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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용원 Feb 23. 2023

'불편한' 꿈을 꾸었다 - 2023.2.22.

- [불편한 편의점](2021), 김호연

'불편한' 꿈을 꾸었다

- [불편한 편의점](2021), 김호연





"어떤 글쓰기는 타이핑에 지나지 않는다. 당신이 오랜 시간 궁리하고 고민해 왔다면, 그것에 대해 툭 건드리기만 해도 튀어나올 만큼 생각의 덩어리를 키웠다면, 이제 할 일은 타자수가 되어 열심히 자판을 두드리는 게 작가의 남은 본분이다. 생각의 속도를 손가락이 따라가지 못할 정도가 되면 당신은 잘 하고 있는 것이다."

- [불편한 편의점], <불편한 편의점>, 김호연, 2021.



1. '불편한' 꿈


'불편한' 꿈을 꾸었다.


경기도 오산에서 1년 넘게 홀로 자취생활을 하며 생긴 습관은 퇴근 후 혼자 도라도 닦는 듯 원룸에서 책을 읽다가 가끔 초저녁에 설핏 잠에 드는 거다. 평일 저녁시간에 오로지 나만의 시간을 만끽하며 책도 보고 종이접기를 하다보면 한없는 시공간에서 막막함에 젖어든다. 지나고 나면 순식간에 흘러간 시간이지만 그 일분일초의 시간 속에서는 진공에라도 빠진 듯 시각이 멈춘 듯 공연히 막연해지는 거다. 그럴 때 읽고 있던 책이나 접고 있던 종이 쪼가리를 들고 자리에 눕는다. 그러고는 깜빡 초저녁 잠에 빠져든다.


눈을 뜨면 밤은 깊어져 있다.

역시 읽던 책을 마저 읽거나 종이를 접다보면, 왠지 이대로 다시 잠들기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꼼지락대다가 새벽에 다시 잠자리에 든다.


어떤 날은 그 새벽잠에 악몽도 꾼다.

생전 꾸지 않던 지각하는 꿈도 꾸고, 무서운 꿈에 빠져 가위눌리기도 한다. 그럴 때는 아무리 몸부림쳐도 깰 수가 없다. 얼른 깨어야 하는데 도통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 경험을 내 기억에 처음 겪어본다. 언젠가는 주말에 서울 집에서 자다가 가위눌려 옆에 잠든 처와 막내를 놀래킨 적도 있다. 생생하게 기억나는데 내가 갑자기 한순간에 쫄딱 망하는 아주 무시무시한 꿈이었다.


며칠 전에는 생전 꿈에 보이지 않던 첫사랑 후배가 등장했다.

나와 그녀는    시절처럼 다시 만나고 있었다. 분명 육신은 중년인 지금의 모습인데 정신은 이십대 초중반  시절 그대로 생생했다.


다시 태어나도 반드시 또 찾아 만나겠다고 내가 입버릇처럼 호언장담하는 나의 아내에게 미안하기 그지없는 아주 '불편한' 꿈이었지만, 그 잔상은 깨어있는 며칠 동안에도 아주아주 오래도록 이어진다.



2. "강은 빠지는 곳이 아니라 건너는 곳임을"


인천에 있던 첫사랑 후배의 부모님께 나를 믿고 딸을 달라고 당차게 요구하던 나는, 그러나 사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음에도 변변한 취업준비도 안하고 있었다. 후배의 부탁으로 토익시험도 4학년 2학기에 처음 봤다. 취업을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동기들과 달리 나는 깊은 강물 속에 빠진 것 같았다. 먼저 취업한 첫사랑 후배 그녀는 바쁘다며 나를 피했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녀가 나를 한심하게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을.


나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

불평등한 세상을 뒤집어 엎지 못할 바에야 이 세상의 본질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는 '리얼리즘' 소설을 쓰고 싶었다. 지금은 가물가물하지만 스물예닐곱의 나는 그런 소설이 분명 있다고 믿었다.


