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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용원 Mar 04. 2022

[제국의 시대](2022) - 백승종

'세계를 지배'하는 '보편적 이상'

'세계를 지배'하는 '보편적 이상'

- [제국의 시대], 백승종, <김영사>, 2022.





"세계를 지배하려면 '보편적 이상'을 가져야 할 것이다. 성공한 제국은 개인과 민족을 평등하게 대접하였다. 고대 로마제국이든 몽골제국이든 그런 점에서 자국의 지배를 설득할 수 있었다."

- [제국의 시대], <7. 현대의 세계제국들>, 백승종, 2022.



세계사의 무대에서 수많은 '제국'들이 명멸했다. 인류 사회의 생산력 발전으로 인해 축적된 잉여가치를 사적으로 소유하기 위해 지역의 씨족들이 전쟁을 벌이기 시작했고 정치경제적 권력투쟁을 위해 부족연합이 결성되었다. 무력을 독점하는 고대국가 중앙권력의 시초는 이 부족들의 연합체였다. 우리 역사에서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 고대국가의 형태가 그랬다. 부족연맹체에 머물렀던 가야는 고대국가체제를 건설하지 못했기에 '삼국시대'라 불린다. 고구려를 북방의 대제국으로 보는 민족사학의 견해도 있다. 7세기 들어 고구려 영양왕 대에 '고구려왕조실록'으로 추정되는 [대경]을 정리한 100권에 이르는 역사서 [유기]를 왕명에 따라 태학박사 이문진이 [신집] 5권으로 요약했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전하는데 아쉽게도 고구려의 '정사' [유기]는 후세에 남지 못하였다. 역사작가 정재수 선생에 의하면 일제강점기 남당 박창화 선생이 일본 왕실박물관에서 필사한 [고구려사략]이 아마도 [유기]의 요약본이라고 하나 아직 우리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정사(正史)'는 김부식의 [삼국사기]다. 5세기 광개토대왕비문의 기록은 [삼국사기]보다는 [유기]로 추정되는 남당 박창화 선생님의 [고구려사략]에 더 가까운데도 말이다. 주류 실증주의 역사학은 아직 고구려가 '제국'이었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

역사고증은 유물은 물론 문헌기록 자료가 매우 중요한데, '제국(帝國)'이 되려면 '민족' 단위를 초월하는 '보편적 이상'이 있어야 한다는 그 증거가 부족한것도 사실이다.



역사학자 백승종 교수는 2022년에 '역사를 움직이는 힘과 원리를 찾아서'라는 주제로 '로마제국부터 미중패권경쟁까지 흥망성쇠의 비밀'을 파헤치는 책 [제국의 시대]에서 '세계를 지배'하려면 '보편적 이상'이 있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이 '보편적 이상'이란 구체적으로 특정하기 쉽지 않다. 각 시대의 계급과 민족의 역관계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도 있겠다. '제국'이 되었든 그 어떤 체제가 되었든, "세계를 지배"하려는 집단은 "개인과 민족을 평등하게 대접했다"(같은책, <7장>)는 사실이 중요하다. 백승종 선생은 유발 하라리처럼 "제국이 가장 효율적인 체제"([사피엔스])라는 식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제국'이라는 소재를 통해 인류 역사를 관통하는 '보편적 이상'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https://brunch.co.kr/@beatrice1007/222


저자는 로마의 역사에서 인상깊은 점을 '시민의 권리존중'과 '실용정신'을 든다. 제국은 오래전 메소포타미아 아카드 제국에서 유래했겠지만 해당 지역 뿐만 아니라 지중해 일대를 넘어 유럽과 근동지역까지 광대한 영토를 최초로 경영했던 로마는 단연 본격적인 '사상 최초의 초강대국'이었다. 로마 멸망의 원인이 광대한 영토를 지배할 수 없었던 본질적 한계였든, 그로 인한 이민족의 유입이었든, 5세기 '소빙하기' 같은 기후변화와 전염병이었든 전성기 후 쇠락과 멸망은 역사의 필연이었다. 다만, 서로마와 동로마(비잔틴)를 아울러 2천년을 이어갈 수 있었던 점은 '시민의 권리존중'과 이로 인해 가능했던 '실용주의'였다는 것이다.


