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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용원 Feb 12. 2021

[구정공세(舊正攻勢)] - 2021.2.12. 설날

신축년(辛丑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신축년(辛丑年),
즐거운 명절과 복된 새해 기원합니다! ^^*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양력'과 '음력'을 각각 문명과 야만의 표상으로 설정한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식민지 조선에서는 오히려 '양력'에 대한 저항이 더 집요했다. 조선인들의 의식 깊은 곳에는 '음력을 지키는 것'이 일제의 민족문화 말살 책동에 대한 저항이라는 생각이 있었던 듯 하다... 해방 이후에도 정부는 계속... '음력'을 소멸시키려고 애썼으나,... 오히려 1980년대에는 정부 스스로 '음력설'을 공인할 수밖에 없었다."
- [내 안의 역사], '한국의 역제, 음/양력의 공존 이유', 전우용, <푸른역사>, 2019.


물론, 오랜 역사를 지닌 '음력' 역제(曆制)는 조선말 고종 때까지도 중국의 '책력(冊曆)'을 받은 것이었다.
대한제국의 갑오개혁 이후 서양 신문물인 '양력'을 쓰기 시작하여 '음/양력'을 혼용하다가 일제강점기에 공식적으로 '음력'이 폐지되었으나 일제는 자기들 메이지유신의 역제인 '양력'은 '문명'으로, 조선민중의 오랜 역제인 '음력'은 '야만'으로 구분했단다.
오랜 사대주의적 책력이었을 수도 있었지만 조선 민중은 '음력'을 지키면서 일제강점기 저항정신을 표현했을 수도 있다.


([내 안의 역사], 전우용)
https://brunch.co.kr/@beatrice1007/80


모든 기념일을 '양력'으로 쇠는 나는 사실, 부모님의 '음력' 생신도 잘 기억 못하여 매년 적어놓은 메모를 다시 찾아봐야 한다. 오래전 그 많던 집안 기일과 제사일을 다 기억해야 했을 우리네 어머니들과 종부들의 노고가 새삼스럽기도 한데, 아마도 자연의 순리대로 뿌리고 거두었을 농부들은 달력도 없이 24절기를 기준으로 농경를 했을 게다. 누군가는 나랏님이 뿌려준 중국의 '책력'을 보았을 수도, 어떤 이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전승된 하늘의 별자리를 보는 법을 통해 절기를 가늠하기도 했겠지만 아마도 이 모든 시기의 시작은 '설날'이었을 것이다.

농담이기는 하나, 나이든 선배나 친구들 중에 생일이 SNS상에 뜨면 나는 '음력' 아니냐 먼저 묻는데 나보다 선배 세대는 대부분 '음력' 생일이 맞다. '문명'의 이름으로 밀어붙이던 '양력'의 '신정공세'에 맞서 우리 조상들은 굳이 정치권력에 의해 달력에서도 지워지려던 '음력'으로 자식들의 출생신고를 하셨다.
1960년대 미 제국주의에 패배를 안겼던 '베트남 전쟁'의 중요한 분기점은 '구정공세(舊正攻勢 / Sự kiện Tết Mậu Thân : 1968)'였는데, '뗏'이라는 '음력설'을 쇠던 베트남 민중의 내전에 '양력'을 앞세운 자본주의 '신문명국' 미국이 개입하면서 참화를 키운 '신정(新正)공세'가 먼저일 수도 있겠다.