정확하지는 않다.

나를 뒤늦게 취업의 전선으로 나서게 만든 게 첫사랑 그녀가 나를 한심하게 바라보던 눈빛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부모님을 건사해야 하는 가난한 내 형편을 그제서야 새삼 깨달아서였는지.


운이 좋아 대기업에 취직한 나는 대학의 마지막 강의를 듣고 학교 문을 나서는 순간에도 단편소설을 신문사 신춘문예에 응모했다. 만약 당선이라도 된다면 나는 그 길로 나설 것처럼 말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신문사에서는 연락이 없었고 그 덕에 나는 이십년 넘게 한 직장을 잘 다니고 있다. 첫사랑 그녀는 잃었지만 그 덕에 같은 직장에서 만난 지금의 착한 아내와 한 가정을 꾸리고 부모님 모시며 세 자녀와 큰 개 한 마리, 작은 고양이 한 마리까지 거느리며 아주 잘 살고 있다. 아버지는 돌아가셨지만 일년 전부터는 그 직장 덕에 팔자에 없을 것 같던 자취생활도 겪어보고 있다.


이십년 전 나를 떠난 첫사랑 그녀만 빼고 모자랄 것 없던 삶에 불쑥 그녀가 나타났다.

그녀는 내게 묻고 있었다.

결국 이렇게 살게 될 거면서 그 때는 자기한테 왜 그랬느냐고. 애초에 작가가 될 것도 아니면서 왜 그랬느냐고 말이다.


꿈 속에서 나는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어느 화창한 여름날 서울시역사박물관 뜰에서 내가먼저 그녀에게 이제 그만하자고 말했지만, 그녀는 이미 내게 눈빛으로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날 만나자던 그녀의 전화기 너머 목소리에서 이미 이별을 감지하고 있었다. 모질지 못한 나는 애초에 그런 말을 할 위인이 못되었으나 그녀의 슬픈 눈빛을 보는 순간 그녀가 나로 인해 더이상 불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애써 웃어보이며 아주 발랄하게, 이제 좀 웃고 살자는 어울리지 않는 이별통보를 남기고는 먼저 돌아섰다.

이제 돌아서면, 뜨겁고 아프고 설레고도 슬펐던 내 젊은날과도 다시는 만나지 못할 터였지만 나는 그 화창한 여름날의 햇살 속에 그녀를 홀로 남겨두고 말았다.

너무도 사랑했다고 믿었지만, 그 사랑 때문에 경제력 없는 나의 불쌍한 부모를 버릴 수가 없다는 말은, 그런 말은, 하지 않기로 했다.


씩씩했지만 나 때문에 많이 울던 그녀가 오늘 이후 더 이상 울지 말았으면 했다.

그 여름의 서울시역사박물관 뜰에 내리쬐던 햇살처럼 항상 웃기를, 원래 그녀의 모습 그대로 언제나 씩씩하기를 바라고 또 바라며 돌아선 나는 눈물을 삼켰다.


지금도 그 햇살은 며칠 전의 '불편한' 꿈처럼 잔잔한 영상으로 떠오른다.