https://brunch.co.kr/@beatrice1007/143


칭기스 칸의 몽골제국의 역사는 한 세기 정도로 짧지만, 북방 초원의 타타르족 고유의 신앙은 물론 중앙 아시아의 이슬람 세력까지 아우르고 실력을 발휘할 수 있게끔 했던 '포용정신'이 없었다면 동아시아와 동유럽까지 이어지는 그 광대한 영토를 다스릴 수 없었다. 몽골족은 기병 중심의 전투를 수행했고 이슬람 상인들은 이 침략전쟁의 병참을 도맡았다. 그 '실용성'으로 인해 실크로드를 매개로 상업이 활발해졌다. 원나라로 중원에 정착한 몽골제국은 그들이 두려워했던 중국 한족을 너무 심하게 차별한 나머지 결국 한족의 독립투쟁으로 인해 멸망했지만 몽골제국의 짧은 역사는 기존에 산발적으로 이루어져온 동서 문화교류(전염병까지 포함)를 인류 역사에서 기정사실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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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러시아 차르에 의해 '유럽의 병자'라 조롱받던 오스만 투르크제국은 이슬람 종교만을 인정하기 시작한 제국 후반에 이르렀을 때는 '환자'가 맞았다. 제국의 권력은 '하렘'의 왕후와 간신들에게 있었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술탄은 제왕의 수업은 받을 새도 없이 향락에 취해 살다가 죽어갔다. 그러나 막강한 동로마 비잔틴제국의 철옹성 콘스탄티노플을 무너뜨린 건 전성기의 오스만 투르크였고 이 당시만 해도 그들은 동서양 문화의 중간지대로 로마와 몽골제국 못지 않은 '포용'과 '실용'을 갖추었다. 오죽하면 오스만 투르크에 막힌 육로를 피해가려고 스페인과 영국 등이 노력한 결과가 16세기 바다로 돌아가는 '대항해시대'의 시작이라 하겠는가.



영국의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 : 1917~2012)이 '1789~1914년'의 역사를 집대성한 3부작의 마지막 권인 1987년 저서와 동명의 책 [제국의 시대]를 통해 저자 백승종 교수는 제국의 '포용성'과 '실용성'의 중요함을 보여준다. '제국'이라는 특정체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러한 '보편적 이상'이 투영되고 실현되었던 특정 '제국'들이 잠시나마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역사학자 백승종 선생은 역시 역사학자 선학인 에릭 홉스봄의 뒤를 이어 '제국'의 역사를 묘사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류 역사에서 그 '제국'들이 남긴 '시대'의 유산을 이야기한다.





"역사란 무엇인가. 그것은 과연 믿을 만한가... 역사를 객관적으로 이해하기란 극히 어렵다... 모두가 신뢰할 만한 역사지식을 얻으려면 자국 중심의 편향된 태도를 버려야 한다... 물론 겸허한 모습으로 역사의 거울 앞에 서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 [제국의 시대], <저자의 글>, 백승종, 2022.



역사학자이기에 저자는 더더욱 "역사 앞에서 겸손하기"(같은책, <저자의 글>)를 강조한다. 모든 것이 아마추어의 눈에는 만만해 보이는 것 같지만 깊이 연구하고 성찰한 전문가일수록 '겸손'할 수 밖에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세상만물을 용광로처럼 녹여서 '보편화'시켰던 제국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명멸한 자리에 후세들은 또 다시 '보편적 이상'에 따른 문명을 만들어낸다. 파괴된 자리에 새로운 것이든 진부한 것이든 다시금 건설이 시작된다. 19세기부터 현재까지 한 시대를 주도했던 대영제국과 독일, 청나라와 일본,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조선의 역사를 거쳐 미소 냉전과 현재의 러시아, 중국, 미국의 강대국 경쟁을 살피는 저자는 역시 역사 앞에 '겸손'하지 못한 '제국'의 미래는 밝지 못함을 이야기한다. [제국의 시대]는 현재 '기후위기'로 인한 '생태주의'와 '에너지 전환', 그리고 더 이상 물리적 영토의 '제국'이 아닌 '강소국'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마치는데, 역시 이 책의 핵심 주제는 '제국'이 아니라 '보편적 이상'이다.


https://brunch.co.kr/@beatrice1007/166


그 실체가 무엇이 되었든, '보편적 이상'은 과거는 물론 현재와 미래까지 관통하는 사상이다.

'제국'이 '세계를 지배'한 것이 아니라, '보편적 이상'이 '세계를 지배'한다. 아직 어리숙한 나의 눈에는 그 '보편적 이상'은 역사를 움직여온 다수 민중들의 '평등'이다. 한편, 역사학자인 저자에게는 다수 시민들의 '자유'로 보인다. 물론 '평등'과 '자유'는 서로 비교할 개념은 아니다.

노동역사기록자 안재성 선생의 말처럼, '자유'가 없는 곳에서는 '자유'를 위해 싸우는 것이고, '평등'이 없는 곳에서는 '평등'을 위해 싸울 뿐이다.


역사학자 백승종 선생님 덕분에, 그 동안 미뤄왔던 에릭 홉스봄의 고전, [혁명의 시대](1962), [자본의 시대](1975), [제국의 시대](1987) 3부작을 본격적으로 읽어봐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이 3부작을 통독하기 전까지 '주간 문사철' 내 마음대로 '서평'은 잠시 멈추기로 한다.


***


1. [제국의 시대], 백승종, <김영사>, 2022.

2. [도시로 보는 유럽사], 백승종, <사우>, 2020.

3. [로마의 운명](2017), 카일 하퍼, 부희령 옮김, <더봄>, 2021.

4. [칭기스의 교환](2012), 티모시 메이, 권용철 옮김, <사계절>, 2020.

5. [새로 쓰는 광개토왕과 장수왕], 이석연/정재수, <논형>, 2022.

6. [유라시아 견문 1~3], 이병한, <서해문집>, 2016~2019.

7. [지정학의 힘], 김동기, <아카넷>,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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