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용원 May 16. 2020

[40주기] 1980.5.18 광주민중항쟁

[봄날] 1~5권, 임철우, <문학과지성사>, 1997.

5.18 광주민중항쟁
- 신군부 쿠데타 세력에 의한 계엄령 선포와 광주민중들의 항쟁



"윤상현(소설 속 윤상원 열사)! 넌 왜 스스로 죽음을 택하려 하는가?...
누군가는 이 자리를 지켜야 해. 지난 열흘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바쳐 이어온 이 뜨거운 항쟁의 마침표를 누군가는 찍어야 해. 그리고 그것을 누군가 해야 한다면, 그렇다면 내가 하겠다는 거야. 이유는 다만 그것 뿐이야. 저 불의한 압제자들에게 이 자리를,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그냥 고스란히 내어줄 수는 없어. 절대로. 그것이야말로 저들의 승리를 완전히 인정해 주는 것이 되고 말 터이므로... 이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설사 이 순간엔 우리의 싸움이 패배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결코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일 뿐이야. 훗날 다른 누군가가 이 싸움을 다시 시작하겠지. 그래, 아무 것도 헛된 것은 없어. 우리가 꿈꾸었던 것, 사랑하고 소망하고 투쟁했던 것, 진정 그 어떤 것도 헛된 것은 없어..."
- [봄날] 5권, '1980. 5. 27. 윤상원 열사의 독백', 임철우, <문학과지성사>, 1997.


들불야학 선생으로 1980년 5월 27일 전남도청을 지키던 서른 살 윤상원 열사의 심경을 작가 임철우가 그의 소설 [봄날]에서 재구성한 대목이다.

1980년 5월의 광주에서 스물여섯 살이었던 소설가 임철우는 '살아남은'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그런 스스로와 '화해'도 하지 못한 채 항쟁 후 17년이 지난 1997년에 '광주민중항쟁'의 일지를 소설로 재구성했는데, 바로 소설 [봄날]이다. 주인공은 가상의 인물이되 시공간은 사실 그대로를 배경으로 하는 논픽션 르포문학이다.
'민중의 애국가'인 [임을 위한 행진곡]이 기리는 '영혼결혼식'의 주인공인 윤상원 열사는 5월 광주의 마지막 날이었던 1980년 5월 27일, 최후까지 전남도청을 지키던 시민군들과 함께 본인이 국민으로 살았던 국가의 군대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1980년 5.18 광주민중항쟁은 대한민국 정규군대가국민을 상대로 벌인 대규모 '군사작전'이었다.



1979년 10월에 독재자 박정희가 저격 당하면서 길고 긴 18년 간의 군부개발독재가 일단 종식되었고, 1980년 봄은 전국에 걸친 민주화의 물결로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1980년 5월 15일, 약 10만여명의 학생과 시민은 자발적으로 서울역에 모여 조속한 시일 내에 계엄을 해제하고 민주화를 추진할 것을 주장했으나 시위와 농성이 계속될 경우 군이 개입할 명분을 준다는 주장이 나오자 지도부 역할을 하던 대학생들은 시위를 해산하기로 결정하고 서울역에서 물러난다. 이를 사람들은 '5.15 서울역 회군'이라 부른다.

이후 바로 전해 '12.12 쿠데타'로 이미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의 신군부는 각 대학에 휴교령을 내리고 5월 17일을 기하여 비상계엄 전국확대와 국회 해산, 국보위 설치 등의 조치를 단행하게 되는데, 전두환 '신군부'의 1979년 '12.12 쿠데타'에 이은 1980년 5.17 '2차 쿠데타'였다.

이날 광주에서는 신군부의 계엄령 확대에 우려를 표명하면서 전남대 등지에서 대학생들이 횃불 시위 등을 계획하였다. 하지만 역사적인 5월 18일, 신군부는 대학생들의 시위를 두려워하여 각 대학에 휴교령을 내렸고 학교 안으로 들어가려는 대학생들과 군인들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면서 학생들에 대한 군인들의 무자비한 시위 진압이 시작된다.
전남대 앞에서의 진압은 5.18 광주민중항쟁의 첫 시작이었다. 이어 학교에 진입하지 못한 학생들이 광주 시내에 모여 군대를 물릴 것을 요구하는 시위가 전개되었고 군대는 밤 9시 이후 통행금지 조치까지 내렸으나 민주화를 열망하는 광주민중들의 시위는 더욱 거세어질 뿐이었다. 이에 신군부는 광주지역을 고립시키고 특수부대 및 군인들을 증파하여 무자비한 폭력과 심지어는 군용칼까지 휘두르며 광주시민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고 잡아간다. 하지만, 신군부의 이러한 진압행위는 광주민중들의 분노를 더욱 폭발시키는 도화선이 되었고 시위와 항쟁이 더욱 들불처럼 번지게 된다.
 