소설가 김호연이 2021년 발표한 소설 [불편한 편의점]은 노숙인에서 편의점 야간알바가 된 '독고'라는 덩치 큰 중년사내가 본인의 후원자 역할을 해준 편의점 사장 할머니 염여사와 그 주변 인물들과의 에피소드 속에서 잃어버렸던 자기를 되찾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백지 또는 아마도 '빈 서판(The Blank Slate/tabula rasa)'과도 같이 모든 걸 잃은 독고를 통해 알바생과 세일즈맨, 극작가와 흥신소 노인 등 여러 인물들의 시각으로 소설은 각각의 에피소드를 이어가고 있다. 같은 장면이 다른 에피소드에서 다른 시각으로 그려지는 입체적 관점이다. 독고가 혼술에 찌든 세일즈맨 가장을 위로하던 장면이 벼랑에 선 극작가의 시선에서 다시 반복되기도 하고 이 모든 에피소드들은 독고가 자기 기억을 되찾아가는 마지막 장에서 총정리되듯 독고의 시선으로 곱씹어진다. 결국 다른 인물들에게 따뜻한 기운과 함께 각성과 갱생의 계기를 주던 독고가 사실은 그 과정에서 스스로의 길을 찾게 되는 입체적 관계다. 아픈 과거로 인해 한강다리에 올라 강에 뛰어들고자 했던 독고는 결국 깨닫는다. "강은 빠지는 곳이 아니라 건너는 곳임을"([불편한 편의점], <ALWAYS>).

그렇게 그는 아픈 삶의 심연에 빠지는 대신 그곳을 건너 "부끄럽지만 다시 살아보기로" 한다.



나는 지금도 글을 쓴다.

한때는 사회를 고발하고 싶었고, 유명한 작가가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싶다는 욕망에 달떠있었다. 그렇게 잘난체 하고 싶어 두껍고 어려운 책들을 열심히 읽어댔고 글을 썼다. 아마도 작가가 되었다면 [불편한 편의점] 에피소드에 나오는 극작가처럼 스스로의 한계를 절감하며 벼랑 끝에 섰을 수도 있겠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작가가 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끊임없이 써댄다. 나 스스로 매주 마감을 정해 매주 짧은 글을 한 편씩 써대고 있다. 전형적인 자아도취이자 자기만족이겠지만 이제 내 꿈에서 남은 건 나와의 약속 뿐이다. 매일 아침 집앞을 쓸었다던 다산 정약용처럼 가급적 나와의 약속을 지키고자 집어든 책이 사실 소설 [불편한 편의점]이었다. 이번주 읽고자 했던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의 [빈 서판(The Blank Slate)]이 너무 두꺼워 다 읽지도 못했으니 하루만에라도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집어들고 나온 거다. 그리고 출근길에서 생각지 못하게 감동을 받았다. 가장으로 다시 힘을 내기로 한 세일즈맨 에피소드에서 울컥하기도 하고 글쓰기의 벼랑에서 독고와 함께 갱생했을 작가 김호연 스스로의 모습도 얼핏 본다.


([빈 서판(The Blank Slate)], 스티븐 핑커, 2002.)


매년 '이상문학상'과 '현대문학상' 등을 빼먹지 않고 챙기며 유명 소설가들의 작품들을 열심히 읽어대던 시절이 있었다. 생각보다 사람들이 내 글에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읽은 책을 인용하며 서평을 꾸준히 쓰기 시작했다. 지금은 '소설'은 아니고 '서평'을 빙자한 독후감을 소설 비슷한 형식을 빌어 매주 쓰는데 정작 소설은 몇 년만에 읽어본 듯 하다.


이제 장르는 중요하지 않다.

그냥 매주 나와의 약속을 지키듯이 글을 쓴다. 소설 속 독고가 "강은 빠지는 곳이 아니라 건너는 곳"이라 말하듯 글은 그냥 쓰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3. "다리는 건너는 곳이지 뛰어내리는 곳이 아님을"


선배가 취업할 생각은 하지 않고 '소설가'가 되겠다고 선언했을 때, 바로 말했어야 했다. 오빠는 재능이 없다고. 그런 소설은 지금 세상에서 먹힐리도 없고 운이 좋아 등단했다손 치더라도 굶어죽기 딱 좋다고. 헤어질 결심으로 직언을 해야 했지만 못했다. 그가 아직도 내가 예전처럼 그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걸, 이제는 내게 도움이 안될 것 같으면 언제든 그를 버릴 수도 있다는 걸 깨닫게 했어야 했다. 주변 사람 누구도 아는 사실을 그만 모르고 있었다. 그는 어린 시절처럼 자기가 특별한 줄 아는 듯 하지만 사실 뭐 하나 다를 것 없는 그는 남들처럼 취직을 해서 돈을 벌어야 했고 그렇지 못한다면 나는 더 이상 그를 만날 수가 없었다.


