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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용원 Apr 11. 2020

[문학생산이론을 위하여](1966) - 피에르 마슈레

'작품'은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생산'된다

'작품'은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생산'된다
- [문학생산이론을 위하여](1966), 피에르 마슈레, 배영달 옮김, <백의>, 1994.




"작가는 질문을 제기하지만, 그것에 답하지 않는다."
- 프리드리히 엥겔스.


1965년, 프랑스 구조주의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는 [마르크스를 위하여]라는 저작을 통해,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관점에서 '과학'과 '이데올로기'를 구분하였다. '대상'을 가지고 '지식'을 생산하는 '과학'과 말 그대로의 '허위의식'이지만 물질적 힘을 지니는 '이데올로기'를 구분하는 것이 '이론에서의 계급투쟁'인 '철학'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이듬해인 1966년, 프랑스 구조주의 문학비평가 피에르 마슈레는 [문학생산이론을 위하여]라는 저서를 통해, 이러한 알튀세르의 작업을 '문학'의 영역으로 심화하여 '과학적 비평'을 정초하면서 하나의 '과학'으로서 '문학비평'과 '이데올로기'의 관계를 밝히려 한다.
마슈레는 문학 자체가 하나의 '이데올로기'적 제도로서 존재하는 한, '문학비평'은 '이데올로기'와 단절하고 '과학'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문학생산이론'은 '과학'적 '문학비평'에서 출발한다.


"적어도 '(문학)비평'이 자연발생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처럼, '비평'은 항상 '부정'으로부터 시작하며, '비평'의 기본적 행위는 (이데올로기로서의 작품에 대한) '거부의 행위'이다. 그러나 '비평'은 인식을 불러일으키기를 기대하며, 그리고 '비평'이 행하는 권리는 결정적인 것으로 인정되어야 한다. '비평'은 '허위(이데올로기)'를 폭로함과 동시에 '진실(과학적 진리)'을 말하고자 한다... 읽는 것... 그것은 바로 (이데올로기로서 작품의) '파괴'라는 '부정'적 의미에서 비판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읽기'에 의해 작품은 '파괴'된다."
- 피에르 마슈레, [문학생산이론을 위하여], <1부. 몇 가지 기본적 개념들>, 1966.

사회구성체의 결정적 '최종심급'으로서 경제적 토대와 상호 영향을 미치는 상부구조로서 '이데올로기'의 영역에 속하는 '문학'은 하나의 '과학'이 되어야 하는데, 이 '문학'을 인식하는 것은 '해석'이 아니라 '설명'하는 것이다.
'설명'하는 것은 마슈레에 의하면, "작품을 결정짓지만 어떤 의미로 확실히 귀결되지 않는 필요성을 알아보는 것"(같은책)으로서 "작품의 필요성은 그 의미의 '다양성'에 의거"하며 "작품을 '설명'하는 것은 이러한 다양성의 원리를 인정하고 '구분'하는 것이다."(같은책)

그리하여, 문학비평을 통해 "문학작품을 아는 것은 그것을 '분해'하고 그 '허구'를 깨닫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지식'을 '생산'하고 그것의 '침묵'의 의미를 알리는 것이다."(같은책)
따라서, '이데올로기'는 "작품의 그물 속에서 파악되기 때문에, 하나의 새로운 지위를 받아들이며, 그것의 직접성은 변형"되어 결국 "과거의 환상으로부터 '허구'적인 것이 된다."(같은책)
문학작품을 '설명'하려는 충동은 문학 내의 실제적 기능을 내포하는 환상의 메커니즘으로서의 언어 사용인 '이미지' 그 자체와 다른 것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미지'에 위치를 부여하는데, 개개의 '이미지'를 증가시키고 새겨놓은 이 작업은 "질서의 탐구"로서 '과학'적 작업이다.
또한, 텍스트를 '창작'하는 것은 이 "질서 탐구"의 "끊임없는 재파악"이다.


"작품은 어떤 작업의 산물이자 기술의 산물이다. 그러나 모든 기술은 인위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마술사나 흥행사의 일이 아니라 '노동자'의 일이다. 이 노동자의 힘은 '무(無)'로부터 완전히 선택된 형식을 생겨나게 하는 전혀 기적같은 것이 아니다... 텍스트 '생산자'로서의 '작가'는 특히 그가 가지고 일하는 재료들을 만들지 못한다."
- 피에르 마슈레, [문학생산이론을 위하여], <1부. 몇 가지 기본적 개념들>, 1966.

'문학생산'은 '무(無)'로부터 '유(有)'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다. '작가'는 '재료'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 있는 '재료'들을 배열하고 '질서'를 부여하면서 생산하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문학생산'의 조건은 "처음에 주어진 것, 즉 말의 경험적 의미에서 원인이 아니라 모든 작품을 측정할 수 있는 '합리성'의 원리"인데, "작품의 조건들을 인식하는 것은 그 구성의 실제 과정을 강조하는 것, 즉 실제로 다양한 요소들이 어떻게 작품을 구성하고 작품에 '일관성'을 부여하는가를 보여주는 것"(같은책)이다.