5월 20일, 고등학생들까지 시위대에 참여하게 되었고 신군부는 고등학교에까지 휴교령을 내렸다. 택시와 버스들도 차량시위를 벌이면서 광주민중들의 항쟁은 커져만 가는데, 신군부의 통제를 받은 방송과 신문은 고립된 광주의 상황을 ‘북한의 명령을 따른 폭도들에 의한 것’이라고 허위보도를 일삼는다.
 
5월 21일, 신군부는 금남로에서 시위 중이던 시민들을 향해 무차별적 집중사격을 하였고 수많은 시민들이 죽어가면서 광주민중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경찰서와 탄약고를 습격해 무기를 탈취하였다. 스스로 무장한 시민군은 군대를 광주 외곽으로 몰아내고 그들이 다시 몰려오는 5월 27일까지 광주의 질서를 유지한다. 기록에 의하면 이 짧은 시간 동안 광주는 그 어느 때보다 평화로웠고 범죄도 거의 일어나지 않았으며 시민들이 서로를 위로하며 격려하는 등 ‘파리꼬뮌’이 아닌 이른바 ‘광주꼬뮌’으로 불릴 정도의 '민중 자치의 해방구'였다고 한다.
 
5월 27일 새벽, 신군부는 탱크까지 앞세우고 시내로 진격해 들어왔고, 시민군은 마지막까지 도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다. 하지만, 중무장한 정규 군대를 시민군이 당해낼 수는 없었고 끝내 도청에 남아있던 많은 시민들이 죽임을 당함으로써 5.18 광주민중항쟁은 비극으로 끝난다.


12.12 쿠데타로 대통령 최규하를 허수아비로 만든 보안사령관 전두환은 5.27 전남도청 진압작전을 위한 '대책회의'에서 '광주사태'에 대한 '강경진압'을  지휘했고 '조기진압'을 위해 군대가 광주 시민들에게 직접 사격을 한 날 진압군에 '하사금'을 내리기도 했다.
전두환이 광주 학살의 책임자라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다. 이제 그 자에게는 '옥사(獄死)'의 길 밖에 없다.



역사학자 서중석 교수는 '이명박근혜 정권'의 '뉴라이트' 역사왜곡에 대항하여 해방 이후 한국전쟁과 18년 박정희 군부독재 시기를 거쳐 전두환 학살정권에 이르는 우리 현대사를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 기자 김덕련과의 문답 형식을 빌어 정리했다.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16권은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 이야기이고, 17권은 광주민중을 학살하고 집권한 '5공화국' 학살정권의 '잔혹사'를 다룬다.

소설 [봄날]에서 윤상원 열사의 입을 빌어 말한 "우리가 패배할지라도 훗날 다른 누군가가 다시 시작할 이 끝나지 않는 싸움"은 이후 1987년 '6월 민주항쟁'과 그 해 '8월 노동자 대투쟁', 1996년의 '총파업', 2002년과 2008년의 대규모 '촛불시위'와 최근의 2016~17년 '촛불항쟁'으로 계속 되살아나 우리 역사를 전진시켜 왔다.


우리 역사에서 5월 18일은, 당시 전두환 신군부 쿠데타 정권의 파쇼적 실체와 이에 대항한 우리 민중들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 그리고 세상의 주인인 우리 민중들을 폭력만으로 억압하고 통치할 수는 없다는 역사적 진실 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민주주의의 역사적 '아이콘'이 되어왔고, 이후 이 땅 민주주의 역사의 살아있는 교본이자 이 땅의 민주주의와 노동해방을 이루고자 하는 후세대들에게는 기어이 한을 풀지 못한 하나의 ‘원죄’가 되어 왔다.


"... 긴 시간이 흘렀지만, 밝혀야 할 사안은 지금도 적잖게 남아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뻔뻔한 거짓말과 터무니없는 궤변으로 오월 광주를 어떻게든 폄훼하려는 세력이 여전히 날뛰고 있습니다. 오월 광주 문제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오월 광주의 진실을 잊으면 민주주의의 미래는 없습니다."
-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16~17권, '나가는 말', 서중석/김덕련, <오월의봄>, 2019.


# 5.18 광주민중항쟁 과정에서 산화해 간 민주주의 영령들의 넋을 기립니다.


***

1. [봄날] 1~5권, 임철우, <문학과지성사>, 1997.
2.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16~17권, 서중석/김덕련, <오월의봄>, 2019.



이전 09화 [오래된 서울] - 최종현/김창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