하라는 토익시험도 잘 안보고 취업준비도 소홀한 그가 내가 마지못해 다니던 회사 앞 커피숍에서 기다리는 것도 싫었고, 만나면 예전 사회과학 학회 세미나에서나 하던 말들을 지껄여대는 모습에도 진절머리가 났다. 어쩌다 데이트라도 할라차면 돈도 없으면서 모텔이나 찾아다니려던 꼴도 너무 보기 싫었다. 더이상 대학 신입생도, 연인의 제대를 손꼽아 기다리며 밤새 꽃편지를 쓰던 가련한 여인도 아닌 나는 매정하지만 이제 그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제 더는 쥐구멍만한 무역회사도, 미래가 없는 그와의 만남도 참을 힘이 없었다. 다 때려치우고 임용고시 준비나 제대로 하고 싶었다. 더 이상 주저할 시간이 없었다. 동기들은 이미 교사가 되었거나 나보다 한참 멀리 가 있었다. 그래. 이제 떠나자, 생각하며 나는 커피숍에서 몇 시간을 기다리던 그를 두고 일도 없는데 야근을 하고 있었다.

그 남자 때문에 허비한 내 젊음이 아깝고 억울해서 언제나 씩씩한 나였지만 계속해서 눈물이 났다.


2004년 총선에서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을 지지해 달라는 문자가 왔다. 5년만에 그가 보낸 문자였다. 잘 지냈느냐는 안부 따윈 없었다. 아직도 나를 대학시절 그 후배의 모습으로 대하는 듯 내게 했던 일들은 아랑곳 없는가 보았다. 학교 친구와 선후배에게 물어보니 그 남자는 이제 정신차리고 대기업에 취직해서 잘지내고 있다고 했다. 임용고시가 뜻대로 잘 풀리지 않던 나는 그를 다시 만나보았고 예전같은 감정은 없지만 결혼도 생각해 보았다. 그는 몇 번 우리 부모님께도 다시금 찾아와서 결혼허락을 받고자 했지만 엄마는 하나 뿐인 딸인 나를 가난한 집 외아들에게 보내고 싶지 않다고 완강히 버티셨다. 사실 나 또한 그 남자의 부모님까지 모시고 살 수는 없었다. 혹시라도 언제 어떻게 또 나를 실망시킬지 모를 그 남자도 모자라 그 부모까지 책임지며 살 수는 없었다. 나는 또 다시 헤어질 궁리를 하는 나를 발견했고 햇살 맑은 어느날 서울시역사박물관 뜰에서 이별통보를 하고자 했다.


의외였다.

이제 정신차렸으니 자기가 더 잘해보겠다고 하기는 커녕, 그는 이제 서로 각자 웃으며 살자면서 내게 먼저 이별을 고했다. 황당해하는 내게 그는 끝까지 되지도 않는 웃음을 지어보이며 행복하라,는 말을 남기고는 먼저 등을 돌려 가버렸다.

햇살이 눈부시던 그 여름의 박물관 정원 풍경은 그 후로도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그 장면에서 그의 뒷모습만 파버리면 딱 좋았을 풍경이었다.




감호연의 소설 [불편한 편의점]의 마지막 장면에서 독고라는 남자가 기억을 찾아 기차를 타고 한강을 건널 때 "다리는 건너는 곳이지 뛰어내리는 곳이 아님을" 깨달았듯, 사랑은 상대방을 향해야지 자기만을 향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원래 모든 사랑은 자기애라고는 하지만, 결국 사랑의 본질은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배려, 뭐 이런 것이 되어야 한다.