작가는 언어와 문자를 통해 구체적이고 역사적으로 '이데올로기'를 드러내는데,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사용'을 하는 '작가의 담론'은 "이론적 언표를 모방"하고 "그것의 기준을 반복"하며, "이 담론은 역시 '이데올로기'의 언어인 일상어를 모방"하고 "이 끊임없는 대조 속에서 언어의 실제 사용들을 혼합하는 문학은 마침내 언어의 '진실'을 드러내고 만다"(같은책).
마슈레는 작가가 "설사 언어를 만들어내지는 못하더라도, 언어로 실험하는 문학작품은 '지식'의 '유사물'인 동시에 일상적 '이데올로기'의 기묘한 모방"(같은책)이다.

따라서, '문학'은 '이데올로기'이고 '작가'는 언어를 '이데올로기'적으로 사용하여 현실을 드러내며, '문학비평'은 이러한 '문학'을 '설명'하면서 현실에 대한 '지식'을 생산하는 '과학'이 된다.


"작가는 어떤 시대에 연결되는가라는 질문은... 방법적으로 '과학'적 비평의 최초의 질문이다."
- 피에르 마슈레, [문학생산이론을 위하여], <2부. 톨스토이 비평가, 레닌>, 1966.

러시아 혁명가 레닌은 러시아 소설가 톨스토이를 '비평'하면서 "문학작품은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이라고 하는데, 마슈레는 톨스토이에 대한 '문학비평가' 레닌의 작업을 조명한다.
'작가'는 그 시대의 역사적 상황을 조망하지는 못하는데, 이론가로서 '비평가'는 이것이 가능하도록 하는 '과학자'이다.
'과학'은 '이데올로기'를 폐기하고 작품은 '이데올로기'를 이용하면서 동시에 거부하는데 '이데올로기'의 비체계적인 '의미작용'에 대한 다양한 독서를 제안하며 이것들을 언어의 '기호'들로 결합해낸다. '과학'으로서 '비평'의 역할은 "이 기호들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가르치는 것"이다.
'문학작품'이라는 '거울'을 통해 '대상'은 완성되면서 '파편화'되는데, 문학적 '이미지'들은 이 '찢어짐' 속에서 나온다. '총체성'을 담보하지 못하는 '개별적' 문학작품에 '과학'적 문학비평은 그 '보편성'을 부여한다.

"... 레닌은 문학작품이 허망한 '총체성'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필연적이고 실제적인 구분 속에서 단지 연구될 수 있다고 우리에게 말한다."
- 피에르 마슈레, 같은책, 같은 부분.


[문학생산이론을 위하여] <3부>는 '몇 가지 작품들'에 대한 논고인데, '과학소설가' 쥘 베른느의 '불완전한 이야기'도 그 중 하나이다.

"쥘 베른느의 '문학적 실패', 이 시도의 취약함은 바로 그의 책들의 '소재'를 이루는 것이다. 따라서 베른느의 화해의 모든 이미지가 어떤 갈등의 묘사로 귀착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 피에르 마슈레, [문학생상이론을 위하여], <3부. 쥘 베른느 혹은 불완전한 이야기>, 1966.

자본주의 체제에서 그 어떤 '기술적 진보'도 현실의 '계급투쟁'을 담지 않는 한, '미래'를 생각할 수도, 재현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과학기술' 발전을 '소재'로 하는 프랑스 '과학소설가' 쥘 베른느는 역설적이게도 결코 '과학'적이지 못하다.
엥겔스가 발자크 소설에서 부르주아계급의 '고상한 현실'을 그려내면서 그들의 '추락한 본질'을 의도치 않게 드러낸 것과 같은 '리얼리즘'적 '이중성'을 발견했듯, '문학비평'은 '문학작품'의 '이중성'을 설명해야 하는데, 쥘 베른느는 '과학기술'의 이름으로 현실의 '계급투쟁'을 탈색함으로써 그 '이중성'을 보여주며, 그로 인해 그의 이야기는 "불완전한 이야기"로 머문다.


"... 예술은 (부르주아 휴머니즘적) '인간의 활동'이 아니라, (어떤 상황이나 체계의 요소로서의) '생산자'의 활동이다."
- 피에르 마슈레, [문학생산이론을 위하여], <3부>, 1966.

'문학작품'은 부르주아적으로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계급투쟁'의 현실을 토대로 '생산'되는 것이다.

***

1. [문학생산이론을 위하여](1966), 피에르 마슈레, 배영달 옮김, <백의>, 1994.
2. [마르크스를 위하여], 루이 알튀세르, 고길환/이화숙 옮김, <백의>,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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