1961년 베트남 민족해방전선(NLF) 결성과 1964년 '통킹만 사건'이라는 미국의 조작사건을 빌미로 한 미국의 군사개입으로 베트남은 또 다시 강대국의 식민지가 될 처지에 놓이지만 우리 역사 못지 않게 수천년 '중화주의'의 압력에도 꿋꿋이 스스로의 역사를 지켜낸 베트남 민중들은 숱한 희생을 감수하며 해방투쟁를 이어갔다. 이 전쟁의 분기점은 아마도 1968년 1월말의 '구정공세'일 것인데, 1968년 베트남의 '음력' 설을 맞아 일시적 '휴전'을 예상했던 미군에게 베트남군이 제대로 한 방 먹인 전술이었다. 물론 희생은 엄청났고 군사력이 우세한 미군이 전투에서는 승리했으나 전세계적 반전평화운동을 이끌어낸 '세계전쟁'에서는 베트남이 승리했다. '명절연휴'를 다 바쳤던 베트남 민중의 이 희생은 미국은 물론 유럽을 포함한 전세계 자본주의 '문명국' 민중들을 각성케 했고, 1968년 그 해 5월의 유럽 '68 혁명'과 1970년 미국 반전운동을 촉발한 주요사건이 된다. 약자를 대변하며 강자에 대항하는 형식으로 전개되는 반전운동은 자연스레 온갖 차별에 대한 저항운동과 맞물리면서 '신좌파'의 '상상력'을 확장시켰다.

1968년 유럽의 '신좌파' 혁명으로 불리는 '68 혁명'이 있다. 2차 대전 이후 세계 정세에서 소련과 미국으로 대변되던 기존 이념과 체제의 대립은 정치경제 체제를 둘러싼 '하드코어' 투쟁이었다. 자본주의 착취 경제체제를 뒤집어 엎기 위해서는, 보통선거권 획득 전에는 '폭력혁명'으로, 보통선거 이후에는 '의회다수' 전략으로 정치권력을 잡아야 했다. 세상을 바꾸려면 바로 '정치투쟁'으로 직행해야 했다. 그러나 '68 혁명' 이후로는 정치와 경제 외 '사회문화' 영역으로 혁명의 전선이 확장된다. 정치경제적 '평등' 못지않게 성평등과 인종간 평등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진정 '보편 인권'에 대한 관심이 확장되었다.
비록 1968년 '신좌파 혁명' 또한 그 지도적 세대들이 기존 정치제도에 포섭되면서 '실패'했다지만, 지금도 '미투 운동'과 각 부문의 사회운동으로 '평등'과'정의', 온갖 차별과 억압에 대항한 투쟁이 무한확장되는 과정에서 이들 '신좌파의 상상력'의 역사적 공헌은 의미가 크다.

내가 생각하는 '68 혁명'의 의의는 공고해진 일체의 기득권력에 끊임없이 균열을 내는 끝나지 않는 운동이자 투쟁이다.



([신좌파의 상상력], 조지 카치아피카스)

https://brunch.co.kr/@beatrice1007/67


어릴적부터 '구정', 즉 '음력설'은 내게도 일년 중 가장 푸근하고 평온한 기간이다. 중년의 지금은 집안 어른들께 인사드리고 명절음식 준비하고 이것저것 가장으로서의 의무가 우선이지만, 어린 시절에는 세뱃돈 받는 재미, 청년 시절에는 가족친지들이야 모이든 말든 연휴 내내 세뱃돈으로 동네 '철봉파' 친구들과 술추렴으로 보낸 재미가 내게는 일년 중 제일 즐거운 시간이었다. 코로나 시기, 우리의 '구정' 풍습도 많이 바뀌어 가고 그 전에 나이들어 가는 나의 삶도 이미 바뀌어 갔지만, '음력'의 '구정공세'는 내게 아직 푸근하고 풍족하고 평온한 그 무엇으로 남아 있다.

아마도 '양력' 세대인 우리 자식들에게도 그럴 것이다. '구정'이 아닌 '음력'을 기리는 우리의 '설날' 연휴가 '문명'을 앞세운 '신정공세'에도 꿋꿋이 버티고 지속되는 한.

***

1. [내 안의 역사], 전우용, <푸른역사>, 2019.
2. [신좌파의 상상력 - 세계적 차원에서 본 1968], 조지 카치아피카스, 이재원/이종태 옮김, <이후>,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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