그도 나도, 각자 자기만 바라보는 그런 사랑, 내 젊음이 너무 아쉽고 억울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그냥 우린 그렇게 열병과도 같던 청춘의 다리를 건넌 거였다. 같이 뛰어내릴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모르겠다.

그가 뛰어내리자고 할 때 내가 손을 놓을지도.


그 여름의 햇살 속에서 그가 어색하게 웃음지으며 먼저 손을 놓아준 게 어쩌면 잘된 일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쉽게 변할 사람이 아니니 이 모진 세상에서 그 선배가 상처나 덜 받고 살기를 바라는 수 밖에.


아직까지 글이나 써보겠다고 방에 틀어박혀 궁상이나 떨지 말기를.


안녕.

한 많았던 내 청춘.



4. "부끄럽지만 살기로"


좋은 글을 쓰려면 깊이있게 구상도 하고 그 생각들이 농익은 다음 저절로 터져나와야 할게다. 소설가 김호연도 [불편한 편의점]에서 극작가인 정작가를 통해 생각의 속도가 자판을 두드리는 손가락보다 빠르다면 글을 잘 쓰고 있다는 말을 한다. 아마도 작가 본인의 경험이자 글쓰기 지론이겠다.


나는 사실,

글을 쓸 때는 어쩔 수 없이 첫사랑 그녀를 떠올린다. 그녀 때문에 글을 쓰고 싶었던 건 결코 아니었지만, 소설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그녀가 내 옆에 있었기도 했고 군대에서 서로 주고받던 장문의 편지를 통해 어설프게나마 습작 비슷한 것을 했기 때문이었다. 당시는 또한 그녀에게 멋진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 더더욱 작가가 되고 싶기도 했다. 결국 나는 소설도, 첫사랑 그녀도 잃었지만, 그 때는 그게 나의 전부였다.


젊은 치기로 그녀에게 주었던 상처를 돌아본다. 며칠 전의 '불편한' 꿈처럼 다시 돌아간들 잘해볼 자신은 없다. 다시 돌아가보았자 난 여전히 그 시절의 나일테니 말이다. 정말 미치도록 사랑했지만 냉정히 따져보면 그건 그녀가 아닌 나 자신에 대한 사랑이자 집착이었다. 상대방이 아닌 나만을 향했던 사랑, 이것이 젊었던 내가 그녀에게 준 상처의 근원이었다. 부디 그녀가 꿈에서나마 그 아픔과 아쉬움을 반복하지 않기를 바란다.


[불편한 편의점]에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가수 밥 딜런의 자서전을 인용하며 밥 딜런의 외할머니가 하셨다는 말을 하나 소개하고 있다. "네가 만나는 사람들이 모두 힘든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에 친절해야 한다"(같은책, <불편한 편의점>)고. 편해야 하는 '편의점'임에도 '불편'하고 그 속에서 각자의 삶을 돌아보게 되면서 인생의 '편안함'을 되찾게 된다는 일종의 판타지일 수도 있지만, 그게 바로 삶의 역설(paradox)일 수도 있다.


주먹구구식으로 생각의 속도보다 아이폰 자판을 누르는 손가락이 먼저 가는 글쓰기임에도 당분간 나는 계속 해보려 한다.

작가가 되고자 하는 원대한 꿈이라든가, 소설을 써보겠다는 그럴듯한 구상은 일단 접어두기로 한다.

다소 부끄럽지만 그냥 글을 써보기로 한다.

그게 지금의 내가 사는 길이다.


강은 빠지는 게 아니라 건너는 것이고,

다리는 건너는 곳이지 뛰어내리는 곳이 아니듯,

글은 생각하는 게 아니라 쓰는 것일테니 말이다.


(2023.2.22.)


https://brunch.co.kr/@beatrice1007/236

https://brunch.co.kr/@beatrice1007/288


***


- [불편한 편의점], 김호연, <나무옆의자>,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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