 액체가 검은색 글자로 전환되는 마법, 불안한 기다림이 즐거운 기대가 되는 마법, 낱장의 엽서가 어떻게든 목적지에 도달하는 마법, ‘쓰는 사람들‘ 끼리 서로의 공감대를 갖게 하는 마법, ’writers’ tears' 위스키는 플로리다에서 벌어진 마법들의 ‘spirit‘, 그 자체 였다.
오늘의 표현
‘술을 마시다 보면 쓰기 보다 말하기가 더 쉬워지는 것 같지만’
#간식시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